대학교 3학년이었나, 시험 기간에 무료히, 딱히 흥미롭지 않은 공부를 하던 나는 트위터에서 곽정은 기자님이 행복하게 사시는 글 하나를 읽게 된다. 그리고 아무 생각 없이 곽정은 기자님한테 트윗을 보내게 되는데, 매우 감사하게도 기자님은 친절하게 답변을 해주신다. 글을 쓰며 살고 싶다는 내 말에 그렇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잃지 않고 간직하고 살면 된다는 대답. 기자님에게는 한낱 트쟁이의 투정에 친절하게 답변하는 지나가는 순간이었을 테지만, 나에겐 큰 위로가 되었던 어느 순간이었다.

난 사실 마음 속에서 한 번도 글을 잃고 살아본 적이 없었다. 좌절하는 순간이 오더라도 나는 글을 쓰면 되니까, 글을 쓰면, 모든 부조리들이 뭉개지고 씻겨 내려가 글자로만 남게 되지, 내게 남지는 않으니까. 그래서 잃을 래야 잃을 수가 없었다. 내 감정 내 울분은 컴퓨터의 수 많은 바이트들 밖에 들어주질 않으니까.

덕분에 눈에 띄게 글을 쓰진 않아도 중간중간 삼켜 내며 쓰는 글들이 많아졌다. 힘든 순간들은 아이폰 메모장에 묶여서 밑으로 응축되거나, 커뮤니티 또는 SNS의 단문들로 기록되었다. 그건 그것대로 좋다고 생각했다. 기술의 발전이 내게 알려준 순간의 기록들이 싫지 않았다. 반짝이고 떠오른 기억들을 종이와 펜 없이도 기록해둘 수 있다는 건 대단한 일이었고, 나중에 그걸 보며 오글거려하거나 추억에 잠기는 것 또한 대단한 일이었다.


글을 쓴다고 해놓고, 핸드폰만 붙잡고 늘어지기 일수라는 걸 깨달은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나는 컴퓨터 세대. 종이와 펜으로 글을 쓰는 건 익숙하지 않고, 긴 글을 쓰게 되면 그건 손편지이거나 시험지 답안에 불가하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컴퓨터 앞에 앉은 지 오늘부로 2주가 지나가 있다. 심하면 몇 개월은 컴퓨터 앞에서 키보드를 두드리지 않는다. 컴퓨터 세대였던 나는 다섯 손가락 대신 엄지 손가락 하나만을 움직여 아이폰 메모장을 채우고 있다. 글을 쓴다고 해놓고, 순간의 감정들만 두드리고 있는 것이다.

대단한 일은 대단한 일인 거고, 나는 퇴화하고 있다.



언젠가부터는 순간의 감정들을 담는 것이 치졸하고 싫었다. 깊이 있는 글을 못 쓴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순간의 감정들을 단어로 치환하는 것은 언제나 앞뒤가 일정하지 않았고, 결론은 이상했다. 글을 못 쓰는 이상주의자와 회의주의자가 반반 섞인 상태의 내가 쓰는 글은 언제나 그래, 열심히 하자. 로 끝나고 있었다. 우습고 유치하다. 본인의 감정을 쏟아 내다가 아니다, 힘내자로 끝나는 글들이라니. 

어째서 그런 식인가. 생각을 해보긴 했다. 이유는 대부분 내가 궁지에 몰렸을 때 글을 쓰기 때문이었다. 궁지에 몰려서 쓰는 글의 끝은 요란한 파이팅으로 마무리 된다. 끝에 매달려서 죽어버리자, 라고 결론을 낼 수는 없으니까.

그러니까 그 짧은 아이폰 메모장마져 쓰지 않았다는 소리이다. 나는 점점 더 쓰지 않고 있다. 글을 쓴다고 해놓고.



나는 정말로 글을 쓰면서 살고 싶었다. 그 마음은 15살 때가 최고조였고, 18살 때는 숨겨 왔으며 20대 대부분에는 때때로 발현되었다. 실연을 당했거나, 죽고 싶을 때. 그리고 자유의 끝이 다가오자 또 다시 글이 쓰고 싶어졌다. 대학을 졸업한다고 생각하니까 이제 진짜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졸업한 뒤로 나는 여전히 글을 못 썼다. 못 쓴 건지 안 쓴 건지 모르겠다. 나는 여전히 글을 쓰지 않고 있었다.

끄적이던 소설도 완결나지 못한 채 갇혀 있었고, 짧은 단편들은 구상에서 끝이 났으며, 더 짧은 에세이들은 아이폰 메모장에서 나오질 못했다.


글을 쓴다고 해놓고 내가 왜 이렇게 머물러 있는지는 모르겠다.

단순히 게으르기 때문일까. 아니면 내가 재능이 없기 때문일까.


기가 막힌 것은 이런 것들에 대한 해답이 뚝딱하고 나오지 못한다는 것이다. 나는 이쯤에서 그래, 열심히 써보자. 열심히 해보자. 라는 요란한 파이팅으로 밖에 결론을 내지 못한다. 이럴 수가. 그래, 열심히 써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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