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 11월 &12월 의 책
왜 2018년도에 읽은 책을 몰아 기록하느냐! 라고 나를 몰아세우지 마세요
몰아 기록하든 천천히 하나하나 기록하든 그게 다 무슨 상관입니까
그때의 내가 여기에 있다는 걸 나 혼자라도 기억하면 되죠
1. 센트럴 파크 -귀욤 뮈소
2. 말하다 -김영하
저도 가끔 벽에 부딪힐 때면 어린 시절에 읽었던 책, 또는 10년 전에 읽었던 책, 또는 지금까지 읽었던 책 베스트 10 같은 것을 한번 적어봐요. 그리고 그것들을 다시 한번 들춰보죠. 그러면 '내 기억이 상당히 왜곡돼 있었구나'하고 전혀 색다른 의미에서 다시 재미를 느끼게 돼요. 그게 독서에 대해서 잃어버렸던 즐거움, 흥분, 이런 것을 되살려줍니다.
최고의 소설이란
다 읽었는데 밑줄을 친 데가 하나도 없고, 그럼에도 사랑하게 되는 소설. 읽으면서 한 번도 멈춰 서지 않았다는 거잖아요? 걸린 데가 없었다는 거죠. 그런데도 왠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아름다운 것을 보았다는 느낌을 받는 거에요. 남에게 요약하거나 발췌하여 전달할 수 없다고 느낄 때, 그런 소설이 최고의 소설이라고 생각해요.
시장에 가서 잘 익은 사과를 골라 바구니에 담으면서도 막상 집에 와서 장바구니를 풀었을 때 그 사과가 여전히 그저 '잘 익은 사과'에 불과하면 실망을 합니다. 그것은 사과 이상(혹은 그 이하)의 전혀 예기치 못한 그 무엇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무엇'을 소비자는 미리 알 수가 없습니다. 미리 안다면 그것은 아무 의미가 없겠지요. '내가 뭘 원하는지 잘 모르겠지만 내가 잘 모르는 바로 그것을 내놓으라'는 게 문학 독자의 욕망인 것처럼 보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비록 작가와 독자가 책이라는 상품을 매개로 시장에서 함께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다른 상품의 생산자, 소비자와는 관계의 양상이 다를 수밖에 없겠습니다.
3. 내 영화의 주인공 -하성란
"우리 엄마 말에 의하면 징글징글한 게 산다는 거래. 우리를 벌 세우고 지긋지긋한 반성문을 쓰게 하구, 쥐어박구. 넌 도대체 할 줄 아는 게 뭐냐고 몰아세우구, 그런 걸 귀신이 하니, 다 살아 있는 사람들의 짓이라구. 서울로 돌아가면 남아 있는 건 정말 공포 중의 공포라구."
"그렇지. 그래. 모든 일이 단 하루 동안이야. 마치 한 달쯤 전 같은데 말야.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지금은 잠이나 자두자구."
"현실이 공포든 아니든 으스스하다. 감자를 캐던 여자가 쓱 뒤돌아보면서 감자 좀 드릴까요?"
"야, 표송미, 정말 너라는 애는. 넌 정말......"
"알았어, 알았다구. 이젠 정말 입을 다문다. 내가 생각해도 난 너무해."
'죽음은 삶보다 더 보편적인 것이다. 즉 모든 사람은 죽지만 누구나 사는 것은 아니다.' '죽음은 위대한 평등주의자다.' '왜 죽음을 두려워하는가? 그것은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모험이다.' 등등, 하지만 하나같이 모두 애먼 곳을 긁고 있었다. 이제 열아홉의 나이에 활짝 피어보지도 못한 여자아이에게 해줄 말은 하나도 없었다. 철저히 입을 다물어야 한다. 상숙이가 종알거리고 있었다.
"나 하나 사라진다고 해서 너희 인생에 뭐가 바뀔까. 대학에 가고 결혼을 하고 십여 년쯤 시간이 흐르고 이렇게 맛있는 음식을 앞에 둔 채 심심풀이처럼 이야기하겠지. 상숙이라는 애 기억 나니? 그럼, 김상숙이었던가? 아냐, 이상숙인가? 벌써 죽은 지 몇 년이야. 그런데 니 아들은 잘 크니? 넌 요즘 살 빠진 것 같다. 다이어트 했니? 종알종알...... 그만 돌아가. 난 나 혼자 정리할 게 있어."
"그럼 왜 우릴 끌어들였니?"
침묵으로 일관하며 부침개를 뒤적이던 재희가 고개를 들었다.
