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부로 겨울 학기가 끝났다. 6주의 시간이었다. 20개가 넘는 소설을 읽었고 하나의 소설을 합평 받았으며 쉬는 시간 동안 퇴고를 해볼 참이다. 근데 마지막 수업이, 마지막 수업에서 선생님이 한 말이 잊혀지지가 않고 하루종일 머리 한 구석을 차지한 채로 맴맴 떠든다. 글을 왜 쓰느냐. 그리고 지금 왜 그 글을 썼느냐. 지금 이 시대의 읽는 사람들에게 그 글이 왜 필요하냐. 


글을 왜 쓰느냐는 말은 소설을 쓸 때마다 고민한다. 내려지는 결단은 비슷하다. 수업을 들으면서는 좀 더 속물적인 느낌으로 형태가 드러났지만. 나는 대부분 다른 사람들이랑 함께 하기 위해서 소설을 쓴다. 너만 그렇게 생각하는 게 아니야. 나도 이런 생각을 했어. 니가 이상한 게 아니고 여기에 이런 사람도 있어. 이렇게 소리치고 다른 사람들이랑 소통을 하려고, 그러려고 소설을 쓴다. 너랑 비슷한 내가 여기 있음을 알아봐달라고. 그때 느껴지는 것이 위로든 공감이든 교훈이든, 뭐든간에. 나를 좀 봐달라고. 이거 같이 하자고.

참 애달프다.


원래는 이렇게 애달프진 않았다. 나는 내 이야기들을 보면서, 내 소설을 읽으면서 사람들이 나는 이렇게 살지 말아야지 교훈을 얻거나 내가 뭐 특이한 나쁜 놈은 아니었네 하고 안도하거나 그래 나도 이런 적 있었어 하고 공감했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다. 짧게는 이십여분 길게는 몇 시간을 걸려 읽을 내 소설을 읽고 잠깐의 다른 생각이라도 들었으면 좋겠다고. 처음에는 그 정도의 감정이었다. 물론 그보단 끝까지 읽어주는 게 제일 기쁘겠지만. 어쨌든 나 좀 봐달라고 씁니다 보다는 뭐가 남는 소설을 쓰고 싶어서 글을 씁니다, 이게 더 났잖아. 이건 애달프지 않고 괜찮잖아.


근데 실은 아니다. 난 뭐가 남는 소설을 원한 게 아니다. 나에 대한 관심을 원했다. 이런 기분 느껴본 적 없어요? 저만 느꼈어요? 이런 적 진짜 없어요? 이게 공감이 안 가요? 나만 이러는 거 아니죠? 나는 내가 했던 것과 할 것과 느꼈던 것과 느낄 것들을 다른 사람들이랑 같이 하고 싶었다. 다른 사람들이랑. 

나는 기본적으로 사람들을 너무 좋아한다............ 인류를 끔찍해하면서 인류를 사랑한다. 한국이 싫으면서 한국이 좋고 지구가 혐오스러운데도 지구를 아낀다.


이게 내가 가을 학기와 겨울 학기를 들으면서 신나게 소설을 쓸 수 있었던 가장 첫 번째 이유이자 약간의 궁극적인 이야기이다. 뭐 더 들으면 바뀔 수도 있다. 

이 수업의 스물 몇명의 사람들이 내 글을 읽고 얘기해주는 것도 이렇게 기쁜데 -비록 돈을 지불했지만- 도대체 더 많은 사람들이 내 소설을 읽어주면 난 얼마나 더 기뻐진단 말인가. 얼마나 더 벅찬 감정을 느낄까. 얼마나 더 행복할까. 상상이 가지가 않는다. 

다른 사람들이 내 소설을 읽고 리뷰를 써주면 그게 혹평이든 호평이든 너무 행복할 것 같다. 내가 너무 관심종자인가. 

지금도 스물 몇명의 분들이 혹평을 하든 호평을 하든 얘기만 해주시면 그게 나는 참 좋다. 내 소설을 끝까지 읽어주다니. 너무 좋다.



그치만 지금 왜 그 글을 썼느냐. 지금 이 시대의 읽는 사람들에게 이런 소설이 필요한가. 

이 질문을 듣자 나는 아주 작아졌다. 

사실 왜 소설을 쓰세요? 하는 질문보다 이 질문이 더 더 더 대답하기가 어려웠다.

왜 지금이냐고요... 왜 필요하냐고요.... 

나는 왜 이 질문에 대해서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을까. 왜 나여만 하는가에 대하여서 왜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을까. 아주 자신만만한 인간이고 참 근거 없는 자신감이 하늘을 찌르는 인간이다. 취업 준비할 때 나라는 인간이 이 회사에 왜 필요한지는 그렇게 여러 번 여러 문장으로 바꿔썼으면서 소설을 쓰면서 왜 나라는 인간이 독자들에게 필요한지는 고민을 한 번도 안 해봤단 말이지. 왜 그랬니. 왜ㅋㅋㅋ?


이건 진짜 오늘부터 고민해본다. 왜 나여야 하는지. 나랑만 할 수 있는 소통이 뭔지. 왜 나랑 놀아줘야 하는지. 그런 거~ 

잘 모르겠다. 내가 생각하는 나의 장점. 같은 거라도 다이어리에 하나씩 써봐야 하나. 그런 거 대학교 교양 수업 때 이후로는 써본 적이 없는데요...



하지만 나는 쓰는 걸 멈추지는 않는다. 

우선은 쓰는 것. 2019년도의 내 목표다. 모르겠고, 생각하지 말고, 우선은 쓰는 것. 

일단 지금은 lonely night 이 너무 행복하다. 










글을 쓸 수 있을 때 글을 써야지.


일기를 쓸 수 있겠다 오늘은


나는 요새 너무 힘들었다. 뭐가 힘들었냐고 말하면 뭐가 힘들었다고 말하기도 어려운 일주일을 보냈다. 글을 쓰는 데도 계속 괴로운 내용 밖에 써지지가 않았다. 글은 나를 반영하니까 어쩔 수 없는 셈 치더라도 그 이야기들은 너무 장황했고 너무 감정적이다. 감정적인 게 내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뭐가 됐던 난 감정적인 인간이다.


오랜만에 전에 썼던 일기를 봤다. 2015년도 일기였는데 그때의 나도 엄청나게 힘들었나 보다. 내용의 끝은 거의 덜 불행한 게 행복한 것이라고 끝나지고 있었다. 지금의 나는 어떠한가. 3년 후의 나는. 


지금의 나는 덜 불행한 것이 행복한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덜 불행한 게 행복한 건 맞는 말이다. 하지만 좀 더 행복해질 필요가 있는 것이 진리다. 나는 행복해질 필요가 있다. 그걸 행복함을 느끼고 나서야 깨닫게 되는 게 모순적이지만, 난 행복함을 더 좋아하는 인간인 것. 그걸 왜 이제서야 인정하게 되었을까. 


