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새로운 이름의 이야기 -엘레나 페란테 (2/16)

 

"그래. 네가 나에게 그렇게 하겠다고 맹세하게 했잖아."

안토니오가 헐떡이며 말했다.

"맹세하라고 했어. 절대로 혼자 있게 하지 말라고. 그 말을 듣고 나는 새 옷까지 해 입었지. 솔라라의 마누라에게 돈까지 빌려야 했어. 어떡하든 네 마음에 들고 싶어서. 네 말대로 해주려고 한순간도 어머니와 동생들 곁에 머무르지 않았어. 그런데 그 대가가 뭐지? 넌 나를 개새끼만도 못하게 대했어. 시인의 아들 놈과 이야기하는 데 정신이 팔려 있었잖아. 너는 나를 친구들 앞에서 비참하게 만들었어. 바보 천치처럼 보이게 만들었다고. 난 네게 아무것도 아니야. 너는 제대로 교육받았는데 나는 그렇지 못했으니까. 난 네가 하는 말을 이해하지 못해. 정말이야. 이런 젠장. 나를 봐, 레누. 내 얼굴을 좀 봐. 너는 나를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내가 너를 포기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지. 그렇지 않아. 너는 뭐든 다 아는 척하지만 지금 이 순간 내가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너와 함께 저 문밖으로 나간 뒤에도 학교에서든 어디서든 네가 저 병신 같은 니노 사라토레를 다시 만나면 널 내 손으로 죽여버릴 거야, 레누. 맹세코 널 죽여버릴 거야. 그러니까 잘 생각해. 아니면 차라리 지금 당장 나와 헤어지는 것이 나아!"

안토니오는 절망적으로 외쳤다.

"그 편이 네게 더 나을 거야."

<중략>

막연하게나마 내겐 안토니오의 그런 공격적인 행동이 필요했었던 것 같다. 내 손목을 잡은 그의 악력과 폭력에 대한 두려움, 고통스럽게 쏟아내는 그의 비난은 궁극적으로 내게 위안이 되었다. 적어도 안토니오만은 나를 정말 소중히 여기는 것 같았다.

"아파."

내가 속삭였다. 안토니오는 손의 힘을 약간 뺐다. 하지만 여전히 입을 다물지 못한 채 나를 계속 쏘아보고 있었다. 자신의 말에 무게와 권위를 부여하고 나를 자신에게 구속시키고 싶은 마음에 내 손을 어찌나 콱 잡았는지 손목이 보랏빛으로 변하고 있었다.

"어떻게 할 거야?"

안토니오가 물었다. 

나는 다소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너와 함께 있을래."

내 말에 안토니오는 입을 다물었다. 눈에 눈물이 차오르는 것이 보였다. 그는 눈물을 흘리지 않으려고 잠시 바다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정말?"

"그렇다니까."

"왜?"

"왜냐하면 나는 너를 아니까. 너와 함께 대화를 나누고 함께 학교에 다니니까."

그 순간에는 나를 안다는 뜻이 무슨 의미인지 알지 못했다. 나와 함께 대화를 나누고 나와 함꼐 학교에 다니기 때문에 자신은 그런 짓을 할 수 없다는 그의 말이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없었다. 길 저편에서 마리사가 약속에 늦어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저기 네 애인이 온다."

내가 말했다.

알폰소는 뒤돌아보지 않고 어깨를 으쓱해보이고는 중얼거렸다.

"학교에 돌아와. 부탁이야."

"난 아파."

나는 힘주어 말하고는 자리를 떠났다.

니노의 동생과는 인사 한마디도 나누고 싶지 않았다. 그를 떠오르게 하는 모든 것이 나를 괴롭게 했다. 하지만 알폰소의 아리송한 말에 기분이 좋아졌다. 길을 걸으면서 그의 말을 되씹어보았다. 알폰소는 나라는 사람을 알고 함께 대화하고 같은 책상에 앉기 때문에 자신의 아내가 될 사람에게 자신의 권위를 폭력으로 강요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거리낌 없이 자신의 생각을 표현했다. 두서없이 말하기는 했지만 알폰소는 내가 자신에게 영향을 주었고 내게 그의 행동을 변화하게 할 만한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두려워하지 않고 인정한 것이다. 여자인 내가 사내인 자신에게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인정한 것이다. 

 

 

"네게 또 손찌검을 했어?"

릴라가 얼굴을 매만졌다.

"아니, 이건 예전에 맞은 자국이야."

"그러면 뭐가 힘든건데?"

"모욕감."

"그래서 어쩌려고?"

"어떻게 하긴. 그가 원하는 대로 해야지."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릴라에게 은근히 물었다.

"그렇지만 적어도 잠자리를 같이할 때는 좋지 않아?"

릴라는 불편한 듯 얼굴을 찌푸렸다가 이내 표정이 심각해졌다.

릴라는 남편에 대해 다 포기한 투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적대감도 복수심도 혐오감도 느껴지지 않았다. 단지 차분한 모멸감만 느껴질 뿐이었다. 릴라는 흙탕물을 뒤집어쓴 것처럼 더렵혀진 스테파노를 멸시하고 있었다.

 

 

릴라는 말투를 바꿔서 사뭇 진지하게 말했다. 릴라는 사진에 대해서 이야기하려고 시 가든까지 나를 찾아온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어차피 그 자식에겐 자신이 물물교환의 대상일 뿐이라는 것은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릴라가 온 것은 임신에 대해 말하고 싶어서였다. 릴라는 한참동안 안절부절못하면서 임신이 절구통에 집어넣어 으깨버려야 할 물건인 것처럼 이야기했다. 냉혹하기 그지없는 단호한 말투였다. 불안감을 감추지 않고 임신은 무의미한 일이라고 했다. 사내들이 우리 몸속에 자신의 물건을 쑤셔 넣으면 우리 몸은 살아 있는 인형을 담은 고깃덩어리로 된 상자로 전락한다는 것이었다.

"그런 게 내 안에도 들어 있어. 소름기치는 일이야. 끊임없이 구역질이 나. 내 배가 아이를 못 견뎌 하는 거야. 좋은 생각을 해야 한다는 건 알아. 정신을 차려야 한다는 것도. 그런데 잘 되지 않아. 정신을 차리지도 못하겠고 생각할 만한 좋은 일도 없어."

 

 

릴라는 길고 가느다란 손가락을 힘주어 깍지 끼며 내게 물었다.

"질리올라가 내 사진이 저절로 불타올랐다고 말하고 다니는 거 너도 들었지?"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질리올라가 원래 너를 안 좋아하잖아."

릴라는 백치같이 웃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갑자기 심기가 뒤틀린 것 같았다.

"여기 눈 뒤가 아파. 뭔가가 누르고 있는 것 같아. 저기 저 칼들 보여? 날이 서 있지? 지금 막 칼갈이에게 맡겼었거든. 살라미 햄을 자르면서 사람의 몸에 얼마나 많은 피가 흐르는지 생각하곤 해. 너무 많은 것을 욱여넣으면 뭐가 되든 망가지는 법이야. 그렇지 않으면 불꽃이 일고 불타오르게 되는 거지. 그 사진이 불타버려서 다행이야. 결혼식도 가게도 구두도 솔라라 형제도 모조리 태워버렸어야 했는데."

나는 릴라가 아무리 필사적으로 반항하고, 노력하고, 자기 생각을 주장해봤자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결혼식 첫날부터 릴라는 통제할 수 없는 불행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 불행은 날이 갈수록 커져만 가고 있었다. 나는 그런 릴라가 가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 진정하라고 하자 릴라가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마음을 편하게 먹어야 해."

"나를 좀 도와줘."

"어떻게?"

"내 곁에 있어줘."

"그렇게 하고 있잖아."

"아니야. 나는 네게 비밀이 하나도 없어. 가장 추악한 생각까지도 감추지 않아. 그런데 너는 네 얘기를 거의 하지 않잖아."

"그렇지 않아. 내가 아무것도 숨기지 않는 사람은 너뿐이야."

릴라는 강하게 고개를 저어보이면서 말했다. 

"네가 나보다 뛰어나고 나보다 아는 것이 많아도 나를 떠나지는 말아줘."

 

 

"레나,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오빤 항상 밖으로 싸돌아다니는걸. 지금은 갑자기 영화니 소설이니 예술에 꽂혀서 집에 잘 들어오지도 않아. 들어와봤자 아버지에게 욕하고 싸우기나 한다고."

니노가 이성을 되찾았다는 소식에 마음이 놓였지만 한편으로는 씁쓸한 생각이 들었다. 영화와 소설과 예술이라고? 사람이 변하는 것은 정말이지 한순간인가보다. 관심을 보였던 분야도 감정도 쉽게 변하는가보다. 번지르르한 말을 또 다른 번지르르한 말로 대체하면 그만이다. 시간은 겉으로 보기에만 관련이 있는 단어들의 흐름일뿐이고 결국엔 말이 많은 사람이 이기게 되는 것이다. 

<중략>

나는 내 생활에 더욱 집중했다. 밤낮으로 쉴 새 없는 빡빡한 일정을 짰다. 그해 나는 미친듯이 공부에 집착했다. 보수가 꽤 두둑한 개인 과외까지 맡았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해온 것보다 더 열심히 공부했다.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공부에만 열중했다. 

과거에는 날 놀라운 미지의 여역으로 끊임없이 이끌며 일탈시키던 릴라가 있었다. 이젠 원하는 것은 내 스스로 이루고 싶었다. 얼마 안 있으면 19세가 될 것이니 이제는 정말로 그 누구에게도 의존하지 않고 그 누구도 그리워하지 않을 것이다.

 

 

"무엇을 이해했는지 이야기해봐요."

교수님은 몇 분 동안 내 이야기를 주의 깊게 듣는 듯했다. 그러다 갑자기 내 말을 중단시키더니 잘 가라고 퉁명스레 인사했다. 교수님의 태도로 미루어볼 때 내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늘어놓은 것 같았다.

나는 펑펑 울었다. 정신을 놓고 있다 가장 전도유망했던 내 일부분을 어딘가에 두고온 것만 같았다. 그러다가 절망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정말 뛰어난 아이가 아니란 것은 이미 알고 있지 않았던가. 그래, 진정 뛰어난 것은 릴라지. 진정 뛰어난 것은 니노야. 나는 그저 오만방자했을 뿐이다. 이번에 그 대가를 톡톡히 치른 거야.

그런데 의외로 나는 시험에 합격했다. 이렇게 해서 나는 내 방과 매일 폈다 접었다 힐 필요가 없는 침대와 책상과 모든 책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이로써 수위의 딸인 나 엘레나 크레코는 태어나고 자란 우리 동네를, 나폴리를 19세의 나이에 혼자서 떠나게 되었다.

 

 

불현듯 '거의'라는 단어가 마음에 와 닿았다. 내가 해낸 건가. 거의 그렇다. 나폴리에 있는 고향 동네에서 이제는 완전히 벗어난 건가. 거의 그렇다. 나는 교육 수준이 높은 환경에서 자라난 아이들과 친구가 되었는가. 거의 그렇다. 갈리아니 선생님이나 그녀의 아이들보다 더 수준 높은 아이들과 친구가 되었는가. 거의 그렇다. 시험에 시험을 거치면서 권위 있는 교수님들에게 인정받는 학생이 되었는가. 거의 그렇다.

'거의'라는 단어 뒤에 실상이 숨겨져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두려웠다. 피사로 온 첫날부터 나는 두려웠다. 나는 '거의'라는 수식어를 붙일 필요 없이 자연스레 남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사람들이 두려웠다.

노르말레 대학에 그런 학생은 많았다. 라틴어, 그리스어, 역사 시험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을 뜻하는 것이 아니었다. 이들은 뛰어난 교수님들과 지난날 학교를 거쳐간 다른 모든 중요인사들처럼 대부분 남학생들이었다. 이들이 앞서나갈 수 있는 것은 힘겨운 학업의 현재와 미래의 목적을 이미 잘 알고 잇기 때문이었다. 집안이 좋거나 타고난 재능 덕분이었다. 이들은 신문이나 잡지를 만드는 방법도 알고 있었고 출판사 조직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도 이미 잘 알고 있었다. 라디오나 텔레비전 방송국이 무엇인지, 영화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대학 서열이 무엇인지, 우리가 사는 작은 마을이나 도시 너머에는 무엇이 있는지, 알프스 산맥이나 바다 너머에는 무엇이 있는지 이미 잘 알고 있었다. 중요 인사들의 이름과 존경할 만한 사람은 누구고 경멸해야 할 사람은 누구인지 이미 알고 있었다.

이에 비하면 나는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내겐 신문이나 책에 이름이 실린 사람은 모두 신처럼 보였다. 누군가 내게 부러워하는 목소리나 적의를 드러낸 채 저 사람이 바로 그 사람라든지, 저 사람이 바로 그 누구누구의 아들이라든지, 저 사람이 또 다른 대단한 사람의 조카라고 하면 나는 입을 다물거나 그냥 아는 척했다. 물론 이들이 언급하는 이름이 '정말로' 중요한 가문의 성이라는 것은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때까지 그런 이름을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고 그런 인물들이 대체 무슨 중요한 일을 했는지도 몰랐으며 명망 있는 사람들 간의 관계도 알지 못했다. 예컨대 아무리 시험준비를 열심히 해도 어떤 교수님이 내게 갑자기 "내가 어떤 계보를 통해서 이 대학에서 이 과목을 가르치게 됐는지 학생은 알고 있나?"라고 묻는다면 나는 십중팔구 대답힞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다른 학생들은 그 배경을 다 알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나는 이들 사이에서 실수하거나 틀린 이야기를 할까봐 두려워하며 지낼 수밖에 없었다.

프랑코가 내게 반했을 때 그 두려움은 많이 누그러들었다. 그는 나를 이끌어주었다. 나는 그가 이끄는 대로 움직이는 법을 배웠다. 프랑코는 명랑하고 배려심이 깊었지만 어떤 면에서는 뻔뻔할 정도로 두려움이 없었다. 자신이 읽은 책은 다 옳고, 자기 생각도 옳다는 확신이 있기에 언제나 권위 있게 이야기했다.

나는 사적인 자리에서나 가끔은 공적인 자리에서도 프랑코의 명성에 기대어 말하는 법을 배웠다. 솔직히 나도 말은 꽤 잘했다. 적어도 실력이 좋아지고 있었다. 그의 강함에 기대어 가끔은 그보다 더 대담한 태도를 취해 사람들에게 큰 호응을 얻기도 했다. 많이 나아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내게 능력이 없을까봐, 말실수를 할까봐, 다른 사람들은 모두 잘 아는 사실에 대해서 내가 얼마나 무식하고 경험이 없는지 드러날까봐 불안했다.

 

 

프랑코가 원치 않게 내 인생에서 떨어져나가는 순간 두려움이 다시 몰려왔다. 마음속 깊은 곳에 이미 자리 잡고 있던 생각이 옳았단 것이 증명됐다. 그동안 프랑코의 부유함과 높은 교육수준, 학생들 사이에서의 명망 높은 좌파청년이라는 그의 지위와 사교성, 권력자들에게 대항한단 애용을 대학교 안팎에서 균형 있게 연설하는 그의 용기와 아우라가 그의 애인이며 여자친구이며 동료였던 나에게까지 자동적으로 확장되었던 것이다. 그가 나를 사랑한다는 사실 자체가 내 능력의 공식적인 인증서였던 셈이다.

