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40일 유럽 여행 기록기(2) 프랑크푸르트-근교 도시
2014년 7월 4일 프랑크푸르트 관광
독일에서의 아침은 굉장히 이르다. 난 애플와인의 숙취 탓인지 시차 때문인지 도저히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뭐, 자긴 잤지만 한국에서만큼은 아니다. 일어나자마자 우리는 괴테하우스로 쫓아갔으나 닫혀 있었다. 아니, 마인타워에 먼저 갔었다. 아직 이른 시간이라 닫혀 있어 카페를 찾아 내려와 아침을 먹었다. 프레첼과 커피. k는 샌드위치와 커피.
내 기억 속에 굉장히 독일스러운 아침이었다.
아침답지 않은 강렬한 햇빛과 한국과 비슷했던 하늘, 괴테 광장 중간에 솟아있는 동상.
그 무엇도 독일스럽지 않은 게 없었던 아침이다.
햇볕을 피해서 빵집 의자 앞에 선글라스를 끼고 앉아있으면 그저 지나가는 비둘기마저도 그렇게 독일스러울 수가 없는.
남들이 보면 복에 겨운 허세스러운 장면이었지만 그늘 밑의 차가움이 얼마나 행복했는지 그 순간이 영원했으면 하고 생각했던 것 같기도 하다.
프랑크푸르트는 종로보다 좁았다.
몇 바퀴를 돌고나자 한국인을 만났는데 우리는 처음으로 한국인을 보는거라 너무 반가워서 인사를 했다. 그들은 한국인이 익숙한 모양인지 어떨떨하게 그 인사를 받았다. 그 후에 우리는 얼마나 바보 같은 짓을 했는지 깨달았지만 낯선 땅에서 조국인은 생각보다 많이 반가웠다. 어색함을 뒤로 한 채 인사를 하고 우린 괴테하우스에서 또 만났다. 더 어색한 웃음이 오갔지만 나는 즐거웠다.
아, 여하튼 괴테와의 영적인 만남이 있었다. '우와'와 '예쁘다'가 섞인 감탄의 만남.
괴테가 어떤 마음으로 그곳에서 글을 썻노라까진 나도 물음표지만 현대의 내가 과거의 그와 공간적으로나마 '인연'을 가졌다는 건 즐거운 일이었다.
그 때 당시의 나는 감명을 꽤 크게 받았던 걸로 기억한다.
정말 괴테와 영적으로나마 닿았던 것 같은 착각이 일을 정도로.
몇 번이고 그 집을 되돌아보고 눈을 반짝였다.
가슴 속이 울렁거렸다.
그게 독일에서 처음으로 방문한 곳이어서 그랬던 것인지 아니면 괴테 하우스가 감명 깊었던 것인지 지금 생각해선 전혀 모르겠지만 그 때는 진짜 괴테와 영적으로 만난 것이라 생각했다.
이 울렁임과 가슴 벅참은 그와의 만남으로써 가능했던 것이라고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읽던 그 어린 나이 그 때로 되돌아가 그 소설의 마지막을 읽던 찌릿함을 떠올려냈다. 지금 그 글을 읽어도 다시 그런 기분이 들지는 장담 못 하겠지만. 처음 만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나에겐 외로움 그 자체였다.
최근에 다시 만난 베르테르는 여전했다.
여전히 어린 아이처럼 사랑을 갈구하고 그 사랑을 이기지 못해 그는 자기 스스로 총구를 겨눈다.
그나마 베르테르에게 조금 위안이 되는 게 있다면, 로테가 죽은 베르테르를 뒤늦게나마 사랑했었다고 깨달은 것이다.
나는 베르테르가 부럽다.
괴테 박물관까지 둘러보고 나서 우린 대성당을 찾으러 갔다.
난생 처음 보는 반짝이는 스테인글라스와 가득한 묵향, 오르간의 위엄 그런 것들이 날 압도한다.
안 그래도 꽤나 지쳐있던 나는 그 묵향에 취해 3일 만에 또 다시 질문에 놓였다. 내가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걸까?
끊임 없이 되묻는다. 무언가 얻어서, 성장해서 돌아갈 수 있을까 하는 물음.