12월은 고되었다. 몸이 실제로 아팠고 그게 스트레스성인지 아니면 그냥 몸이 약해진 건지 알 수가 없다. 이유를 알 수 없는 것들은 항상 나를 고단하게 만들고 우울에 잠기게 만든다. 그 우울이 힘이 될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다. 이번엔 안타깝게도 아니었다. 몸이 아프고 정신 상태가 우울하고 정서가 불안했다. 계속 사람들을 찾았고 내 아픔을 토로하려고 애를 썼다. 


어제도 울었다. 사실 별 건 아니었다. 모든 사람들이 나를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 혹은 그 사람들이 나를 좋아한다고 다른 사람들이 나에게 그 사람의 모든 걸 말해줄 의무가 있는 건 아니라는 것. 그것들을 알면서도, 인정하지 않으려고 했고 그래서 모른 체 내 살 길만을 찾아서 그렇게 이기적으로 굴어서 벌을 받은 것일 수도 있다. 게다가 나 역시도 내 모든 걸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지 않으니까. 다른 사람도 그럴 수 있다는 것을 왜 나만 생각하지 않고 지내고 있었을까.

내가 말하지 않는 만큼 다른 사람들은 나에 대해 잘 모른다. 내가 어떻게 생각하고 살아가는지 내가 어떤 마음 가짐으로 내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내가 말하지 않는 이상 아무도 그것에 대해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은 엄마가 아니니까. 그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더 사랑해야지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거만큼 날 사랑해줄 의무는 없으니까. 근데 나는 매번 나를 세계의 중심으로 생각한다. 어린 아이의 태도다. 나도 알지만 잘 바뀌지가 않는다. 나는 항상 내가 주인공이어야 하고 내가 무대의 중앙에 있어야 한다. 내가 눈을 감으면 지구가 멈추는 줄 아는 멍청이. 


모든 사람들이 날 신뢰하지 않는다는 그 사실이 날 초라하게 만든다. 내 자존심을 상하게 만든다.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 받을 수 없다는 진리는 20살 때 깨달았으면서, 나는 아직도 매번 상처를 받는다. 알고 있잖아. 그건 내가 어떻게 한다고 바뀌는 게 아니다. 나는 그냥 내 생각만 하는 수 밖에 없고 그 사람들은 그 사람들 생각만 하는 수 밖에 없다. 삶이 이토록 힘든데, 너까지 어떻게 신경을 쓰니.


눈치가 없다는 건 사실은 나 이외 그 누구도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다른 사람의 눈치, 다른 사람의 기분 상태를 살피지 않는다는 것이다.

난 그 사실을 아는데 왜 계속해서 그렇게 생각할까. 이해가 안 가는데 그렇게 계속 생각할 것이 그런 식으로 살겠지. 살아가겠지. 



내가 손을 댈 수 없는 일에 죄송하다고 고개 숙이고 내가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생겨날 수록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 스트레스가 몸으로 찾아와도 모른 체 몸을 굴린다. 나는 항상 그런 식이다. 도대체 이렇게 이기적인 인간을 주변 사람들은 왜 사랑해주는 거야. 그걸 생각하니까 이제는 다른 사람들이 대단하게 느껴진다.


내년엔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 받지 않고 좀 더 기대하지 않고 살아가야지. 기대하지 않는 척을 하고 기대를 하는 그런 아이 같은 태도는 버려야지.

왜 오늘에서야 그걸 다짐하는지 모르겠다. 지금 나오는 노래가 그냥 너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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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쓰고 있다고 생각하다가 문득 다시 읽으면 내 글이 아니게 될 때가 있다.

그러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천천히 이렇게 글을 쓰게 된 감정선을 되찾아야 한다.

다시 읽다 보면 어긋나고, 내가 원했던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그 글을 쓰게 시작한 순간부터는 일단 이야기는 완성되어야 한다.

끝내지 못한 이야기들은 계속 나를 기다리고 그 순간에 영원히 잠들어 나 혼자만 기억하게 되니까.

다시 읽는 사람이 다른 사람이 아니라 또 다시 나이더라도, 그 글들은 완성 되어야만 한다.


장편 하나를 공모전에 내보고, 단편 하나를 두 달 내내 붙잡고 고치다가 기분 내키는 대로 단편 하나를 뚝딱 완성시켜 버리고

그 다음 단편은 내내 손에 잡혀 나아갈 길이 보이지가 않는다. 어디서부터 고쳐야 하는 지도 잘 모른다. 쓰다가 놓치면 다시 읽고 쓰다가 놓치면 다시 읽는다. 이럴 때는 이게 내가 쓴 글이 맞긴 맞는 건가 하는 의심이 든다. 정해진 길 없이 계속 쓰여지는 걸 보면 내가 쓴 게 맞긴 맞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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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밖에 나를 믿어주는 사람이 없다는 걸 자꾸만 잊고 산다.

그것만 기억해도 고달픈 순간에 아파하고만 있진 않을텐데. 힘이 조금이라도 날텐데.


스트레스가 크다. 어디에서 오는 지도 안다. 하지만 벗어날 방법은 모른다.

마냥 도망치고 싶지는 않다. 어렵더라도 노력하는 삶을 살고 싶다. 갑자기 이루어지는 건 아무 것도 없는 걸 아는 나이가 되었다.

자리에 앉아 노력하거나, 다른 일을 해서 벗어나거나, 어떻게든 나아지려고 나아가려고 발버둥 치는 걸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할 줄 알게 되었다. 여기까지만 해도 기특하지만 생각만 하지 않고 행동으로 옮기면 더욱더 기특할 것 같다.


내가 나아지거나 이 상황을 벗어나거나 두 가지 선택권이 있는 경우에 나는 항상 후자의 것을 택했다. 그게 가장 쉬웠으니까.

선택하지 않는, 못 하는 선택지가 없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지금은 그것조차 할 수 없다.


많이 읽고 많이 쓰고 많이 집중하는 것 밖에는 방법이 없다. 그것마저 내려놓으면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 

내가 꿈 꿔온 순간을 기대하면서 계속 글을 쓰자. 글을 쓰는게 유일한 도피로가 된 지금, 여기에서조차 상처 받고 아파하고 싶지 않다.

글을 쓰지 못 해서 아파하고 싶지 않다. 이야기가 생각나지 않아서 아파하면, 그것마져 스트레스를 받으면 나는 살 수가 없다.

힘내자. 힘을 내서 단어를 모으고 문장을 만들고 문단을 만들자. 내 머리 속의 이야기를 사람들과 공유하자. 

이 이야기로 다른 사람들에게도 내 용기가 닿기를 바란다. 그래서 나 역시도 다시 용기를 낼 수 있기를 바란다.