그랬던 그가 대학교에서 쫓겨나 그의 명성이 사라지자 나도 그 후광을 받지 못하게 되었다. 좋은 가문 출신의 학생들은 이제 일요일마다 나를 그들의 파티나 소풍에 초대하지 않았다. 몇몇은 다시 내 나폴리 억양을 놀려대기 시작했다. 프랑코가 내게 선물했던 모든 것은 이제 유행이 지난 한물간 물건이 되어버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나는 내 삶에 들어온 프랑코의 존재가 내 현실을 잠시 가려 주었을 뿐, 전적으로 바꿔놓은 것은 아녔다는 사실을 꺠달았다. 나는 다른 이들과 완전히 동화된 것이 아니었다. 기를 쓰고 공부해서 좋은 성적을 얻고 어느 정도의 호감과 존중을 받기는 했지만 당당한 태도로 터득한 지식에 대한 최고의 결과를 보여주는 학생축엔 끼지 못했다.

나는 평생 두려움을 이겨내지 못할 것이다. 말을 잘못할까봐, 너무 과장된 어조로 말할까봐,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을까봐, 옹졸한 마음을 들킬까봐, 흥미로운 아이디어를 내놓지 못할까봐 평생 두려움에 떨며 살아갈 것이다.

 

 

순간 나는 내가 거기까지 릴라를 찾아간 것이 교만심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물론 좋은 마음에 애정을 가지고 한 행동이기는 하지만 그 긴 여행이 결국 릴라가 잃어버린 것을 나는 얻었다는 것을 과시하기 위해서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릴라는 내가 자기 앞에 나타난 순간 이 사실을 깨달았을 것이다. 그래서 동료와의 마찰과 벌칙금을 낼지도 모르는 위험을 무릅쓰고 지금 내게 내가 얻은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살아가면서 승리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고, 자신의 인생은 나만큼이나 다양하고 무모한 모험으로 가득하며 시간은 그저 별 의미 없이 흘러가기 마련이니 가끔 이렇게 만나 한 사람의 머리 속에 떠오른 터무니 없는 생각과 다름 사람의 머리속에 메아리치는 정신 나간 생각을 나누는 것도 좋지 않겠냐고 말하고 있는 것이었다.

 

 

우리는 포옹하고 뺨에 입을 맞췄다. 나는 다시 찾아오겠다고 했다. 다신 릴라를 잃고 싶지 않다고도 했다. 진심이었다. 릴라는 미소를 지으며 속삭였다.

"그래. 나도 널 잃고 싶지 않아."

릴라도 진심이라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몹시 흥분한 상태로 공장을 떠났다. 마음 속으론 릴라를 두고 떠나는 것이 괴로웠다. 릴라가 없으면 내게 아무런 중요한 일도 일어나지 않을 거란 과거의 확신이 되돌아왔다. 그러면서도 릴라의 몸에서 나는 기름내 때문에 한시라도 빨리 그곳을 떠나고 싶었다. 급히 걸음을 옮기다 참지 못하고 한 번 더 릴라에게 인사하려 뒤를 돌아보았다. 릴라는 모닥불 옆에 서있었다. 옷차림 때문에 여자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릴라는 <푸른요정>을 들춰보다 종이 묶음을 불 속에 던져버렸다.

 

 

 

6. 사랑하는 습관 -도리스 레싱 (2/17)

 

하지만 이렇게 결정을 내린 뒤에도, 아니 결정을 내렸다고 생각한 뒤에도, 제리는 자기도 모르게 바위 위에서 일어나 앉아 물을 내려다보았다. 그 순간 지금이야말로, 코피가 이제 막 그쳤고 머리는 아직 욱신거리지만 지금이야말로 그 일을 시도할 때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하지 않으면 영원히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제리는 고글을 쓰고 단단히 조인 뒤 물이 새어 들어오지 않는지 시험해보았다. 손이 덜덜 떨렸다. 제리는 자신이 들 수 있는 가장 큰 돌을 골라서 들고 바위 옆으로 미끄러져 서늘한 물 속에 절반쯤 몸을 담갔다. 나머지 절반은 뜨거운 햇볕을 받고 있었다. 텅빈 하늘을 한 번 올려다보며 한 번, 두 번 가슴에 공기를 채웠다. 그리고 돌멩이와 함께 바다 밑바닥으로 빠르게 가라앉았다. 그는 돌멩이를 놓고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양손으로 구멍 가장 자리를 잡고 머리를 안으로 들이밀면서 어깨를 꿈틀거려 모로 누웠다. 그러면서 몸이 앞으로 나아가게 발장구를 쳤다.

 

 

"아내는 머리가 좀 이상해요." 프랜시스가 아내를 고갯짓으로 가리키며 명랑하게 말했다. "바다에서 보낼 3주간의 휴가를 위해 옷을 만드는 데 1년의 절반을 쓴다니까요. 나머지 절반은 이런저런 잡동사니를 모아 크리스마스 선물을 만드는 데 쓰고요. 아내가 하는 일은 그것뿐이에요."

"직접 정성을 들인 선물을 사람들한테 주는 게 얼마나 좋은 일인데." 베티가 말했다.

"당신이 그런 식으로 시간을 낭비하는 걸 내가 막을 생각은 없어." 프랜시스가 말했다. "난 막을 생각 없어. 그건 당신이 알아서 할 일이니까."

"남자들은 우리가 해주는 일을 고맙게 생각하지 않아요." 베티가 눈물을 애써 참으며 메리를 동맹으로 끌어들이려 했다. "제가 열심히 애쓰지 않으면, 우리는 지금처럼 좋은 사람들을 친구로 사귈 여유가......"

하지만 메리 로저스는 이미 자리에서 일어선 뒤였다. "난 이제 좀 졸린 것 같네요. 잘 자요, 클라크 부인. 잘 자요, 클라크씨." 메리는 남편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자리를 떴다. 

토미가 서둘러 일어나서 계산을 하고 젊은 부부에게 황망히 인사한 뒤 아내의 뒤를 서둘러 따라갔다. 빌라로 이어진 가파른 오르막길로 접어드는 지점에서 그는 아내를 따라잡았다. 하늘에서 별들이 눈부시게 반짝이고, 야자수들이 가벼운 산들바람에 유혹적으로 흔들렸다. "그게 무슨 짓이야?" 그가 성을 내며 말했다.

"난 그런 걸 참고 들어줄 성격이 아니야." 메리의 목소리가 평소보다 높고, 눈물이 가득했다. 토미는 깜짝 놀라서 그녀를 보고는 침묵을 지켰다. 

하지만 다음 날에도 그는 낚시를 하러 갔다. 메리에게는 휴가가 이미 끝난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바닷가에 나가지 않고 짐을 쌌다.

저녁에 그가 말했다. "그 사람들이 어제의 답례로 우리를 저녁 식사에 초대했어."

"당신은 가. 난 피곤해."

"그래, 그럼." 그는 반항하듯 말하고는 나가버렸다. 그리고 밤 늦게야 돌아왔다.

다음 날 아침 일찍 기차를 타야 했다. 두 사람은 휴가가 끝난 것을 아쉬워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여행가방을 들고 기차역에 서있었다. 메리는 아무것도 아쉽지 않았다. 기차가 도착하자마자 그녀는 올라탔다. 토미는 전날 밤에 만나 얼굴을 익힌 것으로 보이는 수많은 영국인들과 플랫폼에서 악수를 하고 있었다. 기차가 떠나기 직전에 클라크 부부가 수영복 차림으로 달려와서 작별인사를 했다. 메리는 차창을 통해 뻣뻣하게 고개만 끄덕하고는 계속 짐가방을 정리했다. 기차가 출발하자 남편이 안으로 들어왔다. 

차 안에 사람이 가득해서, 대화를 나누지 않는 핑계가 되어주었다. 침묵이 끈질기게 이어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토미가 불안한 표정으로 아내의 기색을 살피며 날씨에 대해 몇 마디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기차가 북쪽으로 갈수록 날씨가 계속 나빠지고 있었다.

파리에서 다섯 시간 정도 시간이 남았다.

두 사람은 강가의 노천시장을 걷고 있었다. 메리가 질그릇 판매대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저 커다란 그릇." 그녀가 새로이 활기를 띤 목소리로 외쳤다. "저 커다란 빨간색 그릇. 저거, 크리스마스트리에 달면 딱 좋겠어."

"그렇겠네. 마음에 들면 사." 토미는 무한한 안도감을 느끼며 즉각 맞장구쳤다.

 

 

"행복?" 로즈는 이 단어를 시험해보는 것 같았다. 그러다 갑자기 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가끔 당신 말이 너무 웃겨." "뭐가 웃긴데? 당신은 유머감각이 전혀 없어. 그게 당신 문제야." 하지만 이렇게 자신을 놀리는 말에 반응하는 대신, 로즈는 이 말을 진지하게 생각해본 뒤 대답했다. "내가 웃는 건 뭔가 웃기니까 그런거겠지. 전에 아빠도 나더러 유머감각이 없다고 말하곤 했어. 그러면 나는 이렇게 대답했지. '내가 웃기다고 생각하는 게 아빠가 웃기다고 생각하는 것만큼 재미있지 않다고 어떻게 그렇게 확신하세요?" 지미가 잠시 가만히 있다가 비꼬듯이 말했다. "당신은 웃어도 웃는 것 같지 않아. 고약하게 보인다고."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내가 행복하냐고 물었더니 당신이 웃었잖아. 행복하다는 말의 어디가 웃긴 건데?" 이제 그는 진심으로 화를 내고 있었다. 로즈는 이번에도 그의 바람처럼 웃음을 터뜨리거나 그 덕분에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다는 말로 안심을 시키는 대신 진지하게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결론을 내리듯 말했다. "음. 일리가 있는 말이긴 하네. 사람들은 행복이나 불행을 말하지. 뭔가 어려운 말도 하고. 그리고 당신이 하는 말도 있어. 여자는 이렇다. 남자는 저렇다. 일부다처제가 어쩌고저쩌고.... 음........" "음?" 지미가 다그치듯 말했다. "음. 그게 나한테는 그냥 웃겨." 로즈가 힘없이 말했다. 그녀는 자신의 기분, 즉 삶의 위험성과 슬픔에 대한 깊은 깨달음을 표현할 수 있는 다른 단어를 찾을 수 없었다. 노인의 머리에 폭탄이 떨어지고, 화물트럭이 사람을 죽이고,전쟁은 계속 이어지고, 그가 돌아오지 않는 밤이면 그녀는 혼자 앉아 몇 시간이고 울어대면서 자기가 왜 우는지도 모르고, 높은 창문에서 어둡고 파괴된 거리를 내려다보는 삶. 도시는 전쟁의 그림자로 어두웠다. 

 

 

 

7. 여성 혐오를 혐오한다. -우에노 지즈코 3/4

 

오쿠모토는 호색한이 여성 혐오적이라는 사실을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는데, 이 수수께끼를 해석하자면, 남자들이 '남성됨'이라는 성적 주체화를 이루기 위해 '여성'이라는 타자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모순을 그들도 민감하게 의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자신이 성적으로 '남성'인 것을 증명할 필요가 있을 때마다 여자라는 시시하게 불결하며 이해 볼가능한 생물에게 욕망의 충족을 의존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 그 사실에 대한 남자들의 분노와 원한이 바로 여성 혐오의 내용일 수 있다.

 

 

'성녀'와 '창녀'는 여성 억압의 두 가지 형태일 뿐이며 양쪽 모두 허울 좋은 '타자화'에 지나지 않는다. 성녀는 '창녀 취급하지 말라'며 창녀에 대한 멸시를 드러내고 창녀는 '양가집 부녀자'와 달리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가는 직업 부인'으로서 자부심을 가지는 걸 통해 '아마추어 여성'의 의존성과 무력함을 비웃게 되는 것이다.

 

 

여성 혐오는 비교에 의해 강화된다. 비교한다는 것은 '비교 가능함'을 의미하기도 한다. 비교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양측이 비교 가능한 공약수를 가지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젠더나 신분의 차이가 변경 불가능한 운명으로 받아들여지는 곳에서는 '구별'은 있어도 '차별'은 없다. 같은 인간으로서 공약될 수 있는 분모가 생김으로써 비로소 차별을 부당하게 여기는 심성이 생겨나게 된다. 성차별 그 자체는 훨씬 이전부터 존재해왔으나 근대는 비교에 의해 역설적으로 성차별을 강화하였다.

 

 

일부 소녀들이 매춘행위에 몰두함으로써 '아무 존재도 아닌 자신'을 벌주고 그것을 통해 '특정한 존재'로 확립하려는 절망적 시도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 소녀들 중 많은 수가 성직자나 교사 같은 권위적이고 억압적인 아버지 밑에서 자랐단 사실도 발견한다. 그녀들은 자해나 스스로에게 벌을 주는 행위를 통해 자신을 무력화한 아버지에게 복수를 하고 있던 것이다.

 

 

나카무라 우사기만큼 자신을 '민망한 여자'라 부르는 여자도 없다. 정말로 그녀는 '민망'할까? 쇼핑 중독증, 호스트클럽 중독, 성형 수술, 나아가 출장마사지(성매매) 체험까지, 자신의 여성성 가치를 확인하기 위한 눈물겨운 노력의 결과를 상품화하는 그녀의 퍼포먼스를 보며 나는 드래그 퀸을 떠올린다. 여성스러움을 극대화하여 연출하는 드래그 퀸. 이성애 제도 안에서 여성성 가치를 추구하는 모습을 연기하는 그녀가 의식하는 시선은 오로지 여성 독자의 시선이기 때문이다.

드래그 퀸이란 여성스러움을 과잉 연출함으로서 젠더 허구성을 코미디 재료로 삼는 게이들의 여장 전략을 가리킨다. 이와 같은 식으로 나카무라 우사기도 여성성의 가치 상승을 위한 노력을 과장되게 표현함으로써 희화화를 노린다. 퍼포먼스를 통해 '여성'이라는 젠더 허구성을 까발리고 더불어 그 허구에 멋대로 욕정을 표출하는 자동 기계 같은 남성의 욕망을 철저하게 웃음거리로 만들어 보인다.

"예쁘시네요."라는 말을 들으면 나카무라는 이렇게 대답한다고 한다.

"네. 성형했거든요."