아무도 우릴 신경 쓰지 않지만 그래도 신기하게는 보는 그 틈에서 나는, 온전히 자유로울 수 있을까.
어쩐지 울 것 같았지만 울진 않았다. 아니, 못 했다.
곧 자리를 옮겨 자일 거리 쪽으로 가야 했으니까.
우리는 뢰머를 구경하러 갔다가 월드컵 기간 탓인지 어떤 공사를 하고 있어서 자일에 가 밥을 먹었다. 맥주와 핫도그랑 이상한 고기찜을 먹는데 노숙자가 와서 맥주를 조금 달라고 했다. 이상한 사람이 아닌 것 같아서 맥주를 나눠줬고 건배 하자는 의미에서 맥주를 내밀었다가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걸 들어야 했다. 나는 아직도 그 사람이 왜 그렇게 했는지 알 수가 없다.
그래, 여행지에서 쓸 데 없는 동정을 베푸는 것은 정말 안 베푸느니만 못 한 것이다. 그들은 낯선 우리를 호의적으로 보지 않는다.
멀리서야 손에 담을 수 있는 대성당
그리고 우리는 슈테델에 갔다. 큰 미술관. 중세부터 현대까지의 그림을 본다. 그림 중에 마음이 가는 것이 있으면 끝 없이 본다. 지겹지도 않은가. 그 때의 나는 안 그랬나보다. 그림을 보면서 계속해서 스스로한테 물었다.
나는 지금 왜 여기에 있는 거지?
겨우 여행 이틀째인데 이 여행에 대한 의문이 들기 시작한다.
역시 비관론자는 타고 나는 것일까.
작센하우젠에 가다가 길을 잃어 실망하고 과일을 샀다. 브라우니도 샀다. 사고 돌아와서 윌리엄플라츠에 또 갔다. 마츤하워에 가서 맥주 2잔과 슈니첼을 먹었다. 갔다 와서 목욕도 한다. 이제서야 즐겁다. 의문에 대한 답은 나오지 않았지만 그래도 즐겁다고 마음을 추스린다.
뢰머 광장
노천 식당에서 점심 -여기서 노숙자를 만남
비가 오는 쾰른, 그리고 쾰른 대성당 7월 5일 쾰른-본-다시 프랑크푸르트 비가 온다. 우리는 독일에 있는데. 독일에도 비가 온다. 아침에 늦잠을 잤다. 아니, 일어났다가 다시 잔 것 같다. K가 아침을 준비해주어서 주섬주섬 아침을 먹고 길을 나섰다. 도착한 쾰른은 아, 비가 오고 있었다. 어마어마하게? 아니, 살짝? 뭐라고 말하기가 애매한 비의 양에 우리는 쾰른역에 서서 두 눈을 꿈뻑였다. 아마, 여행지이거나 주말이어서 그랬던 건지 사람이 많았다. 어쨌든 쾰른역 밖으로 용감하게 발을 내딛자 맞으면 조금 추울 것 같은 비가 우리에게 쏟아졌다. 우리는 아직 기분이 좋은 편이었고 (일어난지 얼마 안 되었으니) 비바람도 즐길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었기 때문에 신나게 쾰른 대성당으로 들어갔다. 대성당은 미사에 한참이었고 사람들 틈에서 미사를 구경한다. 많은 관광객에게 둘러 쌓여 진지하게 미사에 임하는 쾰른 사람들. 그 묘한 위화감에 비바람에 몸이 젖어 추운데도 기분이 들떴다. 스테인글라스도 눈 부시게 날 맞아준다. 눅눅한 비냄새와 오래된 건물의 냄새, 그리고 향 냄새는 이질감 없이 이 장면을 적시고 있다. 쾰른 사람들과 사제들은 그런 북적임이 최근 일이 아니라는 듯 묵묵히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을 한다. 더하여 사제를 하기엔 너무 잘 생긴 사람도 있다. 저 사람도 결혼을 못 하는 걸까? 그건 너무 유전학적으로 손해인 것 같은데. 작은 벨 연주와 반짝이는 오색빛깔 스테인 글라스 아래에서 사람들을 바라본다. 각 국의 다양한 인종들. 내가 그 속에 있다. 내가! 폰카라 잘 잡지 못 하였지만 진짜 눈 부시게 반짝이던 스테인글라스. 