"왜 우릴 끌여들였냐구, 칫. 잘난 김상숙도 겁이 난 거겠지. 그래놓고 이젠 필요없으니깐 돌아가라? 네 맘대로는 안 될 거다. 우린...... 학교에서 뛰쳐나왔을 때 셋이었듯이 돌아갈 때도 셋이어야 해. 네가 안 간다면 우리도 안 가. 나올 땐 네가 우릴 끼워주었지만 돌아갈 땐 우리가 널 끼워줄까 해. 너의 그 잘난 병명, 내가 중얼거리는 주문하고 너무 비슷한 그 병.... 그게 어떤 병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야."
4. 식사의 즐거움 -하성란
5. 베어타운 -프레드릭 베크만
6. 2017 제 8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자기 잘못을 인정할 줄 알고 도리를 지킨다는 인상을 상대방에게 심어주려는 목적에서였다. 그게 더 근사한 일이라고. 내가 더 멋있다. 무슨 잘못을 진짜 하긴 했는지, 그걸로 미안한 감정을 가졌는지의 여부는 아무 상관 없단다. 핵심은 그런 말을 할 줄 아느냐, 모르느냐뿐이거든.
사람을 때린 건 잘못이지만 그 여자 입장에서도 억울할 수 있다는 거예요. 정확히 그걸 뭐라 표현하면 좋을지 모르겠는데 어딘가 나를 설득하고 싶어했어요. 언제든 우리도 그 여자가 될 수 있다고, 사정이 생겨서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할 때가 있을 것이고, 그걸 보고 누가 웃는다면 기분이 나쁠 것이다, 그게 뺨을 때려도 된다는 건 아니고 너나 나나 때릴 사람은 아니겠지만 기분은 나쁠 거야. 그런 소리를 하는 거예요.
뭐.
뭐?
그래, 뭐.
그래서, 뭐.
뭐, 씨발.
나보고 뭐 어쩌라고.
"죄송합니다. 선생님을 사랑하는 건 아무래도 잘못이니까."
고개를 숙이는 연주가 무서웠단다. 존나 무서웠어. 무릎을 꿇으니까 더 무서웠다. 그 완벽한 사과의 자세가 무엇을 뜻하는 거겠니. 그게 더 우월해지는 거라고 누가 가르쳤는데. 연주를 따로 불러서 미안하다, 아무것도 미안하지 않은데 미안하다고 말하면서 그게 더 멋스러운 거라고 바로 내가 가르쳤는데 그걸 연주가 진짜 잘하고 있더구나. 누가 봐도 훌륭했으므로 나는 무서웠단다. 아무리 봐도 진짜 사랑하는 것 같잖아. 그런 건 내가 어떻게 용서할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 사랑한다는데, 무엇보다 연주의 부른 배가 무서웠다. 그걸 남들도 다 주목하고 있어서 사랑했잖아요, 사랑. 섹스 아니라 사랑. 머쓱하게 다시 강조해야 했을까.
7. 생의 한가운데 -루이제 린저
또는 자네 마누라가 유대인인가?
그는 고개를 흔들었다. 정치적인 얘기가 아니야, 라고 그는 피곤한 듯이 말했다. 아주 바보 같은 연애 이야기야, 기막힌.
그 찰나에 나는 그것이 니나에 관한 것임을 알았다. 이 테마에 관한 대화에 대해 몹시도 강한 반감이 마음속에 치밀어올랐던 까닭에 나는 내 생각보다 싸쌀하게 말했다. 우리는 사실 고백의 연령은 지났다고 생각하네.
그러나 그는 이 사건과 또 보고하려는 욕망에 그처럼 사로잡혀 있던 까닭에 내 거부도 듣지 못했을 정도였다. 그는 나에게 곤혹에 넘친 시선을 던지고는 우울하게 중얼거렸다. 자네는 이 모든 것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네. 이런 일은 자네한테는 중요하지 않으니까. 그런 자네가 부럽네. 다음 순간 그는 책상을 치고는 큰 소리로 말했다. 그렇지만, 그건 중요한 거야. 너는 그런 걸 이해해야 했어. 사람이 갑자기 자기 생을 잘못 보내서 망쳐버렸다는 것을 아는 건 비참한 일이야.
니나는 너무 말을 많이 했다. 나는 더 얘기하지 못하게 명했다.