이런 대답을 들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깜짝 놀라 한 걸음 뒤로 물러선다고 했다. 자기 얼굴을 마음껏 가지고 논 결과 그녀가 얻게 된 것은 '내 얼굴에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게 되었단 사실'이라고 말하낟. 휼륭한 견식이다. 용모의 미추가 자신에게 속해있지 않다는 사실, 여성이라고 하는 젠더가 '여장'에 의해 성립된단 것을 나카무라는 드래그 퀸처럼 퍼포먼스를 통해 내보인 것이다. 이것이 해학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자발적인 매춘을 자기 처벌적 자해 행위로 인식하는 시각은 원조 교제 소녀들에 대한 해석에도 공통으로 들어가있다. 그 해석 역시 가족 관계 내에 머무른다. 아버지에게 사랑과 기대를 받으며 자란 딸은 아버지와 동일화하려고 하나 '아버지의 딸'은 아무리 발버둥쳐도 '딸'일수 밖에 없으며 '아들'이 될 수 없다. 자신은 불완전한 아버지 밖에는 될 수 없단 걸 알고 딸은 아버지와의 동일화를 방해하는 여성신체를 벌하려 한다. 이 경우 매춘은 자벌이 된다. 한편, 아버지에게 지배를 받으며 아버지를 혐오하는 딸은 아버지에 속해 있는 자신의 신체를 '더럽힘'으로써 아버지를 배신하고 아버지에게 복수하려고 한다. 이 경우 매춘은 타벌이 된다. 이러한 자벌이나 타벌 모두 딸의 자해 행위를 통해 달성된다. 

 

 

a씨는 회사에서 출세하여 능력있는 여자로 칭찬받고 싶단 '아버지의 딸'로서의 남성적 욕망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남성 성욕의 대상으로서 선택받고 싶단 여성적 욕망도 가지고 있었다. 두 경우 모두 남성은 승인을 부여하는 자의 위치에 있다.

승인을 부여하는 자의 모순은, 그가 승인을 구하는 자에게 깊이 의존해야만 한다는 사실이다. 여성 혐오란 그 모순을 간과한 남자들이 느끼는 여성에 대한 증오의 대명사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8. 그녀의 눈물 사용법 -천운영 (2/27)

 

내가 죽어 먼길을 떠나 어디엔가 도착해야 한다면 내가 쓴 소설 속으로 들어가겠다. 소설을 쓴다는 것은 시간을 거슬러 기억 저편의 그림 속으로 가는 과정일 테니까. 그러니 이것이 누가 쓴 것이든 태우지 마시라. 내가 쓴 것, 그 속에 내가 있다.

 

 

그들은 정말 집요하고 치밀해. 우리집 한복판에 설치했던 그 기례를 생각하면 소름이 끼쳐. 그건 우리 낙원의 공기를 측정해주는 기계라고 했어. 시간이 조금 지나고 난 뒤에, 그 기계에 표시된 수치와 그들이 정상이라고 규정지은 수치를 비교해서 보여주었어. 우리가 숨쉬는 공기 속에는 안 좋은 세균들이 득실거린다고. 우리는 평균치의 몇십배나 많은 세균들 속에서 살고 있다고 의기양양하게 말했어. 우리의 낙원이 세균으로 득실거리는 불행의 공간으로 전락하는 순간이었어. 그것은 우리의 불행을 표시하는 명백한 증거물이었어.

우린 낙원에서 쫓겨났어. 마치 선악과를 먹은 이브처럼 말이야. 우리가 누렸던 행복은 불쾌한 것이고, 부끄러운 것이고, 그러니까 버려야 하는 무엇이었어. 정말 그랬어? 정말 그때가 행복하지 않았다고 장담할 수 있어? 그들이 제시한 새로운 행복이 정말 행복이라고 생각해? 우린 그 새로운 행복을 찾아 낙원을 포기하고 만 거야.

 

 

 

9. 삿뽀로 여인숙 -하성란 (2/29)

 

"모네예요."

발소리도 없이 김정인이 다가와 있었다. 면도 후에 바르는 화장품 냄새가 뒤따라왔다.

"그렇게 가까이서 보면 물감 얼룩으로밖에는 보이지 않아요."

주춤거리면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그가 내 어깨를 잡고 사무실 제일 끝으로 데려갔다.

"카미유와 장이 산책하고 있습니다. 양귀비 밭을."

그제야 얼룩으로밖에 보이지 않던 붉은 물감들이 살을 데일 듯한 붉은 꽃잎으로 살아났다. 양귀비꽃을 본 적이 없었지만 그건 분명히 양귀비일 것이다. 

 

 

덕수궁으로 향한 창에도 블라인드가 내려지고 형광등까지 꺼져있어 그의 방은 어두컴컴했다. 형광등을 켜려다 그만두었다. 짐작으로 어둠을 더듬어 모네의 그림 앞에 섰다. 알루미늄 프레임이 어둠 속에서 희번뜩 빛났다.

"카미유와 장이 산책을 하고 있습니다. 양귀비밭을."

중얼거리며 물걸레를 그의 책상 위에 척 올려놓았다. 물걸레에서 튄 물이 얼굴에 와 닿았다. 한 발을 때려는데 느닷없이 어둠 속에서 나타난 손이 내 종아리를 움켜쥐었다. 손가락이 아래로 내려와 내 발목에 머물렀다. 

"이런. 아를로의 처녀군. 아무것도 신지 않았잖아."

부스럭거리며 그가 소파에서 일어나 앉았다. 내 발목을 쥐었던 그의 손은 자연스럽게 내가 입은 모직 스커트 밑으로 들어와 있었다. 활짝 편 그의 손바닥이 아주 천천히 나일론 스타킹 위로 오르내렸다. 어둠이 눈에 익으면서 서서히 그의 윤곽이 드러났다. 알루미늄 프레임 속의 양귀비밭은 흙탕물이 점점이 튀어 마른 얼룩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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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기별로 읽은 책을 정리하리라 2019년이 시작될 때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 3분의 1지점에 와있다. 이런...

물론 생각한 것만큼 내 삶이 이루어졌다면 지금보다는 훨씬 더 나은 사람이 되어 있었을 것이다. 아니면 훨씬 별로인 사람이라던가.

그래도 한 달 정도 늦은 게 큰 차이가 있을까. 그렇게 많이 달라지진 않지 않나. 는 내가 원하는 바다.

 

 

1. 19호실로 가다 -도리스 레싱(1/17)

 

하지만 특별한 통찰력 없이 그냥 타인의 시각으로 바라본다면, 그 남자는 열세 번째(이게 정확한지는 잊어버렸다)로 보일지도 모른다. 내면의 감정이 말하는 진실을 무시한다면. 진지한 사랑과 헤어지고 새로이 진지한 사랑을 만나기 전에 몇 년 동안 수십명을 사귈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은 중요하지 않다.

이런 식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불행한 사람이 여럿 생겨난다. 나한테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존재가 다른 사람에게는 중요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어려움을 극복할 방법은 없다. 진지한 사랑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 또는 거의 가장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대부분의 사람들은 진지한 사랑을 찾아 헤맨다. 어떤 사람과 매우 진지한 감정을 나누고 있을 때도 우리는 혹시 우연히 만난 낯선 사람이 훨씬 더 진지한 상대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한쪽 눈의 8분의 1쯤으로 다른 곳을 바라본다. 진짜 상대를 만날 때까지 수많은 사람들을 맛보고, 시험하고, 홀짝거리고, 표본검사를 해볼 권리가 있다는 주장에 대해 우리 모두 전적으로 동의한다. 함께 어울리는 사람들 사이에서 이렇게 서로를 맛보고 시험하는 것이 십중팔구 두 번째로 중요한 행위

 

 

스텔라는 생각했다. '이제부터 벌어질 일은 도로시와 잭과 아기를 저 멀리 하늘까지 날려버릴 거야. 내 결혼생활도 끝날 거고. 내가 모든 걸 박살내는 거야.' 거의 억제할 수 없을 만큼 즐거워졌다.

그녀는 도로시, 잭, 아기, 남편, 반쯤 성인이 된 두 아이가 모두 흩어져, 폭발 뒤의 잔해처럼 하늘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모습을 그려보았다.

잭의 입술이 그녀의 뺨을 따라 입을 향해 움직이자 그녀의 온몸이 기쁨 속에 녹아버렸다. 그때 감은 눈꺼풀 속에서 담요로 꽁꽁 감싼 아기가 보였다. 그녀는 몸을 뒤로 빼며 힘껏 소리쳤다.

"망할 도로시, 젠장, 젠장, 정말 죽여버리고 싶어......"

잭도 폭발하듯 분노한 목소리로 나직하게 말했다. "당신들 둘 다 나빠! 두 사람 목을 전부 꺾어버리고 싶네......"

두 사람의 얼굴은 1피트(약 30센티미터) 거리로 떨어져 있었다. 두 사람의 눈에서 적의가 번들거렸다. 만약 스텔라가 그 무기력한 아기의 모습을 보지 않았다면, 지금쯤 잭과 부둥켜안고 있었을 것이다. 두 대의 발전기처럼 애정과 욕망을 뿜어내고 있었겠지. 그녀는 메마른 분노로 부들부들 떨면서 혼자 중얼거렸다.

"이러다 기차 놓치겠어." 그녀가 말했다.

"내가 당신 겉옷을 가져올게." 그는 텅 빈 마당에 그녀를 무방비하게 내버려두고 안으로 들어가버렸다.

다시 밖으로 나온 그는 그녀의 몸에 손이 닿지 않게 겉옷을 걸쳐주면서 말했다. "서둘러. 내가 차로 데려다줄게." 그는 앞장서서 자동차로 향했다. 그녀는 거친 잔디밭 위를 얌전히 따라갔다. 정말로 아름다운 밤이었다. 

 

 

내면의 목소리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어머니가 대체로 옳다면, 마지막에 한 말도 옳겠지. 내가 정말로 잘해낼까?'

그러자 오른쪽 어깨 뒤의 적이 말했다. '어머니는 자식에게 가장 좋은 친구지. 어머니는 그 무엇도 허투루 넘기는 법이 없어.'

 

 

서른 살 안팎의 젊은 의사는 대학 당국이 학업과 개인적인 고민, 그리고 문화적 충돌 문제(찰리의 냉소적인 제 2의 자아가 이 부분을 지적하며 즐거워했다)에 대해 조언해줄 수 있는 아버지 같은 인물이라며 추천해준 사람이었다. 그는 찰리가 들고 온 전단지를 흘깃 훑어보고는 다시 건네주었다. 그 전단지는 그가 작성한 것이었다. 물론 찰리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시험이 언제죠?" 의사가 물었다.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는구나. 어머니랑 똑같아.' 찰리의 어깨 뒤에서 악의적인 목소리가 말했다.

"다섯 달 남았습니다. 그런데 공부도 안 되고, 잠도 안 와요."

"언제부터요?"

"조금씩 증세가 나타났습니다." '태어났을 떄부터 줄곧.' 어깨 뒤의 목소리가 말했다.

"물론 내가 진정제와 수면제를 처방해줄 수 있습니다만, 그것으로는 진짜 문제를 건드릴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여러 계층이 이렇게 부자연스럽게 뒤섞여 있는 것 말이지? 이런 건 소용없어. 사람이란 모름지기 자기 분수를 알고 자기 자리에 딱 붙어 있어야 돼.' "그래도 수면제가 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여자친구가 있습니까?"

"두 명 있습니다."

의사는 세속적인 사람처럼 공감하는 기색을 조금 보여주다가 미소를 싹 지우고 말했다. "한 명만 사귀는 게 낫지 않을까요?"

"둘 중 누구를? 엄마 같은 여자, 아니면 사랑스럽게 섹스를 하는

 

 

하지만.......

그래, 심지어 이것조차도 미리 예상한 그대로였다. 어쩔 수 없이 어느 정도 단조로운 생활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것.......

그래, 그래. 두 사람이 가끔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니까 구체적으로 무슨 생각?

두 사람의 삶은 자기 꼬리를 문 뱀과 같았다. 매슈는 수전, 아이들, 집, 정원을 위해 일했다. 이 쉼터를 유지하려면 보수가 좋은 일자리가 필요했다. 수전은 매슈, 아이들, 집, 정원을 위해 실용적인 지혜를 바루히했다. 그녀가 없었다면, 이 모든 것이 일주일만에 무너져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두 사람이 "다른 것은 모두 이것을 위해서"라고 말할만한 것은 없었다. 아이들은 생활의 중심이자 존재의 이유가 될 수 없었다. 아이들이 부모에게 헤아릴 수 없는 기쁨과 재미와 만족을 안겨줄 수는 있지만, 삶의 원천이 될 수는 없는 법이다. 그래서도 안 되고, 수전과 매슈는 이 점을 잘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매슈의 일이 '이것'일까?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흥미로운 일이긴 해도, 존재의 이유라고 할 수는 없었다. 매슈는 자신의 일솜씨에 자부심을 느꼈지만, 신문 그 자체를 자랑스러워하지 않았다. 그가 자신의 것으로 여기며 애독하는 신문은 그가 일하는 곳의 신문이 아니라 다른 신문이었다.

그렇다면 서로를 사랑하는 두 사람의 마음일까? 음, 그나마 이 마음이 '이것'에 가장 가깝기는 했다. 사랑조차 살므이 중심이 아니라면, 무엇이 중심이 될 수 있겠는가? 두 사람의 훌륭한 인생은 분명 사랑을 중심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두 사람의 인생은 확실히 훌륭했다. 수전도 매슈도 가끔 이런 생각을 하면서 자신들이 만들어낸 결혼생활, 네 아이, 커다란 집, 정원, 파출부, 친구, 자동차 등을 내심 경이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곤 했다....... 바로 이것, 이 모든 것이 너느 날 갑자기 존재하게 된 수전이 매슈를 사랑하고 매슈가 수전을 사랑하기 때문이었다. 대단한 일이었다. 그러니 사랑이 바로 삶의 중심이자 원천이었다.

그런데 이것이 다른 모든 것을 지탱할 수 있을 만큼 강렬하고 중요하지 않은 것 같은 생각이 든다면, 그것은 누구의 잘못일까? 수전이나 매슈의 잘못은 확실히 아니었다. 원래 세상이 그런 탓이었다. 그래서 두 사람은 현명하게 상대를 탓하지도, 자책하지도 않았다. 

 

 

그러니 두 사람이 삶을 건조하고 단조롭게 느낀다고 해서 무슨 문제가 되겠는가? 두 사람처럼 수많은 책(심리학, 인류학, 사회학)을 읽은 사람들은 지적인 결혼생활의 뚜렷한 특징인 건조하고 통제된 동경에 대해서도 대체로 준비가 되어 있다. 교육수준이 높고, 안목이 있고, 판단력을 갖춘 두 사람이 자의로 하나가 되어 서로를 위해 유용한 일을 하면서 행복하게 살아가기로 하는 것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일이다.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알고 있고, 심지어 우리 자신도 그런 생활을 하고 있다. 그래도 슬픔을 느끼는 것은 수많은 노력이 낳는 결과가 보잘것없기 때문이다. 수전과 매슈는 어떤 일에도 놀라지 않고, 훨씬 더 예의 바르고 부드럽고 애정 어린 태도로 서로를 대했다. 이런 것이 인생이었다. 아무리 신중하게 선택할 줄 아는 사람이라 해도, 두 사람이 서로에게 전부가 될 수는 없다는 것. ㅅ실 이런 말을 하고 생각을 하는것조차 진부해서 두 사람은 창피해졌다.