하자. 쓰자. 힘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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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랜만에 소설 하나를 완성했다. 나한테 있어서는 아주 오랜만의 일로 거진 3-4년만이니까 솔직히 말할 것도 없이 기쁘다. 글 쓰는 걸 스트레스 받지 않고 잘 하는 편치고는 속도가 매우 느렸다. 왜냐하면 매우 게을렀고 그것보다 할 일이 많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1순위가 바뀌어야 행동에 옮길텐데 1순위가 바뀌지 않으니 행동에 옮겨질리가 없다. 그래도 드디어 초고를 완성했고 얼마 전에 읽었던 작가의 수필이 생각나 이번 초고는 제본을 해보았다. 9월까지는 아직 한 달 정도 남았지만 그 안에 다른 사람들한테 보일만한 작품인가를 고민하다가 결국 미완격인 글을 제출하게 되더라도 지금만은 기분이 너무 좋다. 


그 글을 끝내기 위해 미적지근한 부분을 뭉뜽그려 썼다는 건 솔직히 피할 수 없는 비판이다. 그리고 내 안에 있던 알 수 없는 왜색의 정체도 깨닫게 되었다. 어린 시절부터 일본 문학과 만화를 즐겨보며 자라온 우리 세대에 당연한 거긴 하지만 이번 글을 쓰면서 그런 경향을 많이 느껴서 속상했다. 난 사실 일본은 딱 한 번 밖에 가본 적 없는데도. 그래서 다 쓰고나자 이게 한국 사람인 내 글이 맞나? 싶은 마음이 들어서 후련함과 동시에 찝찝함이 마음 한 구석에 남았다. 때마침 알라딘에서 시킨 책이 배송 왔다. 일단 책을 읽으면서 계속 고쳐봐야겠다. 나만 읽고 나만 고쳐 쓴 거라 내용 안에 왜색을 나만 느끼는지 역시 나 밖에 모른다.


더위 속에 드디어 잠시지만 소나기가 왔다. 벼락과 천둥을 동반한 소나기는 잠깐이지만 뜨끈한 지면을 식히고 떠났다. 요새는 sigrid 라는 가수의 노래를 자주 듣는다. 목소리에 섞인 찢긴듯한 분위기가 좋다. 옛날에 혁오 밴드를 좋아했던 것도 혁오의 찢긴듯이 부르는 목소리가 듣기 좋아서였지, 하고 세상 취향을 되돌아보게 된다. 


최근 친해진 친구와 취향에 대해 떠든다. 친구는 20대 중반이 되어서야 취향에 대해 얘기할 수 있는 우리 사회가 서글프다고 했다. 하지만 취향은 세월이 지나감에 따라 달라지기 마련이고, 같은 취향만 반복하면 그 깊이가 깊어져서 좋겠지만 새로운 것에는 데면데면해지게 된다. 그러므로 지금쯤 취향을 찾는 척 20년을 흘려 보내도 또 좋을 것이라고 친구에게 말했다. 나더러 맞아, 우리 60년이나 더 살 수 있어, 라고 말했다. 아아, 그랬지 참. 하고 깨닫게 되는 지금.


글을 쓰면서 가장 많이 했던 짓은 책 읽기 만화책 보기였는데, 인상 깊은 만화책이나 책을 읽으면 나이부터 보고 만다. 우리 나라처럼 나이대로 차례차례 해야할 일이 있는 나라가 또 있을까. 거기에 도달하지 못 하는 사람에게 성공의 유무로 핍박을 하는, 그런 점은 나도 지양해야 하는 건 안다. 그치만 자꾸 작가의 나이에 집착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자꾸만 들여다보고 너무 이른 나이에 이런 좋은 글을 썼으면 머리가 멍해진다. 그리고 계속 조급해하며 나도 열심히 타자를 두드리게 되는 것이다. 나도 빨리 여러 권을 써야지. 그러면 언젠가 이게 내 마지막 책이다 싶은 책을 낼 수 있을 거 같은 기분이 든다. 그 책을 쓰기 위해 여태까지 열심히 다른 책을 썼을 거 같은 기분. 그런 이야기를 써버리면 나는 그 날 이후로 글자를 쓰지 못 할지도 모른다. 지만 일단 이번 이야기는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이 녀석이 열심히 내 온 힘을 다 바쳐 쓰지 않았다는 것도 아니다. 물론 이거 아니면 안 되는 것도 아니어서, 어떻게 보면 미적지근한 마음이긴 하지만 나는 항상 미적지근한 온도인 사람이니까. 


내 새끼들은 항상 나를 세상에 살아남게 해주는데, 그 이유 중 하나는 다 못 쓴 글을 내가 죽었다고 다른 사람들이 읽어보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 때문이다. 미완성의 글을 유작이랍시고 들쳐내는 건 진짜 잘 쓰는 천재 작가여도 싫을 거 같다. 


7월도 정리가 되어 가니까 읽은 책을 정리하고 한 번 올려야지. 8월엔 몇 권이나 읽을 수 있을까. 자꾸 책 욕심만 늘어나서 큰 일이다. 쓰라는 글은 쓰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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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이맘 때는 미래에 대한 고민을 더 많이 하게 되는 걸까? 현실적으로? 


어떻게 살아야 좋은 삶을 살 수 있는 지에 대해 고민하는 날들이 많아졌다. 아니, 그런 시간들이 많아졌다고 보면 더 확실할까. 아직 나이가 많지는 않지만 또 적다고 하기에는 조금 갸우뚱 하게 되어서 뭘 하면 좋을지에 대해서 계속 생각한다. 솔직히 말해서 사춘기 때보다 더 많이 고민하는 것 같다.


좋아하는 것 위주로 하나씩 쌓다 보면 어떻게든 되겠지 싶다가도, 이렇게 한치 앞의 인생만 설계하다가 나중에 후회를 하게 되는 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6월이 끝나가기 때문일까. 벌써 2분기가 지나갔다는 게 솔직히 믿기지가 않는다.


책을 읽고 운동을 하고 몸과 마음을 가꾸는 것 외에는 자랑스럽게 이렇다 할 성과는 없다. 물론 조금씩이라도 나아지고 달라지는 게 중요하겠지만. 


내게 가장 실용적이고 할 수 있는 것에 가까운 것들을 하나씩 해보려고 준비 하고 있다. 물론 그걸 하려면 포기해야 하는 것들이 생긴다.

대부분 놀고 즐기는 것들인데, 1년 동안 솔직히 꽤 즐긴 거 같아서 포기하는 게 그다지 아쉽지가 않다. 바보 같은 일인가. 


이 시점에 해야되는 일들이 있을까? 잘 모르겠다. 뭘 준비하고 있어야 갑자기 세상 밖에 내다 버려지더라도 차분한 마음을 가질 수 있는 거지? 


1.

혼자 살기로 결정한 뒤로 미래의 생각을 하게 된다.엄청난 발전이다. 내 스스로가 많이 발전하고 있다는 증거이며. 옛날이었으면 낳아주고 키워준 부모 맘을 거스리지 않을 선에서 모든 걸 끝내고 싶다며 우울하게 생각했을 텐데, 항상 나아갈 공간만 고민하고 있는 걸 보면 나라는 인간이 조금은 이상적인 인간상에 가까워진 게 아닐까. 작은 기대를 가지게 된다. 그러다가도 다른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걸 보면 자꾸만 부럽다. 시기의 마음이 생기고 열심히 해야겠다, 악바리처럼 살아야지, 하다가도 게으름을 피우며 침대 위에 온 몸을 나뒹군다. 

