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코의 미소

이군영 2017. 10. 29. 21:44


적은 것도 같은, 또 어찌 보면 많아 보이는 책을 읽었다.

이런 식으로 책을 정리하는 건 좀 못된 버릇인 거 같긴 하다.

그래도 짧게나마 정리하지 못 하면 영원히 내 앨범에 묻혀 있을 거 같아서 컴퓨터 언어로 정리를 해둔다.



쇼코의 미소


최근에 읽었던 책 중에 유일하게 두 번 읽은 책. 이 책을 읽고 나는 최은영 작가를 좋아하게 되었다.

좋아했지만 좋아하지 않게된 작가가 참 많은데, 왜인지 모르겠지만 최은영 작가는 싫어하지 않게 되리란 확신이 들었다.

단편집 하나하나가 다 좋았지만 특히 한지와 영주 편이 너무 좋아서, 그건 두고두고 몇 번을 더 읽었다. 지금 또 읽으래로 또 읽을 수 있다.

너무 좋아서 사진을 몇 개나 찍어뒀는지 모른다. 그 부분을 다시 읽으려고.




(1)

나는 중학교 일학년 때 선물로 받은 지질시대 구분표를 벽에 붙여놓고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내려가길 좋아했었다. 나중에는 당시 살앗던 생물들의 이름을 시대별로 차례대로 외웠고, 고등학교에 입학할 때쯤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암송할 수 있었다. 지금은 없지만 언젠가는 분명 존재했던 것들의 이름이 소중학게 느껴져서였다.

<생략>

나는 기도문 외우듯이 그것들의 이름을 나열할 수 있었다. 턱이 있는 어류, 폐어, 육지 달팽이, 해백합, 파충류 같은 포유류, 소철류, 시조새, 원시 현화식물, 그 이름들을 속으로 외울 때면 바깥 세계에 대한 관심이 사라졌고, 내 안의 생각과 느낌들이 무뎌졌으며, 나라는 존재가 조금은 희미해지는 것 같았다.

어디에서든, 어느시간이든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슬플 떄, 불안할 때, 화가 날 때, 누군가가 내 마음을 쥐고 흔들 때, 나는 그 이름들을 그저 간절하게 불렀고, 그들은 어느 정도까지는 현실의 고통에서 나를 분리시켜줬다. '원시지구'로 시작해서 '여러 종류의 발굽이 있는 동물'까지 중얼거리고 나면, 내가 그들의 이름을 부른 것이 아니라, 그들이 나의 이름을 불러준 것 같았다. 그럴 때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한지는 그걸 알았을까. 내가 그의 옆에서 사라진 생물들의 이름을 조용히 불러왔다는 것을. 그것으로 한지에 대한 내 감정을 억누르려 했다는 것을. 무엇보다도 그 애가 내 생각을 읽게 될까봐 두려웠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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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그전처럼 많은 말들을 쏟아내지는 않았다. 짧으면 몇 초, 길면 몇 분 정도 말없이 가만히 걷기만 했고, 길가로 기어나온 민달팽이를 주워서 풀숲에 던졌다. 나는 그 침묵 속에서 내가 얼마나 그 시간에 집착하고 있는지 알았다. 그 시간은 영원해야 했다. 다른 시간들처럼 함부로 흘러가버려서 과거 속에 폐기되어서는 안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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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자신을 조금이라도 무디게 해라. 행복한 기억이라면 더더욱 조심하렴. 행복한 기억은 보물처럼 보이지만 타오르는 숯과 같아. 두 손에 쥐고 있으면 너만 다치니 털어버려라, 얘야. 그건 선물이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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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가 내 노트에 자신의 이야기도 있느냐고 물었을 때, 그냥 솔직히, 내가 쓰는 이야기의 대부분은 너에 대한 것이라고 말했더라면 어땠을까. 그애가 살리지 못했던 동물들에 대해서 이야기했을 때, 당황해서 침묵하지 말고 '그건 네 탓이 아니야'라고 위로해줬더라면 어땠을까. 민달팽이의 기원 따위를 떠벌릴 시간에, 그애가 나에게 하고 싶었던 말을 할 기회를 줬더라면 어땠을까. 혹시 나의 그 단순함이 그애를 숨막히게 한 건 아니었을까. 어쩌면 내가 너무 자주 그애를 보려 했던 건 아닐까. 그애가 혼자 있고 싶어하는 시간을 내가 독점해서 나에게 질려버린 건 아닐까.