 

 

그 결과 수전은 결혼하지 않은 스물여덟 살 때의 모습과 쉰 살 언저리에 다시 꽃피울 자신의 모습을 생각하게 되었다. 그녀는 20년 전 자신의 모습을 뿌리로 삼아 꽃을 피울 것이다. 수전의 본질이 일시정지 상태로 차가운 창고에 들어가 있는 것 같았다. 매슈도 어느 날 밤 수전에게 비슷한 말을 했다. 수전은 맞는 말이라고, 자기도 그렇게 생각한다고 맞장구를 쳤다. 그렇다면 수전의 본질이란 무엇일까? 그녀도 알 수 없었다. 표현이 우스꽝스러운 것 같았고, 그녀도 이렇다 할 느낌이 없었다. 어쨌든, 두 사람은 서로의 품에 안겨 잠들기 전에 이런 주제들에 대해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눴다. 

마침내 쌍둥이가 학교에 들어갔다. 밝고 사랑스러운 두 아이는 아무 문제도 겪지 않았다. 위의 두 아이가 이미 그 길을 아주 훌륭하게 걸어갔기 때문이다. 이제 수전은 학기 중이면 매일 이 큰 집에 혼자 있게 되었다. 날마다 청소를 해주러 오는 파출부만 있을 뿐이었다. 

두 사람의 결혼생활 중에 처음으로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일이 벌어진 것이 바로 이때였다.

그 일을 설명하자면 이렇다. 수전은 쌍둥이를 차에 태워 학교에 데려다준 뒤, 일곱 시간 동안 황홀하고 자유로운 시간을 보낸 기대에 부풀이 9시 30분에 집에 도착했다. 첫날 오전에는 도무지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처음으로 학교에 간 쌍둥이를 '아주 자연스럽게' 걱정했기 때문이다. 수전은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올 때까지 진정할 수 없었다. 아이들은 학교라는 새로운 세상을 보고 신이 나서 다음 날을 기대하며 즐거운 기색으로 돌아왔다. 다음 날 수전은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주고 돌아와서, 크고 아름다운 집에 들어가기가 싫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자신이 대면하고 싶지 않은 뭔가가 거기서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녀는 분별 있는 사람이었으므로 차고에 차를 세우고 집에 들어가 파출부인 파크스 부인에게 지시를 내린 뒤 침실로 올라갔다. 하지만 열에 들뜬 사람처럼 방을 나와 계단을 내려가서 부엌으로 들어갔다. 파크스부인이 케이크를 만들고 있었지만, 수전의 손길은 필요하지 않았다. 수전은 정원으로 나가서 벤치에 앉아 언뜻 보이는 갈색 강물과 나무들을 보며 마음을 가라앉히려고 애썼다. 하지만 긴장만 가득해서 공황상태에 빠질 것 같았다. 마치 이 정원 안에 적이 도사리고 있는 것 같았다. 수전은 자신에게 엄격하게 말했다. "이건 모두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야. 처음에 나는 어른이 된 뒤 12년 동안 일을 하면서 나만의 인생을 살았어. 그리고 결혼했지. 처음 임신한 순간부터 나는, 말하자면 나 자신을 다른 사람들에게 넘겼어. 아이들에게. 그 후 12년 동안 나는 단 한순간도 혼자였던 적이 없어. 나만의 시간이 없었어. 그러니까 이제 다시 나 자신이 되는 법을 배워야 해. 그뿐이야."

 

 

 

2. 우리에게도 계보가 있다 -이민경 (1/20)

 

앞서 말했듯 우리는 앞으로도 뒤로도 간다. 다만 계속해서 커지는 것이 있다. 커튼에 난 구멍이다. 빛이 들어오지 못하게, 상식이 통하지 않게 가려두었던 커튼은 계속해서 찢긴다. 저 밖에 있는 게 빛이라는 걸 아는 순간, 그리고 일단 빛이 든 이상 도로 암흑을 받아들이게 할 수는 없다. 상식은 그렇게 때로 천천히, 때로 빠르게 세를 넓혀간다. 운 좋게도 지금 우리는 오랜 시간에 걸쳐서야 느낄 수 있었을 그 흐름을 눈 앞에서 압축적으로 보고 있다. 어떤 목소리는 설득력을 잃고 어떤 목소리는 힘을 얻어가는 일관된 흐름을 목도하는 일이, 당장 누구의 목소리가 더 힘이 센지 가려내는 일보다 중요하다. 어차피 차별주의자마저도 커튼의 찢어진 틈으로 드는 볕에 곧 빚지게 될 것이므로. 

 

 

제도의 마련과 단체의 활동은 기록으로 남아 웬만하면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변화를 맞이했을 때 느끼던 설렘, 환호, 두근거림에 깃든 열은 아쉽게도 금세 날아간다. 변화의 주역이었노라고 자신 있기 말할 수 있는 이들의 수는 한정되어 있다. 그러나 변화가 일어나는 당시를 살아가는 이상 모두가 필연적으로 관여한다. 변화를 직접 기획하거나, 변화의 물결에 동참하거나, 주변인과 함께 혹은 마음속으로만 지지하거나, 혹은 반대 편에 서서 막았거나, 알고 싶지 않아서 듣지 않기를 선택했거나, 적어도 그 당시에는 정말 모르고 지나쳤거나, 우리는 겸손하기 위해서, 혹은 정말 그렇게 믿기 때문에 '나는 한 게 없다'고 말하곤 하지만, 다시 생각하면 동시대를 사는 우리는 반드시 무엇인가를 하고 있었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기를 선택하더라도 어딘가에서 한 사람 분의 자리를 차지할 것이다. 마치 인화된 사진처럼, 구석자리에서라도 당신은 당신의 얼굴을 찾을 수 있다. 그리고 각자의 자리에서 마주한 변화에 관해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은 오로지 본인뿐이다. 

 

 

 

3. 나의 눈부신 친구 -엘레나 페란테 (2/16)

 

리노는 춤을 추면서 릴라가 춤에 대해서 광적인 완벽주의에 사로잡혀 전축도 없는데 쉴 새 없이 연습한다고 했다. 리노의 입에서 그 단어 그러니까 전축이라는 단어가 흘러나오자 릴라가 방구석에서 눈을 가늘게 뜨고 외쳤다.

"너 전축이 어떤 단어인지 아니?"

"아니."

"그리스어야."

나는 의심스러운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새 리노는 나를 버려두고 동생과 춤을 추러 갔다. 릴라는 가녀린 탄성을 터뜨리며 내게 춤 설명서를 건넨 다음 오빠와 함께 날아다니듯 춤을 췄다. 나는 그녀가 책을 꽂아놓은 곳에 춤 설명서를 놓아두었다. 지금 릴라가 뭐라고 한 거지? 전축은 이탈리아어지 그리스어가 아니다. 순간 <전쟁과 평화>아래 페라로 선생님과 도서관 분류번호가 붙은 너덜너덜한 책이 내 눈에 들어왔다. 제목이 <그리스어 문법>이었다. 문법책이라니. 그리스어라니. 릴라는 헐떡거리며 내게 말했다.

"나중에 그리스어 알파벳으로 전축을 어떻게 쓰는지 알려줄게."

나는 할 일이 있다고 말하고는 자리를 떴다. 

 

릴라는 내가 고등학교에 가기도 전에 그리스어를 공부하기 시작한 건가? 나는 공부할 생각도 하지 않고 있었는데. 그것도 여름 방학 동안에 혼자서 공부했단 말인가? 릴라는 왜 항상 내가 해야 할 일을 나보다 빨리, 나보다 더 잘하는 걸까. 내가 따라가면 도망가면서 정작 자신은 언제나 내 뒤를 쫓아와 나보다 앞서나가려 하는 걸까.

나는 한동안 릴라를 피했다. 그만큼 화가 났다. 나도 그리스어 문법책을 빌리려고 도서관에 갔지만 우리 도서관에 비치된 유일한 그리스어책은 채롤로네 온 식구가 번갈아가며 빌려보고 있었다. 어쩌면 칠판에 그려진 그림을 지우듯이 나에게서 릴라를 지워버려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한 것은 처음이었던 것 같다. 내 자신이 연약하게 느껴졌고 모든 것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된 것처럼 느껴졌다. 평생 그녀를 뒤쫓아 다니거나 반대로 그녀가 나를 뒤쫓아 온다고 생각하면서 살 수는 없었다. 게다가 그 어느 경우건 그녀보다 못한 것은 나였다. 

하지만 이번에도 버티지 못하고 다시 릴라를 찾았다. 나는 그녀가 내게 넷이서 함께 추는 춤의 일종인 카드리유 춤을 가르쳐주게 내버려두었다. 내게 이탈리아어 단어를 그리스어 알파벳으로 쓰는 모습을 보여주도록 내버려두었다. 릴라는 학기 시작 전에 나도 그리스어 알파벳을 익히기를 원했고 결국 내게 그리스어로 읽고 쓰는 법을 가르쳤다. 그러는 동안 내 얼굴의 뾰루지는 늘어만 갔다. 나는 영원히 지속될 것 같은 자신감 부족과 수치심에 시달리며 질리올라네로 춤추러 갔다. 

한사코 벗어나길 바랐지만 내 느낌은 강해져만 갔다. 언젠가 릴라가 그녀의 오빠와 함께 왈츠를 춘 적이 있다. 얼마나 멋들어지게 춤을 추던지 모든 사람이 그들의 독무대를 위해 자리를 만들어줄 정도였다. 나도 매혹되어 그들을 바라보았다. 둘 다 아름답고 호흡이 잘 맞았다. 나는 그들을 바라보면서 얼마 지나지 않아 릴라가 애늙은이 같은 모습에서 완전히 벗어날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너무 뛰어나게 편곡을 하면 원곡의 익숙한 멜로디가 잊히는 것처럼 말이다. 

릴라의 얼굴은 균형이 잡혀가고 있었다. 시원한 이마와 갑작스럽게 가늘어지는 커다란 눈, 아담한 코와 광대뼈, 입술이며 귀가 가장 아름다운 조화를 찾아나가고 있었고 머지않아 그 균형점을 찾을 것 같았다. 말총머리로 묶으면 마음을 사로잡는 기다란 목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사랑스러운 작은 가슴은 점점 더 봉긋이 솟아오르고 있었다. 등의 깊은 곡선은 팽팽한 둔부의 오목한 부분까지 이어져나갔다. 발목은 아직 어린아이 발목처럼 가늘었다. 하지만 그 발목이 이미 소녀의 형태를 갖추기 시작한 신체에 적응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이다. 

 

 

"파스콸레는 어때? 고백했어?"

"미쳤어?"

"아침마다 가게까지 데려다주던데?"

"그거야 우리가 태어나기 이전에 일어난 일들에 대해서 이야기해주려고 그러는 거지."

이렇게 해서 '이전'이라는 화두가 재등장했다. 초등학교 때와는 확실히 다른 방식으로 말이다. 릴라는 어렸을 때나 지금이나 우리는 여전히 아는 것이 없다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동네에 있는 모든 것이, 돌멩이 하나에서부터 나무 한 조각에 이르기까지 사소한 것 하나하나가 우리가 태어나기 전에 이미 존재했지만 우리는 이를 깨닫지 못하고, 그러한 사실에 대해서 생각조차 하지 않은 채 성장해온 것이라고.

우리뿐만이 아니다. 릴라의 아버지도 마치 예전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양 행동하고 있었다. 그녀의 어머니도, 나의 어머니도, 나의 아버지도, 리노마저도 별다를 바가 없었다. 하지만 스테파노의 식료품점은 이전에 파스콸레의 아버지인 알프레도 아저씨의 목공소였다. 돈 아킬레의 재산과 솔라라 집안의 재산은 모두 과거에 축적된 것이다. 릴라는 자기 부모님과 과거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시도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그녀의 부모님은 아무것도 몰랐고 아무런 이야기도 하려 하지 않았다. 파시즘에 대해서도 왕정에 대해서도 이야기하지 않았다. 권력남용이나 폭정, 착취에 대해서도 무지했다. 그들은 분명 돈 아킬레를 증오하고 솔라라 집안을 두려워했다. 하지만 모른 척하고 돈 아킬레 자식의 가게나 솔라라네 가게에서 자신들이 번 돈을 쓰고 때로는 우리를 그곳으로 심부름을 보내기도 했다. 그러고는 솔라라네 가족이 원하는 것처럼 파시스트나 왕정복고주의자들에게 투표를 한다. 그들은 이전에 일어난 일들은 모두 과거일 뿐이니 조용하게 살아가기 위해서 모든 것을 그냥 덮어두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어른들은 아직도 과거의 일에 영향을 받고 있었고 우리까지 그 영향권 안으로 끌어들이고 있었다. 이렇게 해서 자신도 모르게 과거의 일을 되풀이하고 있었다. 

 

 

"리나. 우리는 똑똑하니까 함께 노력하면 아무도 우리를 막을 수 없을 거야. 그러니 이제 뭘 해야 할 지 말해줘."

리노는 자기도 자동차와 텔레비전을 살 수 있게 되기를 바랐고, 이런 물건들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페르난도 아저씨를 경멸했다. 무엇보다도 릴라가 이제는 자신을 지지해주지 않자 그녀를 하녀보다 못하게 대하기 시작했다. 리노는 자신이 얼마나 망가졌는지 몰랐을 것이다. 하지만 매일같이 그런 오빠의 모습을 지켜봐야 했던 릴라는 걱정하기 시작했다. 한 번은 내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잠에서 막 깨어났을 때 사람들의 모습이 괴상하고 추한 데다가 한 치 앞을 못 보잖아?"

릴라는 리노가 바로 그렇다고 했다.

 

 

스테파노가 미소 지었다.

"누가 감히 네 동생이 원하지 않는 일을 할 수 있겠어?"

그는 당당한 태도로 페르난도 아저씨와 악수를 하고는 문 쪽으로 향했다. 리노는 스테파노를 배웅하다가 걱정을 참지 못하고 빨간 오픈카를 향해 걸어가는 식료품점 주인의 등에 대고 가게 문턱에서 소리쳤다.

"신발 상표는 체롤로야. 절대로 바꿀 수 없어."

스테파노는 돌아보지도 않고 손짓을 해보였다.

"체롤로 집안의 여인이 만들었으니 체롤로라는 이름을 써야겠지."

 

 

사춘기 시절 부에 대한 이미지는 여전히 세상에 둘 도 없는 신발 같은 어린 시절의 공상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귀족처럼 돈을 쓰고 싶어 하는 리노의 광폭한 욕구의 형태로 나타났다. 또 부는 환심을 얻으려고 텔레비전, 파스타, 반지를 사는 마르첼로에 의해서도 나타났고, 온갖 종류의 햄을 팔고 빨간색 오픈카를 가지고 있으며 4만 5천 리라쯤이야 푼돈이라는 듯이 돈을 쓰고 릴라의 그림을 액자에 넣고 치즈 같은 식료품 말고도 신발을 팔기 위해 자재비와 인건비에 투자하고 자신이야말로 동네에 새로운 평화와 번영의 시대를 도래하게 할 수 있다고 확신하는 스테파노에 의해서도 체현되었다. 부라는 것은 생활 속에 이미 내포된 것이다. 거기에는 영광도 화려함도 없었다. 