비가 오는데도 어떻게 그렇게 빛이 나지? 쾰른 대성당은 정말로 '압도적'이다. 아마도 고딕 스타일이라고 짐작하는 대성당의 모습은 아는 것이 없어도 느낄 수 있다. 이게 엄청 대단한 것이라는 것을. 이걸 내가 글로 다 표현하지 못 하는 것이 유감이다. 정말 수 많은 유럽 성당들을 봤지만 쾰른 대성당 만큼 압도감을 느낀 곳은 없었다. 축축한 구름 사이에 묵묵히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는 모습은 정말이지 어마어마하다. 우리는 밖에 나와 기어코 우산을 샀다. 우리의 짐이자 동반자가 될 검은 우산. 길을 헤매다가 있는 이탈리안 레스토랑에 들어가 토마토 해물 펜네 파스타와 루꼴라 피자로 배를 채운다. 점원은 우리가 팁을 내야 한다고 설명했고 우리는 기꺼이 팁을 냈다. -훨씬 후에 얘기지만 우리는 프라하에서 영수증에 음식값에 팁이 포함되지 않았다고 써 있는 것을 포함되었다고 읽어서 팁을 내지 않았다가 직원이 울 뻔 한 적도 있다. 서버가 울먹거리면서 자기가 뭘 잘못했냐고 묻자 우리가 더 당황해서 우리가 뭘 잘못 알았냐고 물어봤다. 결국 지배인이 와서 상황 중재를 해주고 우리는 맛있는 음식과 좋은 서비스에 기꺼이 팁을 냈다. 솔직히 이 팁 문화는 너무 어렵다.
배를 채우고 거리 구경을 하는데 퀴어 축제를 하고 있었다. 한국에서도 못 가본 퀴어 축제를 독일 쾰른에 와서 즐긴다. 참 아이러니하다. 드디어 누텔라 크레이프를 먹고 예상한 맛에 실망하자 드디어 비가 그쳤다. 다시 기차를 타기 위해 대성당 쪽으로 돌아오자 대성당의 어마어마함이 또 한 번 각성된다. 이 건물은 도대체 어떠한 열정의 집합체일까. 그것은 어디를 향한 것일까. 감히 상상조차 하기 힘들다. 분명 누군가를 위해 열정을 가지고 만든 것이겠지. 그러니까 세상을 살아온 어떤 사람들은 자기가 아닌 누군가에게(그게 실체조차 없는 신인데도) 이렇게 열정을 투자 할 수 있었다는 것일까. 기분이 이상해져 마인강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인간에게 경외심을 갖게 하는 무생물(건축물)이라는 건, 멀리 할 필요가 분명히 있다. 마인강은 유람선과 좀 더 이국적인 광경이 곁들어져 비가 축축하게 내려도 충분히 낭만적이었다. 배경에 섞여 길을 걷는 모든 이들이 행복해보였다. 유람선을 타려다가 시간이 안 맞아 다시 기차를 타고 본으로 향했다. 베토벤의 생가가 있는 도시이고 대학교가 유명하다고 한다. 본의 거리 본 대학 본 대학교는 노란색으로 칠해져 있다. 우리학교 건물 색을 떠올리려고 애를 썼지만 쉽지가 않았다. 우중충한 하늘 아래로 노란색 건물은 어쩐지 귀엽고 안쓰럽다. 괜스레 나도 대학생이라고 소리치고 싶다. 나도 대학생이에요! 독일에서 태어났다면 여길 다녔을지도 모르죠! 소리 질러도 알아들을 사람이 k 밖에 없겠지만, 그래도 소리 지르는 건 참는다. 노란색 건물이 마주 보이는 가로수길 벤치에 앉아 노란색 건물 스케치를 했다. 못 그려도 열심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다. 초등학교 때 크로키부였고 특별 부활동으로 미술을 했다. 하지만 섬세함이 떨어지는 편이라고 우리 엄마에게 선생님이 말 했고 나는 피아노 학원도 가기 싫어하는 귀차니스트 초딩이었기 때문에 곧 미술부도 그만두었다. 하지만 그림 그리는 건 너무 좋아했다. 안타깝게도 미술로 상을 받아본 것은 중학교 때와 초등학교 때 두 번 다 그림이 아니라 조형물 만드는 것으로 받아보았다. 