악바리처럼 열심히 할 근성은 없고 노력하다가 자빠져서 울며 자존심을 내려놓을 자신도 없다. 그건 책에서나 나오는 멋진 언냐들이 하는 거지, 내 그릇은 아닌 것 같다. 근데 왜 자꾸 다른 사람들이 부러운지 모르겠다. 다른 사람들이 가진 것 그런 것들 나도 가질 수 있었던 거라고 자꾸 착각을 해서 그런가. 착각도 병이라는 건 이런 데서 나온 말인가보다.


2.

얼마 전에 인간실격이라는 소설을 봤다. 너무 기대를 해서 그런 지 모르겠지만, 솔직히 실망적이었다. 모든 인간은 연기를 하고 살아간다. 분인이라는 개념도 있지 않은가. 어떤 모임에서의 나는 철이 없고 아무렇게나 살지만 어떤 모임에서의 나는 책을 많이 읽는 현명한 친구이다. 어차피 그건 둘 다 나이고, 연기하려고 노력하는 건 아니지만 어찌 됐던 그런 모임들에 가서 맡게 되는 ROLE 들이 있다. 그렇게 살아간다고 해서 뭐가 어때서. 딱 3년 전에 인간실격이라는 소설을 읽었으면 지금과 같은 감상평을 내놓진 않았을 것이다. 감동하면서 절망하면서 그의 나머지 책들을 더 읽어보려고 도서관을 방문했겠지. 지금의 나는 그러지 않는다. 어른이 된 건 아니다. 운전도 못 하고 수영도 못 하고, 게다가 자기 몸도 챙길 줄 모르는 내가 어른이라니 어불성설이다. 하지만 적어도 이렇게 절망감에 사로잡혀 인간이란 존재에 대해 고뇌하는 작품에 감격하여 빠져들지는 않는다. 근데 사춘기 때 읽었으면 엄청 감격해서 흑역사를 만들었을 거 같다.


3.

언제부터 책을 읽었더라. 기억이 안 나지만 어린 시절 대부분의 기억은 책장 앞에 앉아서 하염 없이 텍스트를 읽었던 기억이다. 책을 읽으면 정신이 이야기 속에 사로 잡히고 나는 그 속에 정신 없이 붙잡혀서 시간을 뺏기는 것이 좋았다. 어릴 때 우리 집엔 방이 두 개 있었는데, 하나는 작은 방으로 동생과 내가 자거나 나와 엄마가 잤다. 그 방에는 피아노가 있었고, 피아노 위에는 작은 창이 있었다. 피아노 옆에 있는 책장에서 책을 꺼내어 정신 없이 읽다가 고개를 들면 작은 창 너머로 하늘색이 붉게 변해 있었다. 엄마는 바깥에서 요리를 했고 동생은 어디서 놀다 들어왔는지 그제야 집에 들어왔다. 파묻혀 있던 고개를 들면 뒷목이 뻐근했다. 그래서 이리저리 돌려가며 다시 책에 고개를 파묻었던 기억. 

하지만 어른의 나는 재밌는 걸 너무 많이 알아버렸다. 단순히 책을 읽어야 한다는 압박감이 생겨버려서 요새는 단순하게 감상 없이 글자를 읽는다. 이게 의미가 있나? 그래도 지하철이 퉁퉁 소리를 내며 운행되는데 핸드폰만 내려다 보며 가십거리나 흥미거리만 읽고 지나치기엔 통근 시간이 너무 길다. 책은 최근에 갑갑한 현실에서 시간만 버리지 않으려는 발버둥으로 변모해버렸다. 다른 사람들의 글자를 따박따박 느낌 없이 읽어 내린다. 타자기 역할이 된 거 같다. 머리 속에 타자를 탁탁, 쳐서 넣어 놓지만 그게 어디 정보인가. 그냥 종이 한 장이지.


4.

뱁새라는 별명이 생겼다. 먹을 수 있는 양이 한정되어 있는데 자꾸 식탐을 부려서 얻은 별명이다. 내 친구들은 대단한 위장을 가져서 나보다 훨씬 많이 먹고도 아직 덜 부르다고 하는 녀석들인데, 걔네랑 같이 밥을 먹다가 지독하게 체했다. 덕분에 한참을 고생했고, 나는 황새 따라 가면 뱁새 가랑이 찢어진다에서 뱁새의 별명을 맡게 되었다. 황새 무리는 어마어마하다. 그러다 우연히 뱁새라는 음악을 듣게 되었다. 선우정아의 노랜데, 멜로디랑 리듬이 좋아서 별 생각 없이 듣다가 가사를 보고 충격을 먹었다. 완전 내 얘기잖아.

나는 친구들이 지어준 별명 중에 뱁새가 가장 그럴 듯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뱁새다. 게다가 뱁새의 마음까지 가졌다. 뱁새한테는 좀 미안한데, 난 쪼잔하기 짝이 없다. 가사처럼 어색하고 탐만 내고 어울리지도 않는다. 누군가에게 어울리지 않는 것을 하는 건 지독히 사람을 비참하게 만들기 때문에 나는 많이 내려놨다. 비참한 건 싫고 쥐구멍을 찾아서 숨는 건 더욱더 싫다. 세상에서 쪽팔린 게 젤 싫은 내가 남의 빛남을 탐내지 않는 건 단순히 그 이유다. 비참하고 싶지가 않다.

요즘들어서 뱁새 말고 황새가 될 수 있진 않을까 하다가, 열심히 해봤는데, 어쩌다 욕심내어 먹다가, 또 체해서 일주일을 앓다가, 역시 분수에 맞게 살라는 성인들의 말이 옳다 생각 하다가, 우연히 뱁새 노래를 듣게 된 것이다. 

어울리지 않는 건 좀 사람을 비참하게 만든다.


5.

2분기가 지났으니까, 다시 2018년 계획표를 슬쩍 봤다. 

영어, 이건 진짜 아직도 1도 하지 않았다. 생각하면 한숨만 나온다. 친구가 영어는 마치 다이어트 같은 거라고 했는데, 걔는 그런 말을 도대체 어디서 들어왔지? 똑똑한 것 같다. 요새는 어디서부터 시작해야할지도 막막하다. 돈을 들여볼까. 최근에 생각하기를 돈 들이는 일치고 안 되는 일이 없다. 돈이라도 들이면 뭐가 되거든.