아, 라고 니나는 경멸하듯이 말했다. 그건 이제는 문제가 아니지 않아요. 나는 죽고 싶은 거예요. 사는 것보다, 여기에 사는 것보다 훨씬 아름다운 것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요. 공부하고 먹고 자고 직업을 갖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그게 뭐예요? 그것만으로는 부족해요. 사람은 그것이 습관이 되어버리고 마치 그것에 의미가 있는 것처럼 스스로 타이르는 거예요. 아마 그것밖에 모르고 필요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의의가 있을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내가 어떻게 그걸로 만족할 수 있단 말이에요? 멋진 순간이 우리 생애 있다는 것을 나는 책에서 읽어서 알고 있어요. 사랑을 하거나 아이를 낳거나 어떤 진리를 발견한 순간이 그렇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그런 건 다 지속되지 않아요. 우리는 다만 조금만 맛보기로 구경만하고는 다시 뺏기고 맙니다. 그건 절대로 나에게는 충분하지 않아요. 그래서 나는 죽고 싶어요. 아시겠어요? 그러니까 선생님은 나에게 말해도 괜찮아요.
거기까지 읽었을 때 니나는 짧은 웃음소리를 냈다. 그러고는 심각하게 말했다.
나는 전에는 거짓말을 한 남자를 증오했었어. 거짓말은 나에게는 비겁으로 보였었어. 그리고 비겁을 나는 싫어하니까. 나에게서도 다른 사람에게서도. 그런데 지금은 나는 우리가 마치 밤이 필요한 것처럼 비밀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 전에는 생이 투명하고 공개적이고 슈타인의 말처럼 언제나 감독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우리는 밝은 대낮의 햇빛 속을 똑바로 곧은 길을 걸어갈 수 있고,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바라는 것을 모두 사람들을 향해서 큰 소리로 말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 자, 인제는 알았지? 나는 이러니까 그것을 받아들이든지 말든지는 맘대로 할 것이고 나는 이대로 있고 바꾸지는 않겠다, 라고ㅡ그러나 이런 궤도가 하나밖에 없는 생을 가지고는 발전해나갈 수가 없는 거야. 나는 이제는 우리가 거짓말을 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 어린애들도 종종 그것이 필요하고 우리는 그것을 허락해주어야 해. 그것은 애들이 누구나 호기심을 가지고 건드리고 파괴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 그들의 생 위에 펼친 베일이야.
물론 그래, 라고 니나는 대답했다. 우수는 다만 인식의 시초일 뿐이야.
갑자기 니나는 웃었다. 내가 무슨 현명한 말을 하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군! 물론 나는 기쁘게 살고 있어.
가짜 우수도 이 세상에는 있어, 라고 니나는 계속해서 말했다. 사람들의 눈만 보아도 그걸 알 수가 있어. 많은 사람들에 있어서는 우수는 다만 표면에만 떠 있고 꾸민 의도와 감상주의를 나타낼 뿐이야. 정말로 우울한 눈의 위층은 활기와 주의력 또는 바쁜 빛을 띠고 있어. 그러나 그것은 다만 포장에 불과해. 그 뒤에는 무대가 있는데 그것은 보통 때는 보이지 않지만 때때로 포장이 들춰지면 그 뒤의 어둠 속에 아무 희망도 분격도 없이 한 남자가 앓고 있고 누가 그에게 가서 그를 더 정다운 세계로 데려가려 하면 그것을 의심하는 것을 볼 수 있을 거야. 그는 더 정다운 세계가 있다는 것을 믿지 않아. 그는 이미 그의 우울에 의해서 마비되어 있는 것이야. 그는 우리를 보고 웃고 마치 우리의 말을 믿는 것처럼 하지만 우리와 같이 가기 위해서 일어서지는 않아.
나에게는 소재가 중요하지 않아.
너에게는 중요하지 않을지 모르지만 독자에게는 중요해. 나는 말했다.
독자들! 이라고 니나가 내던지듯이 말했다. 독자는 오락을 요구하고 있어. 작가는 따라가기 쉬운 안이한 이야기를 그들에게 제공해야 하는 거야. 처음에는 이것이 일어나고 다음에는 저것, 그리고는 그것. 그렇게 해서 맨 끝에는 행복하건 불행하건 관계없이 하여간 둥근 결말이 있어야 해.
마치 극장에서처럼 모든 것이 질서정연하게 진행되어가야 돼. 그러면서도 사람들은 자기가 리얼리스트라고 생각하고 있어. 인생에서는 어떤 계산도 들어맞는 법이 없고, 아무런 결말을 갖고 있지 않는데도. 결혼도 아니고 죽음도 다만 외관상 결말에 불과해.