초등학교 때는 찰흙으로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태양에 활을 쏘는 사람을 만들어 상을 받고, 중학교 때는 철사로 밴드를 만들어 상을 받았었지. 그림을 그리는 것을 좋아하는데 못 그리는 건 참 불쌍한 일이지만 나는 아직도 그림을 그리는 것을 좋아한다. 여행지에 와서 그림을 그리는 것은 추억 삼기에 더할나위 없다. 본 시내를 한바퀴 다 돌고 생쥐와 함께 본까지 이어져있는 마인강 유역을 산책한다. 으, 생쥐. 진짜 많은데 징그럽지 않다고 생각하면 귀엽게 봐줄 수 있다. 하지만 무섭긴 무섭다. K가 성당을 그리고 싶다고 하여 중간에 멈추어 노래를 부르면서 잘생긴 독일 남자들을 구경했다. 딱 봐도 동양애처럼 생긴 애가 자기네들을 흘끗 거리고 있다는 걸 쟤네가 알까? 알 수 없는 동양 노래를 부르면서 잘생긴 너희를 훔쳐 보고 있다는 것을. 변태같지만 독일 애들은 잘 생겼다. 킷캣과 맥주를 사서 기차 안에서 다 비우고 마인타워에 갔다. 마인타워는 프랑크푸르트 야경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사실 마인타워에 가는 길에 조금 무서운 일이 있었다. 시위가 일어난 것 같았다. 사람들은 소리를 지르고 경찰차가 왔다갔다 했다. 프랑크푸르트 BHF에서 만난 경찰은 너네 그냥 숙소로 빨리 들어가는 게 나을걸? 하면서 우리를 비웃었다. 우리는 고민스러웠지만 일단 마인타워 가는 길은 잠잠한 것 같아 무작정 마인타워 쪽으로 향했다. 중간에 유흥가가 나와서 당황하며 우리는 서로의 손을 꼭 잡았다. 여행 이튿날 부터 국제 미아가 될 수는 없었다. 결국 멋있는 여경 언니한테 길을 물었다. 무슨 일이 있는 거냐는 우리의 말에 별 일 아니고 이제 괜찮아질 거다, 자세한 건 말해줄 수가 없다. 라는 답이 돌아왔다. 우리는 소란을 떨며 마인 타워에 도착했다. 마인타워에서 본 야경(실물이 정말 몇 백배 더 멋지다.) 야경! 왜 사람들이 그 이름에 열광하는지 잊고 있었다. 차가운 독일의 바람이 타워 위에 있으면 있는 그대로 느껴졌다. 우리는 저기가 우리가 간 곳이야. 저기가 거기야. 하며 한참 수다를 떨었다. 독일은 여름에 밤에 해가 늦게 져서(거의 10시가 넘어야 지기 시작한다.) 여행객으로서는 최고지만 야경을 보려면 아주 늦게까지 기다려야 한다. 우리는 사진을 엄청나게 찍고 지하철이 끊길까봐 걱정하며 지하철로 내려갔다. 어떤 미친놈이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면서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시위 장면에 유흥가까지 두 발로 걸어간 이 시대의 여성들이 아닌가. 집에 들어갔더니 프릭이 무슨 일 난 줄 알았다며 걱정을 했다. 우리는 오늘 어디어디를 갔다 왔다고 자랑을 하자 프릭이 눈이 휘둥그레져서 정말 열심히 돌아다녔다고 칭찬해주었다. 친절한 프릭! 하이델베르크에 도착해서 산 초코크라상 7월 6일 view에 빠진 하이델베르크 오늘은 날씨가 맑았다. 어제 내내 비가 온 덕분인지 너무 날씨가 좋아서 감사했다. 하이델베르크는 정말 유럽 동화 속에 나오는 곳 같았다. 파란 하늘과 조각 구름, 빨간 지붕의 연속. 하이델베르크에 도착해 쨍쨍한 하늘에 감사하며 선글라스를 꼈다. 버스를 타고 시내로 나가려고 탔는데 어떤 할아버지가 우리를 도와주겠다고 하면서 한국말로 말을 건냈다. 한국에서 살았던 적이 있다고 한다. 