 

 

앞에는 와인 병이 놓여 있었는데 눈빛만으로 병을 산산조각 내어 와인을 사방으로 튀게 할 것 같아 겁이 났다. 하지만 릴라는 병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녀의 시선은 더 먼 곳에 있는 마르첼로의 구두를 향해 있었다.

마르첼로는 체롤로 부자가 만든 남성 구두를 신고 있었다. 그것도 진열장에 전시된 금색 버클이 달린 모델이 아니었다. 마르첼로가 신고 있는 구두는 예전에 릴라의 남편 스테파노가 구입한 바로 그 신발이었다. 릴라가 수개월 동안 두 손을 망가뜨려가며 만들었다 분해하고, 다시 만들기를 수없이 반복해서 완성시킨 바로 그 신발이었다. 

 

 

 

4. 엄마도 아시다시피 -천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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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2018년도에 읽은 책을 몰아 기록하느냐! 라고 나를 몰아세우지 마세요

몰아 기록하든 천천히 하나하나 기록하든 그게 다 무슨 상관입니까

그때의 내가 여기에 있다는 걸 나 혼자라도 기억하면 되죠



1. 센트럴 파크 -귀욤 뮈소


2. 말하다 -김영하


저도 가끔 벽에 부딪힐 때면 어린 시절에 읽었던 책, 또는 10년 전에 읽었던 책, 또는 지금까지 읽었던 책 베스트 10 같은 것을 한번 적어봐요. 그리고 그것들을 다시 한번 들춰보죠. 그러면 '내 기억이 상당히 왜곡돼 있었구나'하고 전혀 색다른 의미에서 다시 재미를 느끼게 돼요. 그게 독서에 대해서 잃어버렸던 즐거움, 흥분, 이런 것을 되살려줍니다. 


최고의 소설이란

다 읽었는데 밑줄을 친 데가 하나도 없고, 그럼에도 사랑하게 되는 소설. 읽으면서 한 번도 멈춰 서지 않았다는 거잖아요? 걸린 데가 없었다는 거죠. 그런데도 왠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아름다운 것을 보았다는 느낌을 받는 거에요. 남에게 요약하거나 발췌하여 전달할 수 없다고 느낄 때, 그런 소설이 최고의 소설이라고 생각해요.


시장에 가서 잘 익은 사과를 골라 바구니에 담으면서도 막상 집에 와서 장바구니를 풀었을 때 그 사과가 여전히 그저 '잘 익은 사과'에 불과하면 실망을 합니다. 그것은 사과 이상(혹은 그 이하)의 전혀 예기치 못한 그 무엇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무엇'을 소비자는 미리 알 수가 없습니다. 미리 안다면 그것은 아무 의미가 없겠지요. '내가 뭘 원하는지 잘 모르겠지만 내가 잘 모르는 바로 그것을 내놓으라'는 게 문학 독자의 욕망인 것처럼 보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비록 작가와 독자가 책이라는 상품을 매개로 시장에서 함께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다른 상품의 생산자, 소비자와는 관계의 양상이 다를 수밖에 없겠습니다. 


3. 내 영화의 주인공 -하성란


"우리 엄마 말에 의하면 징글징글한 게 산다는 거래. 우리를 벌 세우고 지긋지긋한 반성문을 쓰게 하구, 쥐어박구. 넌 도대체 할 줄 아는 게 뭐냐고 몰아세우구, 그런 걸 귀신이 하니, 다 살아 있는 사람들의 짓이라구. 서울로 돌아가면 남아 있는 건 정말 공포 중의 공포라구."

"그렇지. 그래. 모든 일이 단 하루 동안이야. 마치 한 달쯤 전 같은데 말야.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지금은 잠이나 자두자구."

"현실이 공포든 아니든 으스스하다. 감자를 캐던 여자가 쓱 뒤돌아보면서 감자 좀 드릴까요?"

"야, 표송미, 정말 너라는 애는. 넌 정말......"

"알았어, 알았다구. 이젠 정말 입을 다문다. 내가 생각해도 난 너무해."


'죽음은 삶보다 더 보편적인 것이다. 즉 모든 사람은 죽지만 누구나 사는 것은 아니다.' '죽음은 위대한 평등주의자다.' '왜 죽음을 두려워하는가? 그것은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모험이다.' 등등, 하지만 하나같이 모두 애먼 곳을 긁고 있었다. 이제 열아홉의 나이에 활짝 피어보지도 못한 여자아이에게 해줄 말은 하나도 없었다. 철저히 입을 다물어야 한다. 상숙이가 종알거리고 있었다.

"나 하나 사라진다고 해서 너희 인생에 뭐가 바뀔까. 대학에 가고 결혼을 하고 십여 년쯤 시간이 흐르고 이렇게 맛있는 음식을 앞에 둔 채 심심풀이처럼 이야기하겠지. 상숙이라는 애 기억 나니? 그럼, 김상숙이었던가? 아냐, 이상숙인가? 벌써 죽은 지 몇 년이야. 그런데 니 아들은 잘 크니? 넌 요즘 살 빠진 것 같다. 다이어트 했니? 종알종알...... 그만 돌아가. 난 나 혼자 정리할 게 있어."

"그럼 왜 우릴 끌어들였니?"

침묵으로 일관하며 부침개를 뒤적이던 재희가 고개를 들었다.

"왜 우릴 끌여들였냐구, 칫. 잘난 김상숙도 겁이 난 거겠지. 그래놓고 이젠 필요없으니깐 돌아가라? 네 맘대로는 안 될 거다. 우린...... 학교에서 뛰쳐나왔을 때 셋이었듯이 돌아갈 때도 셋이어야 해. 네가 안 간다면 우리도 안 가. 나올 땐 네가 우릴 끼워주었지만 돌아갈 땐 우리가 널 끼워줄까 해. 너의 그 잘난 병명, 내가 중얼거리는 주문하고 너무 비슷한 그 병.... 그게 어떤 병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야."



4. 식사의 즐거움 -하성란


5. 베어타운 -프레드릭 베크만


6. 2017 제 8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자기 잘못을 인정할 줄 알고 도리를 지킨다는 인상을 상대방에게 심어주려는 목적에서였다. 그게 더 근사한 일이라고. 내가 더 멋있다. 무슨 잘못을 진짜 하긴 했는지, 그걸로 미안한 감정을 가졌는지의 여부는 아무 상관 없단다. 핵심은 그런 말을 할 줄 아느냐, 모르느냐뿐이거든.


사람을 때린 건 잘못이지만 그 여자 입장에서도 억울할 수 있다는 거예요. 정확히 그걸 뭐라 표현하면 좋을지 모르겠는데 어딘가 나를 설득하고 싶어했어요. 언제든 우리도 그 여자가 될 수 있다고, 사정이 생겨서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할 때가 있을 것이고, 그걸 보고 누가 웃는다면 기분이 나쁠 것이다, 그게 뺨을 때려도 된다는 건 아니고 너나 나나 때릴 사람은 아니겠지만 기분은 나쁠 거야. 그런 소리를 하는 거예요.


뭐.

뭐?

그래, 뭐.

그래서, 뭐.

뭐, 씨발.

나보고 뭐 어쩌라고.

"죄송합니다. 선생님을 사랑하는 건 아무래도 잘못이니까."

고개를 숙이는 연주가 무서웠단다. 존나 무서웠어. 무릎을 꿇으니까 더 무서웠다. 그 완벽한 사과의 자세가 무엇을 뜻하는 거겠니. 그게 더 우월해지는 거라고 누가 가르쳤는데. 연주를 따로 불러서 미안하다, 아무것도 미안하지 않은데 미안하다고 말하면서 그게 더 멋스러운 거라고 바로 내가 가르쳤는데 그걸 연주가 진짜 잘하고 있더구나. 누가 봐도 훌륭했으므로 나는 무서웠단다. 아무리 봐도 진짜 사랑하는 것 같잖아. 그런 건 내가 어떻게 용서할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 사랑한다는데, 무엇보다 연주의 부른 배가 무서웠다. 그걸 남들도 다 주목하고 있어서 사랑했잖아요, 사랑. 섹스 아니라 사랑. 머쓱하게 다시 강조해야 했을까. 



7. 생의 한가운데 -루이제 린저


또는 자네 마누라가 유대인인가?

그는 고개를 흔들었다. 정치적인 얘기가 아니야, 라고 그는 피곤한 듯이 말했다. 아주 바보 같은 연애 이야기야, 기막힌.

그 찰나에 나는 그것이 니나에 관한 것임을 알았다. 이 테마에 관한 대화에 대해 몹시도 강한 반감이 마음속에 치밀어올랐던 까닭에 나는 내 생각보다 싸쌀하게 말했다. 우리는 사실 고백의 연령은 지났다고 생각하네.

그러나 그는 이 사건과 또 보고하려는 욕망에 그처럼 사로잡혀 있던 까닭에 내 거부도 듣지 못했을 정도였다. 그는 나에게 곤혹에 넘친 시선을 던지고는 우울하게 중얼거렸다. 자네는 이 모든 것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네. 이런 일은 자네한테는 중요하지 않으니까. 그런 자네가 부럽네. 다음 순간 그는 책상을 치고는 큰 소리로 말했다. 그렇지만, 그건 중요한 거야. 너는 그런 걸 이해해야 했어. 사람이 갑자기 자기 생을 잘못 보내서 망쳐버렸다는 것을 아는 건 비참한 일이야.


니나는 너무 말을 많이 했다. 나는 더 얘기하지 못하게 명했다.

아, 라고 니나는 경멸하듯이 말했다. 그건 이제는 문제가 아니지 않아요. 나는 죽고 싶은 거예요. 사는 것보다, 여기에 사는 것보다 훨씬 아름다운 것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요. 공부하고 먹고 자고 직업을 갖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그게 뭐예요? 그것만으로는 부족해요. 사람은 그것이 습관이 되어버리고 마치 그것에 의미가 있는 것처럼 스스로 타이르는 거예요. 아마 그것밖에 모르고 필요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의의가 있을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내가 어떻게 그걸로 만족할 수 있단 말이에요? 멋진 순간이 우리 생애 있다는 것을 나는 책에서 읽어서 알고 있어요. 사랑을 하거나 아이를 낳거나 어떤 진리를 발견한 순간이 그렇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그런 건 다 지속되지 않아요. 우리는 다만 조금만 맛보기로 구경만하고는 다시 뺏기고 맙니다. 그건 절대로 나에게는 충분하지 않아요. 그래서 나는 죽고 싶어요. 아시겠어요? 그러니까 선생님은 나에게 말해도 괜찮아요.


거기까지 읽었을 때 니나는 짧은 웃음소리를 냈다. 그러고는 심각하게 말했다. 

나는 전에는 거짓말을 한 남자를 증오했었어. 거짓말은 나에게는 비겁으로 보였었어. 그리고 비겁을 나는 싫어하니까. 나에게서도 다른 사람에게서도. 그런데 지금은 나는 우리가 마치 밤이 필요한 것처럼 비밀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 전에는 생이 투명하고 공개적이고 슈타인의 말처럼 언제나 감독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우리는 밝은 대낮의 햇빛 속을 똑바로 곧은 길을 걸어갈 수 있고,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바라는 것을 모두 사람들을 향해서 큰 소리로 말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 자, 인제는 알았지? 나는 이러니까 그것을 받아들이든지 말든지는 맘대로 할 것이고 나는 이대로 있고 바꾸지는 않겠다, 라고ㅡ그러나 이런 궤도가 하나밖에 없는 생을 가지고는 발전해나갈 수가 없는 거야. 나는 이제는 우리가 거짓말을 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 어린애들도 종종 그것이 필요하고 우리는 그것을 허락해주어야 해. 그것은 애들이 누구나 호기심을 가지고 건드리고 파괴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 그들의 생 위에 펼친 베일이야.


물론 그래, 라고 니나는 대답했다. 우수는 다만 인식의 시초일 뿐이야.

갑자기 니나는 웃었다. 내가 무슨 현명한 말을 하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군! 물론 나는 기쁘게 살고 있어.

가짜 우수도 이 세상에는 있어, 라고 니나는 계속해서 말했다. 사람들의 눈만 보아도 그걸 알 수가 있어. 많은 사람들에 있어서는 우수는 다만 표면에만 떠 있고 꾸민 의도와 감상주의를 나타낼 뿐이야. 정말로 우울한 눈의 위층은 활기와 주의력 또는 바쁜 빛을 띠고 있어. 그러나 그것은 다만 포장에 불과해. 그 뒤에는 무대가 있는데 그것은 보통 때는 보이지 않지만 때때로 포장이 들춰지면 그 뒤의 어둠 속에 아무 희망도 분격도 없이 한 남자가 앓고 있고 누가 그에게 가서 그를 더 정다운 세계로 데려가려 하면 그것을 의심하는 것을 볼 수 있을 거야. 그는 더 정다운 세계가 있다는 것을 믿지 않아. 그는 이미 그의 우울에 의해서 마비되어 있는 것이야. 그는 우리를 보고 웃고 마치 우리의 말을 믿는 것처럼 하지만 우리와 같이 가기 위해서 일어서지는 않아.


나에게는 소재가 중요하지 않아.

너에게는 중요하지 않을지 모르지만 독자에게는 중요해. 나는 말했다.

독자들! 이라고 니나가 내던지듯이 말했다. 독자는 오락을 요구하고 있어. 작가는 따라가기 쉬운 안이한 이야기를 그들에게 제공해야 하는 거야. 처음에는 이것이 일어나고 다음에는 저것, 그리고는 그것. 그렇게 해서 맨 끝에는 행복하건 불행하건 관계없이 하여간 둥근 결말이 있어야 해.

마치 극장에서처럼 모든 것이 질서정연하게 진행되어가야 돼. 그러면서도 사람들은 자기가 리얼리스트라고 생각하고 있어. 인생에서는 어떤 계산도 들어맞는 법이 없고, 아무런 결말을 갖고 있지 않는데도. 결혼도 아니고 죽음도 다만 외관상 결말에 불과해.

생은 계속해서 흘러가는 거야. 모든 것은 그렇게도 혼란하고 무질서하고 아무 논리도 없고 모든 게 즉흥적으로 생성되고 있어. 그런데 사람은 거기서 작은 조각을 끌어내서 현실에는 있을 수 없고 모든 생의 복잡성에 비하면 우스울 정도인 조그마한 알뜰스러운 설계도에 따라서 건축하고 있어. 모두가 다 꾸며진 사진에 불가해. 내 소설도 마찬가지야.



8. 상냥한 폭력의 시대 -정이현


9. 푸른 수염의 첫번째 아내 -하성란



10. 햄릿


피가 끓으면 마음은 함부로 혀가 맹서를 하게 두는 법, 

얘야, 타는 불은 환히 빛을 내지만 열은 없어.

약속이라는 것도 다짐하는 동안 빛도 열도 꺼지기 쉬우니

그런 걸 약속이라고 생각하면 안된다.


개인도 마찬가지라네.

태어날 때부터 결점이 있다고 하면 그건 그 사람의 잘못은 아니지

태어날 때 마음대로 천성을 선택할 수는 없으니까.