취미, 취미를 찾는 건 내가 노는 걸 줄여야 가능하다는 시간적인 계산이 나왔다. 내가 노는 시간을 줄이고 취미에 할애를 해야 취미라는 뉴 챕터가 생긴다. 내가 단순히 그걸 좋아한다고 해서 취미라는 아이가 내게 와주진 않는다. 안 그래도 요새 인간관계의 문제가 다분히 생겼다. 내 성격 문제이고 요 놈의 입이 문제겠지. 버킷리스트를 보라고 써놨길래 찾아봤는데 빌어먹을 버킷리스트가 어딨는지 모르겠다. 어디에 써놨지? 근데 대충 써있는 걸 보니 어쨌든 혼자 하는 게 좀 많다. 8개 정도 써놨는데, 한 개는 일단 1분기에 했다. 그러면 두 번째를 뭘 할 수 있을지 생각해볼까. 이것도 역시 돈을 들이면 할 수 있을 것 같다. 돈 들이는 일치고 안 되는 일이 없다.

빚 청산, 이건 알아서 잘 하고 있다.

독서 50권, 이건 32권째니까 성공적으로 끝낼 것 같다.

소설 완성, 다 와간다. 끝이 약간 보이고, 끝을 쓰면 지독히 괴로워 하며 퇴고를 할 것이다. 모든 문장이 삭제 되었다가 다시 만들어지겠지. 과연 9월까지 끝낼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좋은 습관 만들기, 음... 음.... 음...... 이하 생략



2018년도 반나절이나 지났다. 시간이 너무 빠르다. 다시 한 번 살아보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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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시간에는 출근길과 반대되는 길로 걸어가는 일이 잦다. 출근길보다는 반대편 길에 맛있는 식당이 있기 때문이다. 그 길가에는 초등학교가 있다. 아침이면 시간 맞춰 종이 치고, 얼추 쉬는 시간이 되면 아이들이 소리를 지른다. 가끔은 찬 물 끼얹은 듯 소리 한 점 꺼내지 못 하는 사무실 속에도 예기치 못한 소음이 끼어든다. 어김 없이 아이들의 고함 소리다. 원래는 아이들이라면, 것도 초등학생이라면 인상부터 찌뿌리고 싫어했는데. 이제는 아니다. 아이들의 시끄러움에는 나의 과거가 있다. 덕분에 초등학교에서 올라오는 소음들은 우중충한 삶에 은근한 활력소가 되었다.


그런데 그 초등학교 담벼락에 빨간 장미가 폈다. 새빨간 장미가 옹기종기 매달려 있었다. 우중충한 컴퓨터 화면만 보던 내 눈에 붉은 빛이 가득 담겼다. 초록색이 눈에 좋다고 하던데, 어느새 가로수도 새파랗게 피어 올랐다. 녹색이 잔뜩 바탕을 깔아주어 대비색인 장미가 더 두드러진다. 붉은 색에 햇볕이 쨍하니 비춘다. 예쁜 모습을 보면 기분이 좋다. 붉어져 피어난 장미가 내겐 초여름같았다.


초여름이면 생각나는 건 진득하니 붙어 있는 첫사랑의 기억이다. 놀랍게도 그거다. 별로 기억하고 싶진 않은데. 그늘에 들어가면 시원하고 햇볕 밑으로 나아가면 삐질삐질 땀이 올라오는 이 계절에는 불연듯 그 애가 떠오른다. 그 계절에 나는 너무 애가 닳았고, 잠 못 이루며, 세상 모든 사랑 노래가 내 이야기인줄 착각했다. 고작 5,6년이 지났는데 그 애를 떠올리면 그 시절 내가 자동적으로 떠올라 가엾기 그지 없다. 무지하게 외로워져 누구든 만나면 좋겠다고 생각하다가도 그 모습을 떠올리면 고개가 절로 저어진다. 그 애 이후로 나는 모든 사람들이 말하는 유니콘 같은 남자를 쫓았었다. 최근엔 그런 희끄무리한 바람조차도 바래졌지만.


사회라는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서 가정이 필요하고, 그 가정 속에 여자라는 존재는 독보적이게 필요하다. 아이를 낳고, 집안일을 하고, 더하여 많은 슈퍼우먼들은 일도 하고 돈도 벌어온다. 모든 희생정신이 필요한 엄마라는 이름으로 여자를 묶기 위해 필요했던 건 단 하나다. 로맨스. 

웃기지? 내가 꿈꿔왔던 행복한 로맨스가 결국 희생정신이 투철한 엄마라는 존재를 위해서였다니. 내게 빨간약은 이 정도면 충분했다. 다행이다. 


커다란 바위는 풍파 속에 헤지고 교복 치마는 책걸상에 문질러지며 반들반들해진다. 내 '로맨스'에 대한 정의할 수 없는 욕구는 그런 시간과 대단한 노력 없이 쉽게 바래졌다. 벌컥벌컥 들이마신 빨간약은 필터 없이 나를 깨닫게 만들었다. 이상하다고 생각했던 모든 사회의 통념들이 소수의 여자들이 노력하여 말하는 갖은 이론들과 정교하게 맞아 떨어지는 순간, 나는 내가 이상한 사람이 아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로맨스는 가정으로 여자를 몰기 위한 가장 효율적인 방식이다. 모든 순정만화의 독자는 여학생들이고, 로맨스 영화의 애청자들은 여성들이다. 하지만 로맨스는 만화와 영화에서 해피엔딩으로만 끝이 난다. 공주와 왕자는 결혼하여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 그 뒤로 많은 기혼 여성들의 고단함은 TV 속 박카스 CF 에서나 소재로 쓰여질 뿐이다. 태어나서 가장 많이 참고, 일하고, 배우며, 해내고 있는데 엄마라는 경력은 왜 스펙 한 줄 되지 않는 걸까. 왜?


허무하지만 쓰디 쓰게 들이킨 빨간약에도 불구하고 나에게는 붉은 색 옷이 없었다. 옷이라면 베이지, 검정, 회색. 색이 조금 있어봤자 갈색이 전부인 칙칙한 인류인 내가 빨간색 옷을 내 손으로 고른다. 다행이 예뻤다. 피부도 조금 밝아보였다. 기분이 좋아 화장도 했다. 아, 이건 순서가 조금 틀렸을까. 고민이 약간 됐다. 그래도 이왕 한 화장 굳이 지우지는 않았다. 순서는 의미가 없다. 의미가 있는 건, 내가 어떤 생각으로 붉은 색 옷을 고르게 되었는지, 이 옷을 입은 내가 어떤 생각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어떤 세상을 선택할 것인지. 그런 것들이다. 


오늘은 유니콘 같은 남자를 찾지 않는다. 어제는 찾았을지언정 오늘은 찾지 않는다. 아마 내일도 그런 남자를 찾지 않을 것이다. 이제는 그러지 않기로 했다. 내가 바라던 로맨스가 정말로 내가 바라던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내게 원하는 것이라면 나는 구태여 로맨스를 기대하지 않는다. 청개구리처럼, 내가 그토록 바라던 일이어도 다른 사람이 내게 하라 강요한다면 나는 기꺼이 거기에서 손을 뗄 것이다. 