우리는 감사해서 초콜렛을 하나 드렸다. 오늘 시내는 일요일이어서 다 닫기 때문에 그냥 하이델베르크 구시가지 쪽으로 가는 것이 좋겠다고 추천해주었다. 그리고 우리를 그 쪽까지 데려다 주려고 해서 나는 슬슬 걱정이 되었다. 도움을 함부로 받다가 돈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는 얘기를 들었던 기억이 났기 때문이다. 다행히 그 할아버지는 우리를 다리 건너까지 데려다주고는 자신도 약속이 있다며 돌아갔다. 잠깐이나마 그를 의심했던 내가 너무 바보 같았다. 여행지에서는 뭐든 조심해야 한다지만 이렇게까지 의심병이었다니. 나름 사람들을 잘 믿고 산다고 생각했는데 마냥 그런 건 아니었던 모양이다. 다리 너머의 성과 빨간 지붕을 가진 중세도시. 반짝거리는 강 위로 사람들이 보트를 타고 지나가고 나는 여기가 2014년이 맞나 의심스러워졌다. 수 많은 인파들 손에 들린 갖가지 스마트폰을 보니 현대는 맞는 것 같은데. 이 도시는 활기차다는 생각 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다리 너머의 성 ![]() 학생 감옥의 낙서 학생 감옥은 온갖 자유로움과 청춘의 힘이 집결 되어있다. 잔뜩 있는 낙서 너머로 떠드는 소리가 들릴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알아듣지 못 하는 말로 떠드는 청춘들 사이에 껴서 웃는 타이밍만 눈치 보고 있다가 한 박자 느리더라도 깔깔깔 웃고 싶다. 1893년, 내가 태어나기 100년 전 열정 가득한 청춘들이 그 자리에 있었다. 학생감옥에서 나와 스타벅스에 앉아 한국에 있는 사람들에게 밀린 안부를 전하고 하이델베르크 성으로 갔다. 줄을 서서 티켓을 사고 올라간 그 곳에 마을 전경이 펼쳐진다. 위에서 아래로 보는 풍경과 바로 옆에서 보는 풍경이 다르다. 중세의 성은 오래된 모습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성이 그려진 뱃지 하나를 사고 오크 보관하는 곳에서 로제 와인과 이름 모를 와인을 마셨다. 처음 마셔보는 맛. 로제는 씁쓸하지만 일반 와인보다 가볍고 향이 예쁘다. 화이트 와인은 쉰내가 났지만 맛은 달고 차가웠다. 우리는 두 잔을 겨우 먹고 취해서 정신 없이 구경을 하다가 잔디밭에 들어가 누웠다. 차가운 풀 냄새에 눈을 감으니 술기운이 가셨다. 향기롭고 마법 같은 순간이었다. 잔디밭에 누워 청춘 드라마라도 찍듯 노래를 틀고 흥얼거린다. 지나가는 인도 남자와 가볍게 눈인사를 하고 파란하늘을 봤다. 행복했다.
그대로 잠 들 수 있다면! 이 하루를 날려도 유감이 없겠단 생각이 들었지만 적당한 휴식 후에 우리는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배가 고팠기 때문에. 정처 없이 구시가지를 맴돌다가 양고기 슈니첼을 겨우 먹고 철학자의 길을 가려다가 발길을 돌렸다. 우리는 충분히 걸었고 사색 할 여력이 없었다. 육체가 따라주어야 정신 수양이 가능하다는 걸 깨닫는 순간이다. 버스에서 중국인들이랑 간단하게 대화를 하고 1시간을 달려 프랑크푸르트에 돌아왔다. 프릭에게 잡채를 선물하고 수다를 떨다보니 밖엔 또 비가 왔다. 참 제멋대로인 독일 날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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