또는 어떤 한 가지 기질이 지나쳐 

이성의 울타리와 성벽을 무너뜨리기 때문에

도를 넘어 예의를 해칠 때는

그것이 자연의 선물이건 운명의 장난이건

그 외의 장점이 제아무리 순수하고 무한할지라도

바로 그 결점 때문에 비난받을 수 밖에 없네

티끌만 한 악 때문에 모든 고상한 미덕이

비난을 받는다는 말일세.


왕-그대가 부친을 사랑하지 않았다고는 생각지 않네.

그러나 사랑에도 때가 있어, 내 경험으로는

그 시간이라는 것이 사랑의 불꽃과 불길을 좌우하네.

사랑의 불이 타는 중에도 심지 찌꺼기 같은 것이

불길을 약하게 하지.

그 어느 것도 좋은 상태로 지속될 수는 없는 법.

좋은 일도 지나치면 그 과도함 때문에 죽기 쉽거든.

그러니 우리가 하고 싶은 일은 생각이 들 때 해치워야 해.

세상에는 방해되는 일도, 손도, 사건도 많으니

해야겠다는 생각은 사그라지고 약해지고 지체되어

결국 이 해야 한다는 생각도 부질 없는 탄식처럼

일시 위안은 되겠지만 몸을 상하게 한다.


햄릿-그럴 필요 없네. 나는 예감이라는 걸 믿지 않으니까.

참새 한 마리가 떨어지는 데에도 신의 특별한 섭리이니,

죽음이란 지금 오면 앞으론 오지 않을 테고

지금 오지 않는 대도 언젠가는 올 것이야.

각오할 뿐이네.

이 세상에 죽을 때를 아는 이는 아무도 없는데

일찍 죽는 것이 대수인가?

순리를 따르세.



11. 그 해 여름 <중도 포기...>


오늘, 통증, 감정의 부추김, 새로운 사람에 대한 흥분감, 손끝 너머에 있을 게 분명한 커다란 행복, 속마음을 잘못 읽을 수도 있고 읽고 싶지 않으며 항상 예측이 필요한 사람들 주위에서 보이는 내 서투른 행동, 내가 원하고 또 간절히 나를 원하기 바라는 사람들에게 쓰는 절박한 간계, 세상과 나 사이에 자리하는 듯한 라이스페이퍼처럼 얇은 미닫이문 같은 몇 겹의 장막, 애초에 암호화되지도 않은 것을 변환하고 또 해독하려는 충동...... 이 모든 것이 올리버가 우리 집에 온 그 여름에 시작되었다.


한번은 테이블에서 노트를 옮기다가 실수로 유리컵을 넘어뜨렸다. 컵은 잔디밭으로 떨어졌지만 깨지지는 않았다. 가까이 있던 올리버가 일어나 컵을 주워 제자리에 놓았다. 그것도 노트 바로 옆에 놓아 주었다.

무슨 말로 고마움을 표시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안 그래도 되는데." 마침내 내가 입을 열었다.

그는 자신의 대답이 가볍거나 태평한 말이 아닐 수도 있음을 내가 알아채도록 충분한 시간을 주었다. "그러고 싶었어."

그가 그러고 싶었다, 라고 나는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몰랐다. 욕망의 시험은 자신이 뭔가를 원한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손에 넣으려는 술수에 불과하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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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월에 2018년 책 기록을 쓰다니 너무 게으른 거 아니냐! 라고 하지 마세요

저는 이제 제 게으름을 탓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1. 폭풍의 언덕


"당신은 악마에 홀리기라도 했나? 하필이면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이때 그런 말을 하다니! 당신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내 가슴에 새겨져 언제까지나 내 마음을 깊이 파고들 거야. 당신을 잃으면 더욱 그럴 거야. 내가 당신을 죽게 하다니, 말도 안돼. 그것이 거짓말이라는 것은 당신이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을 거야. 안 그래, 캐더린? 캐더린, 내가 목숨처럼 당신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을 거야. 당신은 대체 언제까지 멋대로 생각할 거야? 당신이 무덤 속에 고이 잠들어 있는 동안에도 나는 이 세상에 살아남아 지옥의 고통을 겪어야 해. 그래도 당신은 만족하지 못하겠어?"

"나는 무덤 속에서도 잠들 수 없어."

하고 캐더린은 신음하는 듯이 대답했어요.


왜냐하면 무엇인들 내게 그녀를 연상시키지 않는 것이 있겠어? 이 바닥을 내려다보기만 해도 그녀의 얼굴이 돌 위로 어른거리는 판인데. 구름마다, 나무마다 또 밤에는 밤하늘 가득히, 낮이면 모든 물체에 어른거리는 그녀의 영상에 둘러싸여 살고 있단 말이야. 가장 평범하게 생긴 사람의 얼굴도, 나 자신의 얼굴조차도 그녀와 닮아 보이니 이 노릇을 어쩌겠어. 온 세상이, 그녀가 존재했었다는 사실뿐만 아니라 내가 그녀를 잃고 말았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무시무시한 비망록 같다구!



2.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



3. 이방인


책갈피를 남겨뒀는데 날려버렸다. 처음엔 짜증이 나더니 이제는 그냥 그런대로 받아들였다.



4. 연애의 행방



5. 내게 무해한 사람



6.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


"반짝이는 것들은 늘 옳아...... 정말이야."

혼자 감회에 젖어 수정은 창가에서 빛나는 전구들을 바라보았다.

"이런 풍경 보면 생각나는 친구가 있어. 여고 때 순영이란 친구와 혜천호에 놀러 갔었는데 가을이었나, 그때가? 호수 수면에 햇살이 반짝반짝 비늘같이 빛나는 거야. 그 친구가 저렇게 무수히 반짝거리는 모습을 엘도라도라고 하는 거지?하고 물었어."



7. 모순


"아버지는, 우리 아버지는 나한테 생각하는 법을 가르쳐주었어. 살아가는 동안 수없이 우리들 머릿속을 오고 가는 생각, 그것을 제외하고 나면 무엇으로 살았다는 증거를 삼을 수 있을까. 우리들 삶 속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생각하고 또 생각하라는 것이 아버지가 가르쳐준 중요한 진리였어. 아버지가 잘못한 게 있다면 너무 많이 생각했다는 것이지. 자기 용량을 초과해버린 거야. 그러면 곤란하다는 것도 우리 아버지가 내게 남긴 교훈이고. 아버지는 다른 아버지들이 한평생 살고도 못 가르쳐주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주었어. 그것으로 이미 우리 아버지는 자식한테 해줘야 할 의무를 다했다고 봐."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혼이라는 명제 앞에서, 사랑이라는 난해한 감정 앞에서 거듭 혼돈을 되풀이하고 있었으니 괴로웠던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다가 나는 마침내 중요한 단서 하나를 찾아내었다. 김장우와 나영규에게로 향하는 화살표의 모양이 어떻게 다른지 변별해낼 수 있는 하나의 단서. 무엇이 사랑이고 무엇이 유사 사랑인지 알 수 있는 하나의 단서. 

미리 말하지만 이것은 나에게만 해당하는 특별사유일지도 모른다. 누구에게나 다 통용되는 앞서의 세 가지 사랑 메모와는 다를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이것으로 사랑을 가려냈다.

사랑은 그 혹은 그녀에게 보다 나은 '나'를 보여주고 싶다는 욕망의 발현으로 시작된다. '있는 그대로의 나'보다 '이랬으면 좋았을 나'로 스스로를 향상시키는 노력과 함께 사랑은 시작된다. 솔직함보다 더 사랑에 위험한 극약은 없다. 죽는 날까지 사랑이 지속된다면 죽는 날까지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절대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여주지 못하며 살게 될 것이다. 사랑은 나를 미화시키고 나를 왜곡시킨다. 사랑은 거짓말의 유혹을 극대화시키려는 감정이다.


단조로운 삶은 역시 단조로운 행복만을 약속한다. 지난 늦여름 내가 만난 주리가 바로 이 진리의 표본이었다. 인생의 부피를 늘려주는 것은 행복이 아니고 오히려 우리가 그토록 피하려 애쓰는 불행이라는 중요한 교훈을 내게 가르쳐준 주리였다. 인간을 보고 배운다는 것은 언제라도 흥미가 있는 일이었다. 인간만큼 다양한 변주를 허락하는 주제가 또 어디 있으랴.



8. 고양이로소이다 <읽다 말았지만 부분적으로 읽은 것도 읽은 것이다 라고 배웠기에>


고양이는 거기에 비하면 단순하기 이를 데 없다. 먹고 싶으면 먹고, 자고 싶으면 자고, 화날 때는 열심히 화내고, 울 때는 아주 처절하게 운다. 무엇보다 일기 같은 무용지물은 절대로 쓰지 않는다. 쓸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주인처럼 표리부동한 인간은 일기라도 써서 세상에 드러내지 못하는 자신의 이면을 암실 속에서 발휘할 필요가 있을지 모르지만, 우리 고양이 족속은 앉거나 걷거나 눕거나 뒷간에서 볼일 보거나 하는 등 일상생활의 자질구레한 동작이 모두 다 참다운 일기이므로 따로 그런 귀찮은 수고를 하면서까지 자신의 참모습을 보전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일기 쓸 틈이 있으면 툇마루에 나가서 낮잠이나 자면 될 일이다.


천지만물은 신이 만들었다고 하는데, 그러고 보면 인간도 신께서 손수 제작한 것이리라. 실제로 성서인가 하는 물건에는 그렇게 명시되어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인간에 대해서 인간 자신이 수천 년의 관찰을 통해 대단히 현묘하고 불가사의하게 여김과 동시에 더욱더 신의 전지전능을 승인하도록 만들어진 사실이 있다. 그건 다름 아니라, 이렇게 인간이 우글거리지만 똑같은 얼굴을 하고 있는 사람은 온 세상에 단 한 사람도 없다는 것이다. 얼굴의 도구는 물론 딱 정해져 있다. 크기도 대개는 비슷비슷하다. 바꿔 말하자면 그들은 모두 같은 재료로로 만들어져 있다. 같은 재료로 만들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느 한 사람도 똑같은 결과로 나타나 있지는 않다. 정말 용케도 그 정도의 간단한 재료로 이렇게까지 각양각색의 얼굴을 구상해냈다고 생각하면, 제조가의 기량에 감복하지 않을 수가 없다. 웬만큼 독창적인 상상력이 없이는 이런 변화를 낼 수 없는 것이다. <중략> 인간이 이 점에 있어서 신에게 크게 황송해하고 있는 것 같다. 과연 인간의 관점에서 말하면 황송해하는 게 당연하다.

그러나 고양이 입장에서 말하면 동일한 사실이 오히려 신의 무능력을 증명하고 있다고도 해석할 수가 있다. 설사 전혀 무능하지는 않을지라도 인간 이상의 능력은 결코 없는 것이라고 단정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신이 인간의 수만큼 그처럼 많은 얼굴을 제조했다고 하지만 당초부터 마음속에 승산이 있어서 그만큼의 변화를 나타낸 것인지, 또는 고양이건 국자건 똑같은 얼굴로 만들려고 시도해봤지만 도저히 잘 되지 않아서 만드는 것마다 실패하는 바람에 이 난잡한 상태에 빠진 것인지 알 수 없지 않은가?

그들의 안면 구조는 신의 성공적인 기념으로 볼 수 있음과 동시에 실패의 흔적이라고도 판단할 수 있지 않을까? 전능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무능하다는 평을 해도 잘못은 없다.

그들 인간의 눈은 평면상으로 두 개가 나란히 있어서 좌우를 일시에 볼 수가 없으므로 사물의 반쪽밖에 시선 안에 들어오지 않는 것은 가엾은 노릇이다. 입장을 바꿔보면 이 정도로 단순한 사실은 그들 사회에서 주야로 끊임없이 일어나는 것이지만, 당사자들은 우쭐하여 신에게 홀려 있으니 깨달을 턱이 없다.

<중략>

인간이 사용하는 국어는 온전히 모방주의로부터 전해져 쓰이게 되는 것이다. 그들 인간이 어머니로부터, 유모로부터, 타인으로부터 실용상의 언어를 배울 때에는 단지 들은 대로 반복하는 것 외에는 털끝만큼도 야심이 없는 것이다. 할 수 있는 한도 내의 능력으로 남의 흉내를 내는 것이다. 이처럼 남의 흉내로부터 성립되는 국어가 10년, 20년 지나는 동안에 발음에 자연히 변화가 생기게 되는 것은 그들에게 완전한 모방의 능력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순수한 모방은 이와 같이 지극히 어려운 것이다. 따라서 신이 그들 인간을 구별할 수 없도록 모두 소인 찍힌 오카메처럼 만들 수 있었더라면 더욱더 신의 능력을 표명할 수 있는 것으로, 동시에 오늘날과 같이 제멋대로 된 얼굴을 백일하에 드러내어 눈이 핑 돌 정도로 변화를 일으킨 것은 오히려 그 무능력을 짐작할 수 있는 수단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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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여름은 더워도 너무 더웠다. 한 번 올라간 기온은 다시 내려오지 않는다는 내용을 트위터에서 봤다. 내년에도 비슷한 말과 비슷한 심정을 갖게 되려나.





1. 하노버에서 온 음악편지


도대체 왜 지금 이 짓거리를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L을 강압과 회유 끝에 피아노 앞에 앉혔다. 한 시간여에 달하는 프로그램. 그가 마지막 음을 끝내고 비명을 지르는 순간 K와 나도 한숨을 내쉬었다... 1분쯤 지났을까, 나와 K 가 참지 못하고 먼저 뱉은 말, "아, 정말 너무 좋다... 좀만 더 쳐주면 안 돼?"

잘 세팅된 홀도, 잘 조율된 피아노도, 맘먹고 무대에 오른 완벽한 연주도 아니었지만 우리 모두는 그날 느꼈다. 베토벤은 어떻게 곡을 이렇게 썼더란 말인가, 쇼팽은 어점 이런 하모니를 썼더란 말인가, 이러니 음악은 얼마나 좋은가, 음악을 함은 얼마나 감사한 일이던가.

결국 우리 셋은 돌아가며 장장 새벽 2시까지 이 곡 저 곡을 치고 나서야 강당을 나섰다. 누군가 나에게 음악을 왜 하느냐고 묻는다면 글쎄, 사실은 감히 답하고 싶지 않다. 그 대답은 내 음악과 내 인생이 대신 해주었으면.


그날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의 그 느낌, 나를 둘러싼 세상이 모두 한없이 차가운 그 느낌. 아직도 이따금씩 떠오르는데, 주로 무대 위에서다. 이 순간, 그저 공기 중으로 증발해 버렸으면 하는 그 기분. 아무리 내가 무대를 좋아하고 연주하는 순간을 제일 행복해 하더라도 꼭 한 번씩은 찾아오는 기분이다. 

우리 피아니스트들은 특히 '혼자됨'을 잘 안다. 현악기나 관악기 주자는 하물며 '반주자'라도 대동하는데, 우리는 줄곧 혼자다. 연습할 때도, 연주할 때도, 또 그 사이사이에도. 곰곰이 생각해보면 꽤나 아찔한 느낌이다. 많게는 2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나만 바라보고 있는데, 나는 완벽하게 혼자라는 사실. 