생은 계속해서 흘러가는 거야. 모든 것은 그렇게도 혼란하고 무질서하고 아무 논리도 없고 모든 게 즉흥적으로 생성되고 있어. 그런데 사람은 거기서 작은 조각을 끌어내서 현실에는 있을 수 없고 모든 생의 복잡성에 비하면 우스울 정도인 조그마한 알뜰스러운 설계도에 따라서 건축하고 있어. 모두가 다 꾸며진 사진에 불가해. 내 소설도 마찬가지야.
8. 상냥한 폭력의 시대 -정이현
9. 푸른 수염의 첫번째 아내 -하성란
10. 햄릿
피가 끓으면 마음은 함부로 혀가 맹서를 하게 두는 법,
얘야, 타는 불은 환히 빛을 내지만 열은 없어.
약속이라는 것도 다짐하는 동안 빛도 열도 꺼지기 쉬우니
그런 걸 약속이라고 생각하면 안된다.
개인도 마찬가지라네.
태어날 때부터 결점이 있다고 하면 그건 그 사람의 잘못은 아니지
태어날 때 마음대로 천성을 선택할 수는 없으니까.
또는 어떤 한 가지 기질이 지나쳐
이성의 울타리와 성벽을 무너뜨리기 때문에
도를 넘어 예의를 해칠 때는
그것이 자연의 선물이건 운명의 장난이건
그 외의 장점이 제아무리 순수하고 무한할지라도
바로 그 결점 때문에 비난받을 수 밖에 없네
티끌만 한 악 때문에 모든 고상한 미덕이
비난을 받는다는 말일세.
왕-그대가 부친을 사랑하지 않았다고는 생각지 않네.
그러나 사랑에도 때가 있어, 내 경험으로는
그 시간이라는 것이 사랑의 불꽃과 불길을 좌우하네.
사랑의 불이 타는 중에도 심지 찌꺼기 같은 것이
불길을 약하게 하지.
그 어느 것도 좋은 상태로 지속될 수는 없는 법.
좋은 일도 지나치면 그 과도함 때문에 죽기 쉽거든.
그러니 우리가 하고 싶은 일은 생각이 들 때 해치워야 해.
세상에는 방해되는 일도, 손도, 사건도 많으니
해야겠다는 생각은 사그라지고 약해지고 지체되어
결국 이 해야 한다는 생각도 부질 없는 탄식처럼
일시 위안은 되겠지만 몸을 상하게 한다.
햄릿-그럴 필요 없네. 나는 예감이라는 걸 믿지 않으니까.
참새 한 마리가 떨어지는 데에도 신의 특별한 섭리이니,
죽음이란 지금 오면 앞으론 오지 않을 테고
지금 오지 않는 대도 언젠가는 올 것이야.
각오할 뿐이네.
이 세상에 죽을 때를 아는 이는 아무도 없는데
일찍 죽는 것이 대수인가?
순리를 따르세.
11. 그 해 여름 <중도 포기...>
오늘, 통증, 감정의 부추김, 새로운 사람에 대한 흥분감, 손끝 너머에 있을 게 분명한 커다란 행복, 속마음을 잘못 읽을 수도 있고 읽고 싶지 않으며 항상 예측이 필요한 사람들 주위에서 보이는 내 서투른 행동, 내가 원하고 또 간절히 나를 원하기 바라는 사람들에게 쓰는 절박한 간계, 세상과 나 사이에 자리하는 듯한 라이스페이퍼처럼 얇은 미닫이문 같은 몇 겹의 장막, 애초에 암호화되지도 않은 것을 변환하고 또 해독하려는 충동...... 이 모든 것이 올리버가 우리 집에 온 그 여름에 시작되었다.
한번은 테이블에서 노트를 옮기다가 실수로 유리컵을 넘어뜨렸다. 컵은 잔디밭으로 떨어졌지만 깨지지는 않았다. 가까이 있던 올리버가 일어나 컵을 주워 제자리에 놓았다. 그것도 노트 바로 옆에 놓아 주었다.
무슨 말로 고마움을 표시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안 그래도 되는데." 마침내 내가 입을 열었다.
그는 자신의 대답이 가볍거나 태평한 말이 아닐 수도 있음을 내가 알아채도록 충분한 시간을 주었다. "그러고 싶었어."
그가 그러고 싶었다, 라고 나는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몰랐다. 욕망의 시험은 자신이 뭔가를 원한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손에 넣으려는 술수에 불과하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