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우울
시대의 우울
최영미
97년도 글인데도, 내가 2014년도에 느꼈던 유럽을 만나볼 수 있다.
유럽을 가본 사람이라면 자신이 느꼈던 유럽과 비슷한 부분에서 웃고,
그것과 다른 부분이 있으면 새롭게 다른 사람은 어땠는지 느낄 수 있었다.
최영미는 자기 자신을 알기 위해 떠났다고 했다.
사실 2016년의 시간은 사회 전체를 어떻게 바꾸려고 노력하기 보다는 자기 자신에게 투자하는 시간이 월등히 많은 시대이다.
그녀가 살았던 90년대와는 다르고, 격동의 80년대와는 또 다르다.
현대의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잘 살아가기 위해, 자기 자신에 대해 많이 알기 위해 노력한다.
사회 전체를 바꾸고자 했던, 사회에 대해 무언가 환원하고자 했던 그 때와는 다르다.
우리는 우리 자신만을 보고 살기도 바쁘며,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제대로 알기에도 시간이 모자람을 느낀다.
그렇게 생각하면 자기 자신을 찾기 위해서 유럽으로 여행을 떠났던 그녀의 일기는 그때 그 시절보다는 현재의 우리와 더 맞닿아 있을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많은 것을 보고 느끼기 위해서 22살에 첫여행을 떠났던 난 많은 부분 그녀와 공감할 수 있었다.
그렇지, 이런 걸 느꼈었지.
내가 유럽여행을 다녀오면서 글을 쓰고 싶었던 이유가 이런 거였지, 하고 다시 느낄 수 있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여행기를 여행 가기 전에 읽지만, 여행기는 그 장소를 여행한 후에 느끼는 바가 더 많다. 내가 아는 그곳과 다른 사람이 느낀 그 곳을 비교하는 재미는, 내가 가보지 못한 곳을 글을 통해 상상하는 것보다 재미면에 서있어서 워등히 높다. 내가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던 세계를 똑같은 배경으로 하여금 느낄 수 있는 것이다. 같은 인종, 같은 시대의 사람이 느낄 수 있는 것은 또 다르고 같은 시대 다른 인종, 다른 시대 같은 인종 또한 다르다. 여러 개의 내가 갔던 도시의 여행기를 갔다 와서 또 읽다 보면 어느새 또 한 번 그 도시를 방문하고 싶어지고, 새로운 그 도시를 발견할 수 있다.
때로는 내 기억이 왜곡되기도 하지만, 그쯤은 별 거 아니다. 이왕이면 좋은 기억으로 왜곡되는 것도 좋겠지.
나는 몇 번이나 이런 식의 글을 쓰고 싶었는데, 나의 여행기는 아직 채 둘째장도 펼치지 못했다.
왜 이리도 게으르고 또 게으른지.
시대의 우울을 읽으면서 나도 몇 번이나 내 자신을 찾고자 했음을 깨달았다.
지금의 내가 비록 아무것도 찾지 못했더라도 나는 몇 번이나 내 스스로를 되돌아봤고 내가 사랑하는 것, 싫어하는 것을 찾아 헤맸다는 걸 이 책 덕분에 되새길 수가 있었다. 그 힘들고, 별 거 아니었던 시간들조차 나를 위한 시간들이었음을.
그리고 이 책을 읽고 이 책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 순간조차 나를 위한 순간들임을.
다른 사람들도 알아주길 바란다.
당신이 무엇을 싫어하는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환경을 좋아하고 어떤 환경에서 어떻게 할 수 있는지 그 모든 것은 여행을 통해서 알 수 있다. (확신은 아니지만 나는 그랬다) 가능하다면 여행을 해보시길. 어려운 길이라는 것도, 어려운 선택이라는 것도, 선뜻 나서서 하기 어렵다는 것도 알고 있지만, 내가 이렇게 당신이 당신에 대해 더 알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 글을 우연히 읽는다면, 이 시간 내가 기도한 것을 기억해주세요. 당신이 행복하길 2016년 7월 3일에 기도하고 잠들겠습니다.
나는 전혜린 선생님을 무척이나 좋아해서 특히 에세이집은 몇 번이나 다시 읽었는데도 시대의 우울에서의 독일 부분은 또 다른 느낌을 준다.
나, 전혜린, 최영미 모두가 대한민국에서 나고 자란 여자라는 건 같은데 같은 도시 같은 나라에서 느낀 정취는 셋 다 다르다.
이 책을 우연히 읽게 된 그 누군가가 독일을 가보지 않았다면 이 책에 소개된 어딘가를 가보지 않았다면, 한 번은 가보길 바란다.
그 속에서 새로운 당신만의 시대를 찾게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