가족도, 친구도, 전화기도, 악보도, 아무것도 내 곁에 없는데, 나는 무조건 멈추지 말고 계속해야 된다는 그 사실. 그 사실이 더 잔인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그게 '산다는 것'과 너무도 똑같아서다. 인생이라는 무대에 던져진 인간은 누구나 혼자다. 그러니 어쩔 수 없겠지. 예전에 내가 좋아하던 한 애니메이션의 극장판 에피소드 제목이 그랬다. "YOU ARE (NOT) ALONE."






2.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


과거의 무력한 나를 떠올리는 경험을 할 때마다 감정을 추스르기 힘들다. 얼마 전엔 엄마에게 집을 살 거라고 했다가 "서울은 집이 너무 비싸서 어차피 넌 노력해도 못 사"라는 말을 들었다. 내가 대학에 가고 싶다고 했을 때도, 서울로 가고 싶다고 했을 때도 부모님은 같은 놀리로 내게 말했었다. 그들은 경험한 적이 없는 것이다. 원하는 것을 성취한 경험 말이다. 그 때문에 인생에서 원하는 것이 있다면 노력해서 가지라고 말하는 대신, 상처받지 않기 위해 '포기하라'고 말하는 것이다. 

상처받은 사람들, 사랑받지 못한 사람들은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지만 저마다의 사연을 가지고 상처를 다독이며 산다. 얼핏 다 나은 것 같아 보여도 통증은 불현듯 찾아온다. 그런 의미에서 어쩌면 우리가 만나는 많은 이들은 마음의 지옥을 견뎌내는 생존자들인 것이다. 이들은 이전으로 돌아가기를 두려워하지만, 지금 여기서도 영원한 이방인으로 떠돌아다닌다. 


분노하고 불만을 이야기하면서 우리가 살고 싶은 세상에 대해 이야기하기를 멈추지 말자. 어릴 때 배웠던 것만큼 아름답지만은 않은 세상이지만 '그래도 혹시'의 마음만은 잃어버리지 않도록. 최선이 없다면 차선을, 차선이 없다면 차악이라도 선택해야 한다는 절실함만이 최악을 막아준다. 


나에게는 좋지 않은 순간에도 적극적으로 웃음 포인트를 찾아내는 특기가 있다. 살다 보면, 웃긴데 슬프다는 뜻의 '웃프다'라는 표현이 딱 들어맞는 경우가 참 많다. 그런 상황을 두고 농담을 하다 보면 주어진 상황이 조금은 덜 심각하게 느껴진다. 이는 그만큼 거리를 두게 됐다는 것이기 때문에 마음 상태가 나아졌음을 파악하는 척도가 되기도 한다.


준비가 되지 않았음에도 거절하면 상대가 실망할까 봐 섹스에 응했다는 여성들을 아직도 주변에서 많이 만난다. 하지만 자신의 몸조차 자신의 판단으로 결정할 수 없다면 도대체 무엇을 자기 힘으로 결정할 수 있을까? 


정확하 뜻을 검색했더니 '사용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가구나 가전제품 따위에 생기게 되는 흠집'이라고 쓰여 있다. 쓰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생기는 흠집이라니! 나는 이 담대한 표현이 좋아졌다. 이에 비해 '흠'은 '어떤 물건의 이지러지거나 깨어지거나 상한 자국, 어떤 사물의 모자라거나 잘못된 부분, 사람의 성격이나 언행에 나타나는 부족한 점'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흠이든 생활 기스든 생채기가 난 건 똑같지만 그걸 어떤 시각으로 보느냐의 차이라고 나는 이해했다. 사람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상처받지 않는 무균실의 환경이란 건 있을 수 없으니, 누구에게나 흠이 나 있을 것이다. 잘 해보려고 했지만 어쩔 수 없이 상처를 주고 받게 되는 일이 부지기수다. 보석함에 고이 모셔두지 않은 이상 매일 끼고 있는 반지라면 생활 기스를 피할 수 없듯, 살아가는 일에서 상처를 피할 순 없다. 더욱이 열심히 살아온 사람일수록 더 많은 상처가 있는 법이다. 실패에서 오는 괴로움을 그렇게 이해하면 스스로를 좀 더 편안하게 볼 수 있지 않을까. 그건 그냥, 거대한 흠이 아니라 자잘한 생활 기스들인 거다.


기존의 질문 '그 사람은 그것만 빼면 괜찮은가?'와 '그렇다면 내가 어떻게 고칠 수 있을까?'는 틀렸다. '그의 단점이 객관적으로 문제가 되는 수준임이 분명한가?'와 '단점이 개선되지 않는다해도 그것을 내가 감당할 수 있는가?'로 옮겨가야 한다. 인간은 잘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을 전제로 한 후, 그가 바뀌지 않더라도 내가 그를 감당할 수 있는지 물어야 한다. 판단이 잘 서지 않는다면 일단은 적당한 거리를 둔 후 생각해도 늦지 않다.


20대는 오디션에 나온 지원자처럼 끊임없이 자신을 증명해 보여야 하는 시기다. 심사위원 같은 주변인들은 지금은 믿을 수 없으니 무언가를 더 보이라고 보챌 것이다. 이때 남들이 하는 말들을 다 그대로 믿어서는 안 된다. 누구든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에 대해선 잘 모른다. 


지금의 내게 맞지 않는 걸 예전에는 맞았던 사이즈라고 욱여넣고 있으면 필연적으로 자신을 미워하게 되고야 만다.


20대 후반에 겪은 교통사고는 나의 몸 상태를 완전히 바꿔놓았다. 사고 후유증으로 뛰지 못하며, 체력이 떨어져 밤을 새우는 것이 불가능해졌다. 전과 달리 12시가 되면 꾸벅꾸벅 졸기 시작한다. 체력이 떨어지니 불편한 사람을 만나면 에너지가 급속도로 방전되는 것이 느껴진다. 시간관념도 달라졌다. 무한하게 느껴지던 시간은 내가 건강할 수 있는 시간으로 가늠되고, 그중에서도 만약 아이가 생긴다면 내 것이 아닐 시간으로도 환산해 체감하게 됐다.

그렇게 계산을 해보니, 나에게 유효한 시간을 얼마 없었다. 철저하게 내게 중요한 것들의 우선순위를 세우고 실행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위기감이 들었다. 그 기준으로 세상을 보니, 예전 같았으면 그냥 참았을 만한 일 중에서도 그냥 내가 피할 수 있는 것은 적극적으로 피하게 된다. 엉뚱한 곳에 에너지를 쓰면 정작 내가 필요한 곳에 쓸 수 없으니까.


어떤 소설은 재미가 없어 던져두었다가 몇 년 후에 다시 보니 충격적으로 좋기도 하고 어떤 소설은 한때 참 좋아했는데 다시 보니 시시하다고 느껴지기도 한다. 예술도 사람도 마찬가지다. 상대가 바뀐 것이 아니라 내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그러니 무언가를 어떤 시기에 잠깐 거쳐 간 뒤 거기에 대해 다 안다고 말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3. 읽다-김영하


영화는 상영 도중에 일어나서 나가려면 눈치가 보이지만 책은 혼자 읽는 것이어서 잠깐 책장을 덮는다고 아무 문제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책을 읽는 매 순간, 우리는 결정을 내리고 있는 것입니다. 조금 더 읽겠다고.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그렇게 해서 한 권의 책을 끝내게 됩니다. 완독이라는 것은 실은 대단한 일입니다. 그만 읽고 싶다는 유혹을 수없이 이겨내야만 하니까요. 


비극은 대부분 우리보다 나은 사람이 내재된 성격적 결함으로 파멸하는 얘기입니다. 반대로 희극은 우리보다 못한 이가 우스꽝스런 행동을 하는 것을 편안한 마음으로 보는 것입니다. 그러니 시나리오를 쓰려고 한다면 적어도 자기가 쓰는 것이 비극인지 희극인지를 결정해야 하고 그에 따라 걸맞은 덕성 혹은 모자람을 인물에게 부여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또한 "비극에서 우리를 가장 매혹하는 것은 급전과 발견"이라고 말합니다. 그는 이어 극작의 초심자들이 "사건의 결합보다 조사와 성격묘사에서 성공을 거둔다."고 말하는데, 이는 플롯을 성격보다 더 높이 평가하는 그의 이론과 일치합니다. 그는 극에서 중요한 것은 인물의 성격보다 '사건의 결합', 즉, 플롯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이 플롯에서 중요한 것은 스토리를 완전히 달리 보게 만드는 반전, 그리고 그 반전을 통해 주인공이 획득하게 되는 새로운 인식이라고 보았습니다.

<오이디푸스 왕>의 반전은 범인이 왕 자신이라는 것이 밝혀지는 부분입니다. 이 부분에서 왕은 세상에서 제일 똑똑하고 잘났다고 생각해왔던, 죄는 오직 다른 사람이 지을 뿐 자신은 그럴 리가 절대 없다고 믿었던 중대한 착각과 오만을 '발견'합니다. 그때까지 오이디푸스에 감정이입했던 관객들은 자연스럽게 그의 발견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입니다. 우리는 자기 자신과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어떤 사건이 발생하면 우리는 알게 되는 것입니다. 주변은커녕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모르는 존재가 바로 자신이라는 것을요. 이런 발견의 순간에 리어 왕은 통탄합니다. "내가 누구라고 말할 수 있는 자 누구냐?" 막내딸의 진심은 헤아리지 못한 채 다른 딸들의 입에 발린 아양에 넘어간 자신의 어리석음 때문에 파멸한 그는 이제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모르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콜래트럴>의 빈센트도 인생의 마지막날에 이르러서야 자기가 냉혈의 킬러만은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이런 '발견'의 장면이 비극에서 필수적이라는 것을 아리스토텔레스는 2000년도 더 전에 알고 있었고, 그에게 이런 깨달음을 준 것은 바로 당대의 탁월한 비극 작가들. 소포클레스나 아이스킬로스 같은 이들이었을 겁니다.


소설을 읽음으로써 우리가 얻은 것은 고유한 헤맴, 유일무이한 감정적 경험입니다. 이것은 교환이 불가능하고, 그렇기 때문에 가치가 있습니다. 한 편의 소설을 읽으면 하나의 얇은 세계가 우리 내면에 겹쳐집니다. 저는 인간의 내면이란 크레페케이크 같은 것이라 생각합니다. 일상이라는 무미건조한 세계 위에 독서와 같은 정신적 경험들이 차곡차곡 겹을 이루며 쌓이면서 개개인마다 고유한 내면을 만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4. 온전히 나답게


'생활'의 중요성을 자각하게 된 건 20대 중반을 지나면서부터였다. 건강하게 살지 않으면 건강한 사고도, 건강하지 않은 사고도 할 수 없었다. 토대를 탄탄하게 쌓아놓지 않으면 나의 비관에 나 자신이 무너져버릴 수도 있었다. 그때부터 나는 알 수 없는 무언가를 찾아 끝없이 헤매는 것이 아니라 여기와 저기 사이를 왕복하는 산책을 하게 되었고, 운동을 하게 되었고, 요리를 하게 되었고, 마음에 드는 이불보를 찾아다니게 되었다. 생활의 토대를 단단히 구축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제야 마음속 깊이 안심이 되었다. 그제야 덜 휘청거리게 되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잃은 것도 있을 것이다. 원대한 포부나 꿈꾸었던 자유로운 인생 같은 것들. 그렇다고 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모든 걸 다 가질 수 없으니까. 인생의 어느 순간에는 자신이 살아가야 할,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인생을 선택해야 한다. 선택하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는 책임을 지며 살아야 한다.

하찮은 일들이 쌓이고 쌓여서 인생이 된다는 것. 하찮아 보여도 그게 인생이라는 것. 그 하찮음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인생이 즐거워질 수도 비참해질 수도 있다는 것. 그런 것들을 나는 살아가면서 배웠다. 그래서 그런 일들에 대해 쓰고 싶었다. 


딱히 무슨 의도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젊었기 때문이다. 모든 게 절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뭘 해야 좋을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그냥 죽어도 좋을 것 같았고, 사는 게 의미 없는 것 같기도 했고, 그럼에도 내 앞에는 아직도 살아야 할 시간들이 구만리였기 때문이다. 그건 마치 누가 시킨 장거리 달리기를 별 의지도 의욕도 없이 달리고 있는 거나 같았다.


그럼에도 좋아하는 책에 대해서 말하는 것은 어렵다. 좋아하는 책에 대해서 말하는 것은 좋아하는 남자애에 대해서 말하는 것과 같다. 엄청나게 많은 좋은 점들을 갖고 있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두려운 마음이 든다. 겨우 저 정도의 남자애를 좋아하느냐는 핀잔을 들을까 두렵기도 하다. 어쩌면 사람들이 그 애에 대해 실망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하기도 한다. 나는 가급적이면 그 애를 감추고 싶다. 가급적이면 나만 아는 좋아하는 사람으로 남겨두고 싶다. 하지만 좋아하는 마음만큼은 온 세상에 다 떠벌린다 해도 모자랄 판이다. 


내가 아이들을 키우면서 절대로 하지 않겠다고 다짐을 했고, 최소한 그것만은 엄청난 자제력을 발휘해 지키는 것이 있다. 그것은 아이들을 '너는 어떤 사람'이라고 규정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 말을 수없이 듣는 것만으로도 자라면서 아이가 자신을 어떤 인간이라는 틀 속에 가두게 될 위험이 엄청나게 크기 때문이다. 그 아이가 타고난 성격 때문에 책망을 듣게 하지 않는 것도 내가 반드시 지키고자 노력하는 것 중의 하나다. 


지금 내가 골목길을 이리저리 비틀어 올라가던 어린 나의 뒷모습을 보게 된다면 나는 그 아이가 안쓰러워 어찌할 바를 모를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이건 네가 앞으로 겪을 수많은 비참함 중의 하나일 뿐이라고 말해 주었을 것이다. 


아이들도 알게 될 것이다. 하루 종일 친구들과 신나게 놀고 "아, 오늘은 정말 최고의 하루였던 것 같아!"라고 생각해도 집에 돌아오면 밋밋하고 재미도 없고 해야할 일들로 가득한 남은 날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해야하는 숙제와 방 정리, 싫어하는 반찬도 골고루 먹기, 양치질, 동생과의 싸움, 잠자리에 드는 일 같은 것들이 남아 있다는 것을. 아이들은 맥이 빠진 채로 잠자리에 들겠지만 결국 남은 인생은 그런 날들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런 반복적인 일상 속에서도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느냐, 없느냐일 뿐이다. 만약 그런 것을 발견할 수 있는 아이라면 멋진 하늘과 길에 핀 이름 모를 꽃과 겨울의 기대를 품은 바람과 좋은 음악과 아름다운 문장과 벅찬 대화와 산책과 맛있는 음식에 설레는 어른으로 자랄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바로 우리가 생각하는 행복의 모든 것 말이다. 




5. 책을 지키려는 고양이


"너 정말 이거 다 읽었어?"