장미가 가시가 있는 게 그깟 작은 가시로 제 몸을 보호하기 위해서일까? 자길 똑 따버리려는 사람한테 네 까짓게 감히 날 노린다며 먹이는 펀치는 아니고? 약해도 파상풍에 걸린다. 주의 하자. 릴케는 애지중지 키우던 장미에 목숨을 빼앗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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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잇. 바보 같은 짓을 했다. 항상 caps lock을 걸고 일하다 보니, 버릇이 돼서 뭐가 잘못 되었는지도 모른 채 여러 번 대문자로 비밀번호를 시도했다. 하마터면 오랜만에 글을 쓰고자 노력하여 킨 컴퓨터를 다시 끌 뻔했다. 그래도 일하면서 생긴 버릇 중에 좋은 건 뭐가 안 되는지 체크하고 안 되는 방법을 찾아서 시도해보려는 태도이다. 원래의 나같았으면 진작에 포기했을 일을 겨우 마음을 다잡아 다시 트라이. 그래, 이런 것 역시 사회 생활을 하면서 나아가는 길을 찾는 노력 덕분이다. 


글을 너무 쓰질 않아서 글 쓰는 방법을 잃어버릴까봐 걱정이 될 정도다. 지금도 이 한 문단을 몇 번을 고쳐 써내려 가는지 모르겠다.


일단 책과 누군가가 쓴 글들, 트위터나 에세이나 기타 등등을 억지로 머리 속에 밀어 넣긴 했다. 그것도 하지 않으면 단어들과 사이가 멀어질 것 같았다. 덕분에 인풋이야 어찌어찌 할 수 있었는데, 내 머리 속에 조잡함은 풀어낼 길이 없었다. 아웃풋이 전혀 이뤄지지가 않았으니까. 


난 말이 많지만 달변가는 못 되고, 막 던지는 말들은 곧잘 뱉지만 정리해서 또렷한 전달이 가능한 말하기는 하지 못 한다. 덕분에 나의 조잡한 망상들과 이런 저런 시간들이 뭉쳐져 아무도 찾지 않는 시공간에 쳐박혀 있다. 


하지만 오늘은 오랜만에 일이 빨리 끝나 가만히 길을 걷다가 집에 가서 꼭 자리에 앉아서 컴퓨터를 켜야지, 하고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 바보 같은 짓을 하다가 또 시간을 날려 먹고 쉽게 포기를 선택할 뻔 했다. 나란 인간은 포기를 너무 좋아한다.



최근 며칠간은 너무 바빴다. 또 그 이전에는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그러한 연유로 전혀 노트북을 켜보지 않았다. 회사에 다녀와서 집에 오면 밥을 먹고 누웠고, 자기 전 딱 활용 가능한 1시간은 쓸 데 없는 인터넷 서핑으로 보냈다. 억지로 그 한 시간을 학습하는 시간으로 메우려던 건 관뒀다. 그러기엔 이래저래 스트레스가 많다. 그 정도의 스트레스를 안고 학습을 해봤자 효율성이 떨어진다. 솔직히 말하면 효율성보다는 내가 힘이 들었다. 편하고 싶은데 학습을 하려면 머리를 쓰고, 힘을 써야 하니까.  결국 그 시간을 활용해 뭔가 해야 한다는 압박과 더불어 죄책감만 생성되었다. 물론 그 죄스러움보다는 평안을 누리고자 하는 게으름이 이겼다고 보면 된다..... 


글쓰기를 못 하는 이유의 절반은 거의 이런 식이다. 시간이 아주 없다기 보다는 그 시간을 아껴아껴 글쓰기에 몰아 넣기가 괜히 아쉬운 것이다. 글쓰기가 일을 하는 것도 아니고, 못 쓴다고 해서 누가 욕을 하는 것도 아닌데. 잘 하고자 하는 마음이 너무 앞선 탓인지, 아니면 아마추어 주제에 프로처럼 완벽하게 써야 한다는 강박이라도 있는 탓인지. 이유는 도무지 알 수 없지만 글을 쓰는 게 잘 안 됐다. 

덕분에 소설은 아무 것도 진척되지 못 했고 소설 주인공들은 갇혀서 다음 이야기를 기다리고 있겠지. 미안해. 글을 쓰지 않는 동안의 죄의식은 주인공에 대한 죄의식이 가장 크다.



4월도 어느덧 반이나 지났다. 반이나? 반밖에? 아마도 반밖에 라는 말이 더 적절할 것 같다. 4월은 휴일도 채 하루가 없고, 약속도 말도 안 되게 많았다. 것 때문인가? 몸도 마음도 다 너덜너덜해져서 누군가에게 마음 내줄 틈이 없다. 애정을 쏟을 곳이 없다.


책도 부채의식으로 한장 한장 억지로 넘기고, 영화나 드라마는 쳐다도 보지 않는다. 만화책은 그나마 손에 잡힌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보면 되니까. 

여유가 없는 느낌은 주위에 그 누구도 없을 떄나 너~무 할 일이 많을 때 드러나는 거라고 알고 있었다. 그러니까 여유가 없는 건 아니다. 게다가 literally 여유가 없진 않다. 워라밸 좋은 회사에 다니고, 회사 끝나면 운동을 다닐 수 있으며 친구들과 술 한 잔 기울 시간도 있다.


지금은 여유가 없는 게 아니라 마음이 없다. 단 한 켠의 마음도 누군가나, 어떤 물건이나, 흘러가는 시간에 내줄 수가 없다. 마음이 없이 지나가는 시간들은 처음이어서 어떻게 해야할지를 모르겠다. 아니, 솔직히 어떻게 해야겠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는다. 건강하지 못한 신호일까. 내 정신 건강이 이런 식으로 비툴어지는 걸까.


처음에는 우울증이나 pms 를 의심했다. 여자라서 겪는 무작위적인 호르몬 변화는 잦게 나를 찾아오는 편이어서, 그런 거라면 상관 없었다. 날짜상 것두 아니었다. 갑자기 쏟아진 우울증이라면 푹 쉬고 여유를 가지면 되지 않을까 추측했다. 경주 여행을 다녀왔다. 행복했고 즐거웠다. 우울증이라기엔 너무 잘 놀고 왔다. 하지만 역시 마음을 담지는 못 했다.


친구는 너 해탈이라도 한 거냐고 장난스럽게 물었다. 그치. 내가 그 무엇에도 마음을 두지 않고 모든 일에 신경을 꺼버린 것은, 거의 부처님의 해탈의 경지다. 방향과 목적성에 있어서 크게 차이가 있긴 하지만. 


아아, 결국 내 마음이 나 하나 케어하지 못 해서 그 모든 것에 관심을 꺼버렸던 걸까. 

이게 바로 각박하다는 거 아닌가. 기사 타이틀에 자주 박히는 각박해진 사회, 바로 나 같은 인간들이 많은 사회일 것이다.




지금은 하고 싶은 게 많다. 한 분기 지났으니까 정리를 한 번 해본다. 

다이어리에 연초에 써둔 걸 찾았다. 올해 목표는 좋은 습관 갖기, 빚 청산, 취미 찾기, 영어, 소설 완성, 독서 많이 하기.