침묵은 나의 헐벗은 마음을 정직하게 보게 했다.

사랑 받고 싶은 마음, 누군가의 깊이 결합하여 분리되고 싶지 않은 마음, 잊고 싶은 마음, 잊고 싶지 않은 마음, 잊히고 싶은 마음, 잊히고 싶지 않은 마음, 온전히 이해 받으면서도 해부되고 싶지 않은 마음, 상처받고 싶지 않은 마음, 상처받아도 사랑하고 싶은 마음, 무엇보다도 한지를 보고 싶다는 마음을.


////


나는 영주를 보면서 계속 영주를 응원했다.

영주는 기나긴 대학원에서의 시간들과 수도원으로 도망쳤다는 생각을 무의식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그것이 영주를 계속해서 억누르게 만들었다. 물론 영주의 성격 자체가 그렇기도 했다. 열망하고, 원하게 되어서 실망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 기대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 그건 내가 항상 가지고 있는 마음들이었다. 그래서 계속 나도 모르게 영주를 응원했다.

영주야 힘을 내. 한지에게 가. 용기를 내봐. 넌 패배자가 아니야. 넌 누군가의 애정을 기대해도 돼. 그럴 자격이 있어.

나한테 하는 말들일지도 모를 말들을 속으로 계속 중얼거렸던 것 같다.


영주는 도망치는 것에 익숙해보인다. 무슨 잘못이 일어났을 때 자기 탓으로 돌리고 그것에 대해서 회피하는 성향이 강해 보인다.

나도 그런 편이기 때문에 더욱더 영주가 안타까웠을지도 모른다. 영주의 헐벗은 마음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이 누구나 당연하게 느낄 수 있는 마음들이었다.

사실 영주는 한지가 그렇게 행동한 이유를 자신의 행동에서 찾는다. 자존감이 낮아져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영주가 한지의 행동을 자신의 잘못으로 귀결하는 것은 그럴 수도 있는 행동이다. 하지만 내가 이 단편을 여러 번 읽으며 생각했던 건 한지와 영주가 참 많이 닮아 있다는 것이다. 영주는 한지가 자신과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더 나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한지와 영주는 참 많이 닮았다.

한지는 사실 사랑 받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한지는 한지의 헐벗은 마음을 정직하게 보진 못 했다. 때문에 두려움을 느꼈거나 그런 식의 달콤한 기대를 하는 자기 자신에게서 비겁함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혹은 동생을 생각하며 죄책감이 들었을 수도 있다. 두 사람이 너무 닮았기 때문에...



(2)
어떤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은 이미 죽어버린 지 오래였다. 나는 그저 영화판에서 비중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시나리오를 썼지만 이야기는 내 안에서부터 흐르지 않았고 그래서 작위적이었다. 쓰고 싶은 글이 있어서 쓰는 것이 아니라 써야 하기에 억지로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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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은 범인의 노력이 아니라 타고난 자들의 노력 속에서만 그 진짜 얼굴을 드러냈다. 나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눈물을 흘렸다. 그 사실을 인정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재능이 없는 이들이 꿈이라는 허울을 잡기 시작하는 순간, 그 허울은 천천히 삶을 좀먹어간다.


/
이 단단한 땅도 결국 흘러가는 맨틀 위에 불완전하게 떠 있는 판자 같은 것이니까. 그런 불확실함에 두 발을 내딛고 있는 주제에, 그런 사람인 주제에 미래를 계획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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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코의 미소에서는 가족의 이야기가 많이 다루어진다. 전체적인 단편 중에서 가족의 이야기가 다뤄지지 않은 편은 한지와 영주 정도인데 이것도 아주 없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 중에 첫 단편인 쇼코의 미소에서는 할아버지와 쇼코, 그리고 꿈 이렇게 세 가지 주제가 엉켜서 그려진다.