좋은 습관 만들기? 업무 능력을 통해 많이 향상됐다. 약간 꼼꼼해졌고, 약간 부지런해졌고, 약간 될 일은 되고, 안 될 일은 말자고 생각하게 됐다. 아, 이건 긍정적인 생각이 아니라 그냥 해탈인가. 초반에 써두었던 아침 일찍 기상하는 것과 신중함, 말솜씨, 이런 건 하나도 이루지 못 했다.

특히 아침 일찍 기상하는 거... 나는 그냥 저녁형 인간으로 사는 게 나을 거 같다. 신중함과 말솜씨는 노력해야지. 할 수 있을 거 같다. 특히 말! 말을 조심해야겠다. 단호하지만 의사가 전달되게 말하기. 함부로 말하지 않기. 다른 사람한테 상처 받는 말을 하는 건 두려운 일이다.


취미는, 운동을 꾸준히 하면 좋을 거 같다. 친구가 달리기 동호회에 들자고 제안해서 잠깐 생각은 했다. 달리는 건 기분이 좋은데, 시간을 내서 달리면 내 몸이 또 따라줄까? 그 다음 날 욕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달리기는 굳이 하려면 목요일이나 금요일이 좋을 거 같다.

스노보드는 두 번 접했는데, 너무 재밌었다. 이번 년도에도 친구들이랑 가야겠다. 이건 정말 취미 삼아 할 수 있을 거 같다. 다른 건 도전을 못 했다. 필라테스랑 스노보드만으로도 상반기는 열심히 산 거 같다. 일단 필라테스는 1년을 채우고 다른 운동을 시작해야지, 하던 건 끝내는 편이 좋다.


스쿠터 면허나 옷 리폼 같은 옛날부터 해보고 싶었던 것도 도전해봐야겠다. 하려고 생각하면 어렵지는 않을 텐데, 요새는 생각하는 것도 잘 안 되니 아무 것도 못 했던 거겠지? 2분기에는 할 수 있을 것이다. 반팔티는 저렴하고, 여름은 어쩐지 긴 느낌이니까.


소설 두 개 중에 하나는 여름이 끝나기 전에 완성해서 퇴고를 시작하고 싶다. 퇴고를 하고, 또 해서, 이번 년도 말에는 공모전에 한 번 내보고 싶다. 떨어져도 어쩔 수 없다. 그래도 붙을 거란 기대는 할 것이다. 그러니까.. 써야겠지? 아, 또 부채의식이 생겨버렸다.

가을이 오면 문학 강의를 들을 것이다. 비슷한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면 기분이 나쁘겠지만 즐거울 거란 생각이 들었다. 분명히 재밌는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것이다. 그 때까지 멍청해지지만 않았으면 좋겠다.


빚 청산은, 이번 년도에는 무리다. 내가 취미와 유흥에 펑펑 써버리고 있다. 이건 좀 길게 보자. 돈 아끼는 건 너무 어렵다. 경제 관련된 책을 읽어볼까.


제일 큰 문제는 영어이다. 1도, 성장하지 못 했다. 심지어 쉬운 단어도 생각나지가 않아서 영어 사전을 찾아보는 형편이다. 10살 때부터 16년 동안 영어를 배우고 쓰고 읽고 들었는데, 메일 두 문단을 쓰면서 영어 번역기를 사용해야 한다. 아아.. 이건 정말 순전히 내 노력 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갑자기 할 의욕조차 떨어진다. 하고자 하면 되고 하지 않고자 하면 영원히 하지 못 하겠지? 제일 화가 나는 건 하고자하면 될 것이라는 거다. 내 소중한 1시간을 다시 찾아봐야겠지? 모르겠다. 의욕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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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영화를 만난 것은 하나의 사진이었는데, 내가 언젠가 이 영화를 보게 될 거라고 생각지도 못 했다. 왜냐하면 첫째로 나는 영화 보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능동적인 걸 좋아하는 편인데, 스토리의 진행이 내 손에 좌우되어야 한다. 보기 싫으면 그만두고 보고 싶으면 계속 볼 수 있게. 그렇기 때문에 영화나 드라마보다는 책이나 만화를 더 선호해왔다. 마음이 급할수록 내 손은 빨리 움직였고, 재미가 없으면 그냥 멈춰버리면 되니까. 둘째로 맨 처음 이 영화를 소개해준 글쓴이가 이 영화는 단순한 멜로 영화는 아니라고 소개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멜로 영화를 좋아하고 해피 엔딩이 아니면 영화를 보지 않는다. 새드 엔딩을 내 돈으로 내 시간을 내주면서 보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때문에 나는 이 영화를 볼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고, 하지만 나는 26살 봄으로 넘어가는 이 쌀쌀한 기온에서 이 영화를 보게 된다. 


지지는 옛날의 나 같았다. 여자들은 사소한 행동에 온갖 의미 부여를 하며 소설을 써대지, 정말 미친 짓이야. 알렉스가 말한 대로 그건 정말 미친 짓이다. 많은 여자들은 사소한 행동에 집착을 한다. 그 사소한 행동에는 이를테면, 방석을 챙겨준다든지, 어색한 공간에서 어쩔 줄 모르고 있는 사람에게 말을 걸어준다든지, 같은 배려들이다. 물론 이 배려가 그 사람에게 관심이 있어서 한 행동일수도 있지만 그 배려가 한 번으로 끝난다면 대부분의 경우 그건 단순한 친절에 불가하다. 하지만 수 많은 인터넷 소설과 모든 사람이 연애를 하는 한국식 드라마에 익숙해진 나 같은 여자들 혹은 영화가 시작할 때의 독백과 마찬가지로 누군가가 널 괴롭힌다면 그건 너에게 관심이 있어서 그런거야, 라고 듣고 자란 여자들은 그 사소한 행동에서부터 오해를 하기 시작한다. 알렉스가 말한대로 그건 어찌보면 드라마틱한 감정에 스스로를 밀어 넣는 일이나 다름 없다. 드라마틱한 자극은 사람을 짜릿하게 만들고, 대개는 그 짜릿함을 계속 찾고 싶어하니까. 


나도 한때는 지지처럼 누군가의 전화를 기다렸었다. 전화는 아니고, 비록 나는 어플 세대이긴 하지만. 기다리는 사람에게서 빨간 숫자가 켜지면, 그때의 그 짜릿함은 어느 순간의 짜릿함과 비교가 되지 않는다. 짧은 텍스트에 얼마나 많이 웃고 얼마나 많이 불안에 떨었던가. 영화의 제목은 그는 당신에게 반하지 않았다지만, 아니다, 그든 그녀든 아니면 성별이 없는 x 든 그 사람이 당신을 찾지 않는다면 확실히 그 사람은 당신에게 반하지 않았다. 