특히 꿈을 한 번 포기한 적 있는 사람이라면 꿈에 미쳐본 적 있는 사람이라면 이 소설을 읽고 어떻게 울지 않을 수 있을까.




(3)

투이네 집을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나는 투이네 집 맞은편 벤치에 앉아 창을 바라봤다. 저 창은 부엌 창이었지. 그 창으로 보이던 공원의 풍경과 부엌에 서서 저녁을 준비하던 호 아저씨의 뒷모습이 희미하게 기억났다. 쌀이 끓던 냄새와 고깃국을 먹을 때 씹히던 고수의 향, 응웬 아줌마가 만들어주었던 쌀푸딩의 단맛, 투이와 함께 벽에 기대앉아 스누피 만화책을 읽던 그 시간도, 그 시간은 아직도 씁쓸하게 내 마음의 좁은 수로를 따라 흐르고 있었다. 위태롭게나마 서로를 포기하지 않으려고 애쓰던 나의 부모와 상처받았기에 누구에게도 상처 주지 않으려 애쓰던 응웬 아줌마 부부가 서로에게 노래를 불러주던 시간이 거기에 있었다.



(4)

할머니는 일생 동안 인색하고 무정한 사람이었고, 그런 태도로 답답한 인생을 버텨냈다. 엄마는 그런 할머니를 이해하지 못했고, 그런 태도를 경멸했지만 시간이 흐르고 난 뒤 그 무정함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상대의 고통을 같이 나눠 질 수 없다면, 상대의 삶을 일정 부분 같이 살아낼 용기도 없다면 어설픈 애정보다는 무정함을 택하는 것이 나았다. 그게 할머니의 방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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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그날 이후로 말수가 적은 사람이 되었다고 고백했다. 엄마가 그 일에 대해 내뱉었던 그 순진했던 모든 말들과 이상주의에 기댄 세상에 대한 몰이해가 부끄러웠고, 세상의 단단함이, 상식으로는 도저히 뚫고 들어갈 수 없는 그 단단한 벽이 엄마를 침묵하게 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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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일도 하지 않았으니 이런 세상에 부역한 거라고 비판받아도 할말 없을 거에요. 전 해옥씨같은 용기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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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처럼 보이는 작고 마른 소녀를 뒤에서 안고 있는 키가 큰 소녀, 작은 소녀는 자기가 지은 물방울무늬 원피스를, 키가 큰 소녀는 목이 늘어난 티셔츠에 반바지를 입고 있다. 둘은 돌담 앞에서 아무 그늘 없이 활짝 웃고 있다. 지금은 사라진 서울 중앙박물관에 놀러갔던 날이었다. 코팅된 그 작은 사진은 귀퉁이가 닳고 반들반들해진 가죽지갑의 안쪽 주머니에서 발견되었다. 엄마는 유품을 전하기 위해 자기를 찾아온 이모의 딸에게 별다른 말을 하지 못했다. 그저 사진을 바라보며 '언니, 나의 작은, 순애 언니.'라고 조용히 속삭였을 뿐이다.



(5)

여자는 옆에 앉아서 꾸벅꾸벅 조는 노인을 바라봤다. 이 노인은 얼마나 여러 번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어버렸을까. 여자는 노인들을 볼 때마다 그런 존경심을 느꼈다. 오래 살아가는 일이란, 사랑하는 사람들을 먼저 보내고 오래도록 남겨지는 일이니까. 그런 일들을 겪고도 다시 일어나 밥을 먹고 홀로 길을 걸어나가야 하는 일이니까.




최은영 작가의 쇼코의 미소는 우리가 꺼려하는 이야기들. 꺼내고 싶지 않은 이야기들을 부드럽게 풀어냈다. 숨기고 싶어하는 이야기를 다른 이야기를 하듯 들려주는 건 정말 최은영 작가만의 매력인 거 같다. 어렵고 어색하고 듣기 싫은 이야기들은 잔잔한 파도처럼 우리에게 다가와서 이런 삶이 존재했다고 이런 이야기들이 있었다고 다시 한 번 되새겨 준다. 되돌아 보고 싶지 않은 치부를 부드럽게 일러준다. 그게 쇼코의 미소에서 얻을 수 있는 기쁨이고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