하지만 난 지지보다는 돌직구인 사람이다. 때문에 기다 아니다를 항상 명시하길 원했다. 나중에 연락할게라는 말 후로 연락이 오지 않는 것은 확실한 차임이고, 난 거기에다가 덧붙여 한 번 더 차이기 위해 연락을 해 앞으로 나한테 연락을 할 거니? 라고 물어보는 부류의 인간이다. 그래서 수 많은 차임이 있었다. 영화 속 많은 여자들은 내가 차인 게 아니라 그 남자에게 무슨 다른 이유가 있어서 내게 연락을 하지 못 한 거라고 생각하지만, 나는 아니다. 나는 내가 차이는 순간들을 매번 기억하고 또한 내가 찼던 순간들도 기억하고 있다. 


차이는 순간이나 차는 순간이나 나는 항상 헛물을 많이 켰다는 걸 그 후에 깨닫는데, 대부분 내가 진지했던 경우는 차였고 상대가 진지했던 경우는 찼다. 말하자면 그 사람과는 그럴 운명이 아니었다. 운명론은 정말 싫지만, 지금 이 흐름에서 이 단어 말고는 적절한 단어를 찾지 못 했다. 


나는 차이거나 차고 나면 항상 뭘 써놓는 버릇이 있다. 일기장이든 어디든. 무슨 일이 생기면 단어로 화풀이라도 하듯 써내려 가는 것은 자주 하는 일이지만 차이거나 차면 내 글은 더 길어지곤 한다. 그리고 이 글은 길어질 예정이다. 이번 차임은 이 영화를 보게 만들어주었다. 차이고 나서 보는 그는 당신에게 반하지 않았다, 라니. 적절한 영화다. 해피 엔딩을 추구하는 나지만, 솔직히 해피 엔딩이 아니어도 상관 없었다. (심지어 해피 엔딩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이 영화를 틀었다!) 그치만 스포하자면, 영화는 해피 엔딩이다.  


일주일 동안 나는 상대방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을 했고, 여러 가지 상황을 상상했다. 영화 속에서 말하는 미친 상상력은 내게는 좀 더 풍부하게 있는 것 같다. 이런 여자나 남자가 분명히 나 뿐만은 아닐 것이다. 내가 어디까지 망상을 했는지는 비밀이지만, 그 중 몇 개는 행동으로 옮겼다. 물론 그 상상 속의 일은 내게 일어나지 않았다. 처음엔 고민하던 일을 어떤 결과로든 해결했으니 속이 후련했다. 다음엔 슬슬 열이 받기 시작하더니, 이내 참을 수 없는 쪽팔림이 몰려와서 속절 없이 길을 걸었다. 2만보 정도를 걸었다. 내 아이폰이 그렇게 말해주었다. 이태원에서 용산역까지는 몇 키로나 되려나. 처음 걸어본 해방촌은 투머치 언덕이었고, 언덕을 올라간 덕분에 보였던 넓은 서울 시내의 광경은 잠시나마 기분을 좋게 만들어주었다. 후암동은 자잘한 가게가 많아서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지만, 인도가 없어서 걷기가 어려웠다. 삼각지는 매일 지하철로만 다녀봤지 나가서 걸어본 건 처음이었는데, 그렇게 넓은 도로가 있을지 몰랐다. 해방촌의 좁은 건물들 사이를 걷다가 삼각지역의 5차선 고속도로 옆 인도를 걸었다. 하필이면 오늘따라 햇볕이 너무 따뜻했다. 내내 영하를 맴돌던 날씨도 그렇게 춥진 않았다. 봄의 신호가 하나하나 소리 치고 있었다. 재수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봄이 온다니 또 설렜다.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걷다 보니 일주일 내내 날 괴롭혔던 위장통이 사라졌다는 걸 느꼈다. 이번 차임으로 또 하나 나에 대해 배웠다. 나란 인간은 이런 종류의 스트레스를 받으면 몸이 아파지는 인간이다.


알렉스는 친절을 베푼답시고 지지에게 조언을 해준다. 연락이 안 와? 그 놈은 버려. 키스를 하면서 내일 연락이 안 될 거라고 했다고? RUN. 지지는 알렉스의 조언에서 깊은 꺠달음을 얻고 친구에게 쪼르르 달려가 자신의 깨달음을 전파한다. 사랑스러운 지지의 말에 베스는 사랑의 신호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어쩌면 자신의 연인이 자신을 사랑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점에 있어서 영화는 "뭐.. 그러니까.. 사랑의 신호는 사람마다 다르겠죠? 그건 당신이 알아서 판단 해야죠 뭐, 우리는 사랑에 대해서 이건 맞다 저건 아니다 라고 정리해줄 수는 없거든요?" 라고 끝내버린다. 그러면 그렇지.


난 덕분에 내가 보냈던 시그널들과 내가 받았던 시그널, 그리고 내가 착각했던 시그널들에 대해 생각했다. 더해서 그 시그널들이 사실은 진실을 담고 있지 않다는 것도 깨달았다. 내가 보냈던 시그널들이 그 상대에겐 시그널로 느껴지지 않았을 수도 있고, 내가 받았던 시그널들이 진심을 다 한 상대의 마음이었을 수도 있다. 


최근 연애에 있어서 분류를 하는, 회피형 불안형 안정형의 분류글을 많이 읽게 되었다. 그 분류에 따르자면 나는 확실히 회피형이다. 내가 좋아하던 사람이 내게 관심이 조금이라도 떨어질랑 치면 우선 나는 내 마음을 정리하기 시작한다. 대화로 관계를 풀 생각은 전혀 없다. 이유를 묻거나 맞춰보자는 의지도 없다. 그저 혹시라도 버림 받거나 혹시라도 그 사람이 날 사랑하지 않을 때를 대비하여 마음을 정리할 뿐이다. 많은 여자들이 남자친구가 회피형일 때 관계를 유지하기가 제일 어렵다고 토로한다. 회피형의 사람으로서 말하자면 솔직히 나 같은 사람은 만나지 않는 게 났다. 수 많은 차임의 예시는 많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내가 제일 멍청하게 차임을 당하는 것은 이런 경우이다. 내가 먼저 그 사람을 좋아했다. 여러모로 노력을 했고, 그 사람이 이제 좀 나에게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쯤은 내가 이렇게까지 노력했는데 넌 이제서야 날 좋아한다는 말이야? 하고 내가 도망치는 타이밍이다. 나는 이런 짓들을 하면서 나름대로 시그널을 많이 보내는 데다가 해석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개뿔. 


사랑의 신호는 중요하다. 신호는 항상 중요하다. 길을 건널 때도 신호를 잘 보고 건너야, 도로를 점령해버린 차들에게서 내 몸뚱아리를 지킬 수 있다. 중요하지만 전부는 아니다. 상황 파악을 해야 한다. 차가 오는지 안 오는지는 시각으로 느낄 수 있지만 사랑은 볼 수가 없으니까, 입을 열어야 한다. 니 생각을 뱉고 내 생각을 뱉어야 한다. 신호 백날 보내봤자 소용이 없다. 말을 해야 안다. 머리 속에 있는 걸 표정, 행동, 말로 표현해야 안다. 그 삼박자가 골고루 맞아서 진심이 느껴지면, 그게 관계의 시작이다. 입 다물고 신호를 아무리 보내봤자 존나 1도 소용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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