"그래. 벌써 오래전 일이지만."

"넌 역시 보통이 아니야. 난 너무 어려워서 무슨 말을 하는지 하나도 모르겠던데."

"그거 잘됐네."

책상의 먼지를 털면서 웃는 린타로를 보고 사요가 이상한 표정을 지었다.

"잘됐다고?"

"책을 읽고 어렵게 느꼈다면 그건 네가 그동안 몰랐던 새로운 게 쓰여 있기 때문이야. 어려운 책을 만났다면 그거야말로 좋은 기회지."

"무슨 말이야?"

사요가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책이 쉽다는 건 네가 아는 게 쓰여 있다는 증거야. 어렵다는 건 새로운 게 쓰여 있다는 증거고."

사요는 희귀동물이라도 보는 듯한 눈으로 린타로를 보았다.

"넌 역시 변태야."

"너무 심하게 말하는 거 아니야?"

"하지만 나쁘지는 않아."





6. 슬픔이여 안녕


"그분은 일반적인 지성의 형태는 지니고 있지 못할는지 모르지만..."

그녀는 이해성 있는 태도로 내 말을 가로 막았다.

"쎄실이 말하는 지성의 형태라는 것은 단지 지성의 연령을 가리키는 거겠지."

그녀의 간결하고도 결정적인 표현이 나를 매혹시켰다. 어떤 표현들은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했어도, 내 마음을 사로잡는 어떤 지적이고도 미묘한 분위기를 풍겨주기도 했다. 


"어쨌든, 넌 꽁하고 있진 않구나."

나는 그럴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안느가 적의를 품고 있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녀가 너무나도 철저하게 냉담하다고 느꼈다. 그녀의 판단에는 악의에서 우러나온 그런 날카로움이나 정확성은 없었다. 다만 그 판단들은 너무나도 분명할 뿐이다.


안느가 빈정거렸다. "하지만 나도 그것에 대한 상식은 좀 갖고 있지."

"그렇게 해서 그분은 그 어린애를 키웠던 거에요. 그리고 아마도 그분은 간통의 불안이나 걱정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 거에요. 그분은 수많은 여자들이 겪는 바로 그러한 삶을 누리고 있는 거예요. 그리고 그것이 자랑스러운 거예요. 알겠어요? 그분은 젊고 부르주아적인 아내와 어머니의 입장에 처해 있었고 또 거기서 벗어나려는 노력도 전혀 하지 않았어요. 그분은 이것도 저것도 하지 않은 것을 자만하고 있는 것이지, 어떤 것을 완수한 것을 자랑하는 게 아니에요."

"그건 중요한 의미는 못 돼."하고 아버지가 말했다.

"그건 속임수예요."하고 나도 고함을 질렀다. "나중에는 이렇게 말하겠지요. 난 내 의무를 다했다,라고 말예요. 왜냐하면 아무것도 한 일이 없기 때문잉에요. 만일 그분이 자기가 태어난 환경을 저버리고 매춘부라도 되었다면, 바로 그 점이 가치 있는 일이었을 거에요."


그건 아마 사실이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내가 말한 것에 대해 생각해보았으나 그렇게 말하는 것을 들어본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나 내 인생과 아버지의 인생은 이 이론을 뒷받침하고 있었고 그래서 그것을 경멸함으로써 안느는 내게 상처를 입힌 것이다. 사람은 다른 것에 그러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찮은 일에도 집착하는 수가 있다. 그런데 안느는 나를 생각하는 사람으로는 보지 않았던 것이다. 갑자기 나는 그녀가 자기의 잘못을 깨닫게 해주는 것이 긴급하고도 우선적인 일처럼 여겨졌다. 


마흔 살, 고독에 대한 두려움, 어쩌면 관능의 마지막 간청일지도 모른다. 나는 안느를 한 여자로 생각해본 적은 없었지만 한 실체로는 생각했었다. 나는 그녀에게서 확신이나 우아함이나 지성 같은 것은 알아보았지만, 결코 관능성이나 연약함.... 같은 것은 본 일이 없었다. 나는 아버지가 자만하는 것도 이해한다. 거만하고 냉담한 안나 라르상이 자기와 결혼하는 것이다. 아버지는 그녀를 사랑하고 있는 것일까? 오래도록 사랑할 수 있을까? 아버지가 엘자에게 가졌던 애정과 아는에 대한 애정을 나는 구별할 수 있을까? 나는 눈을 감았다. 태양이 나를 둔하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우리 셋은 할말을 일부러 안 하며, 은밀한 두려움과 행복에 가득 차서 테라스에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내가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것을 방해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이렇게도 자연스럽게 행복과 친절 그리고 태평스러움을 위해서 태어났지만, 그녀로 인해서 비난과 양심이 거리끼는 세계로 들어간다. 거기서 성찰에 익숙지 않은 나는 나 자신을 망가뜨리는 것이다. 그런데 그녀는 내게 무엇을 가져다주었는가?


나는 '자기 자신으로 존재한다'라는 말을 할 수 없다. 왜냐하면 형상을 만들 수 있는 반죽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형을 거부하는 반죽이었다.


나는 테이블 위에서 담배 한 개피를 집어 성냥불을 그어댔다. 성냥불이 꺼져버렸다. 두번째로 조심스럽게 성냥을 켰다. 왜냐하면 바람은 불지 않았으나 단지 내 손이 떨렸기 때문이었다. 성냥불은 담배 가까이 가자마자 이내 꺼져버렸다. 투덜거리면서 세번째의 성냥을 그었다. 그때 이유는 알 수 없었으나 이 성냥이 나에게는 생사에 관한 중대성을 지니고 있는 것처럼 여겨졌다. 아마도 그것은 갑자기 무관심에서 벗어나 미소도 띠지 않고 주의 깊게 나를 쳐다보고 있는 안느 때문에 그랬을지도 모른다. 이 순간에는 환경이나 시간도 소멸해버렸으며 단지 이 성냥과 그걸 잡고 있는 손가락, 회색 성냥갑과 그리고 안느의 시선만이 있을 뿐이었다. 심장은 미칠 듯이 고동치기 시작했다. 성냥을 쥐고 있는 손가락이 부르르 떨렸다. 성냥은 타올랐지만 내가 게걸스럽게 그쪽으로 얼굴을 내미는 사이에, 담배가 불을 덮어서 꺼져버리고 말았다. 나는 땅에 성냥갑을 떨어뜨리며 눈을 감았다. 안느의 냉혹하고도 의아해하는 눈초리가 내게 쏠렸다. 나는 그 누군가에게 제발 이 기다림을 멈추게 해달라고 간청했다. 안느의 두 손이 얼굴을 들어올렸다. 그녀가 내 시선을 보는 것이 두려워서 나는 눈을 꼭 감았다. 기진맥진한 데서 우러나오는 눈물이, 미숙의 눈물이, 쾌락의 눈물이 흘러내림을 느꼈다. 그러자 안느는 온갖 질문을 단념한 것처럼, 모르겠다는 듯이 마음을 가라앉히는 몸짓으로 내 얼굴에서 손을 떼며 나를 놓아주었다. 그러고 나서 내 입에 불이 붙은 담배를 물려주고는 다시 책에 몰두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런 행동에서 어떤 상징적인 느낌을 받았다. 그녀에게 하나의 의미를 주어보려고 했던 것이다. 하지만 오늘도 내가 성냥을 잘못 켤 때면 그 이상한 순간을, 내 몸짓과 나 사이의 그 간격을, 안느의 시선의 중압감을, 그리고 주위의 그 공허를, 그 공허의 농도를 생각하는 것이다.


이미 그것을 이야기했지만, 내 행동만이 나 자신을 판단하게 하는 것이다.





7. 파과


할머니의 말에 아이는 샐쭉하게 입을 내밀어 보인다. 아, 저 아이가 강 박사의 딸이구나. 저 아이는 그날 무슨 맛 아이스크림을 먹었을까. 아니면 예쁜 옷 한 벌이라도 새로 해 입었을까. 요즘 아이들 옷은 터무니 없이 비싸다던데 그걸론 모자라지나 않았을까. 아이의 뺨과 귀 사이에 난 작고 귀여운 점을 보고 조각의 입가에 저절로 미소가 걸린다. 아이의 팽팽한 뺨에 우주의 입자가 퍼져 있다. 한 존재 안에 수렴된 시간들, 응축된 언어들이 아이의 몸에서 리듬을 입고 튕겨 나온다. 누가 꼭 그래야 한다고 정한 게 아닌데도, 손주를 가져본 적 없는 노부인이라도 어린 소녀를 보면 자연히 이런 감정이 심장에 고이는 걸까. 바다를 동경하는 사람이 바닷가에 살지 않는 사람뿐인 것처럼. 손 닿지 않는 존재에 대한 경이로움과 채워지지 않는 감각을 향한 대상화.


이제 내가 당신에게 뭐라고 하면 좋을까.

마주친 첫 순간 투우는 그녀의 버들눈썹과 옴쏙한 두 뺨이며 강퍅해 보이는 입술을 바로 알아보았고 물론 상대편에서는 소 닭 보듯 멀뚱히 건너다보며 이쪽에서 선배에게 건네는 인사를 거절했다. 우리는 서로 모르고 지내도 되네. 팀워크로 하는 일도 아니고, 내가 알고 지내서 이익 될 만한 사람도 아닐세. 당연한 일이겠지만 그녀가 자신을 기억하지 못함이 확실해지자 그의 몸 한 귀퉁이에서 약봉지가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났다. 한 시절과, 그것을 이루거나 부순 몇몇 장면들이 요동하며 그의 눈꺼풀 속으로 밀려들어왔다.


"그래요? 이거 귤인지 꿀인지 모르게 단데."

"그럼 한번."

조각은 주인 여자가 내민 손을 뿌그럽게 하지 않기 위해 귤을 받아 껍질을 벗긴다. 말랑말랑한 감촉으로 봐서 그리 시지 않을 줄이야 알았지만 입에 넣으니 주인 여자의 말 이상이다. 혀에 감긴 귤 알맹이가 부서지자 입안이 달콤하면서도 청량한 감각으로 채워지고, 세로토닌이 한껏 상승한 상태에서 조모와 손녀를 바라보니 그들이 진정으로 사랑스럽다. 나름의 아픔이 있지만 정신적 사회적으로 양지바른 곳의 사람들, 이끼류 같은 건 돋아날 드팀새도 없이 확고부동한 햇발 아래 뿌리내린 사람들을 응시하는 행위가 좋다. 오래도록 바라보는 것만으로 그것을 소유할 수 있다면. 언감생심이며 단 한순간이라도 그 장면에 속한 인간이 된 듯한 감각을 누릴 수 있다면.


투우가 앞으로 한 발 나서며 귤을 짓밟자 터진 귤 냄새가 골목 안을 흥건하게 적시고 퍼져나간다.

"사람들은 자기가 가는 곳이 어딘지도 모르면서 꼭 남더러 갈 곳을 끈질기게 묻더라. 당신 지금 자기가 뭐 하고 있는지 정말 알기나 해? 아는 건 단 하나, 목적지는 몰라도 하여튼 가고 있다는 사실뿐이지."

투우의 목소리가 점점 가까워지자 조각은 만일의 경우 언제라도 놈의 잘도 미끄러지는 혓바닥을 잘라버리기 위해 칼을 고쳐 쥔다.

"딱 하나 오해하지 말았으면 하는 게 있는데, 내가 말이 안 된다고 한 건 그 형아가 서른여섯이고 당신이 예순다섯이라서가 아냐. 참으로 아름다운 사랑이지, 무려 자식뻘하고. 남들이 알면 어울리지 않네부터 할망구가 늘그막에 정신 나가 더럽다고 손가락질할 일이지만, 늙어버린 다음엔 피차 똑같을 텐데 말야. 당신은 얼마든지 그 사람을 바라보고 생각할 자유가 있어."

투우는 조각의 어깨를 슬쩍 스쳐 지나가다 허리를 굽히곤 그녀 귓가에 대고 거의 속삭이듯이 덧붙인다.

"근데 자격은 없지."

새금한 귤 냄새가 푸제르 향을 가렸다고 생각했는데 고개를 들고 보니 투우는 어느새 그 자리를 빠져나가고 없다.


이참에 한꺼번에 청소해야겠다고 생각하며 그녀는 하단 채소 칸을 연다. 

거기 뭉크러져 죽이 되기 직전인 갈색의, 원래는 복숭아였을 것으로 추측되는 물건이 세 덩어리 보인다. 집에 와서 그녀는 꼭 한 개를 먹었을 뿐이고, 그 뒤로 잊어버린 모양이다.

달콤하고 상쾌하며 부드러운 시절을 잊은 그 갈색 덩어리를 버리기 위해 그녀는 음식물 쓰레기 봉지를 펼친다. 최고의 시절에 누군가의 입술을 가득 채웠어야 할, 그러지 못한, 지금은 시큼한 시취를 풍기는 덩어리에 손을 뻗는다. 집어 올리자마자 그것은 그녀의 손안에서 그대로 부서져 흘러내린다. 채소 칸 벽에 붙어 있던 걸떼어 내느라 살짝 악력을 높였더니 그렇다. 어쩔 수 없이 그녀는 부서진 조각들을 하나하나 건져 봉지에 담고, 그러고도 벽에 단단히 들러붙은 살점들을 떼어내기 위해 손톱으로 긁는다. 그것들은 냉장고 안에서 핀 성애꽃에 미련이라도 남은 듯 붙어서 잘 떨어지지 않는다. 그녀는 문득 콧속을 파고드는 시지근한 냄새를 맡으며 눈물을 흘린다. 얼마즘 지나 그녀 어깨가 흔들리고 신음이 새어 나오자 무용아 다가와 낮은 목소리로 웅얼거리듯 짖기 시작한다.


그녀는 앞날에 대해 어떤 기대도 소망도 없었으며 그저 살아 있기 때문에, 오늘도 눈을 떴기 때문에 연장을 잡았다. 그것으로 자신이 존재하는 이유를 확인하지 않았고, 자신의 행동에 논거를 깔거나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살아남으려고 노력하지 않았고 일찍 죽기 위해 몸을 아무렇게나 던지지도 않았다. 오로지 맥박이 멈추지 않았다는 이유로 움직이는 것은 휼륭하게 부속이 조합된 기계의 속성이었다. 류를 가끔 떠올렸고 그가 생전에 주의를 준 사항들에 자주 이끌렸지만, 제 몸처럼 부리던 연장으로 인해 손바닥에 잡힌 굳은 살과도 같은 감각 외에는, 류를 생각하면서 온몸이 뻐근하게 달뜨고 아파오는 일이 더이상 없었다. 그녀는, 나이 들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말입니다."

뭔가 망설이는 듯한 강 박사의 목소리가 그녀의 뒷덜미를 잡아당긴다.

"그렇다고 해서 후회하는 건 아니니까요."

그 말은 그녀에게 하는 말이라기보다는 자신이 돌아버리지 않기 위해 스스로에게 거는 주문 같은 중얼거림에 가깝지만, 그녀는 지금 그 떨떠름한 한마디로 무저갱에서 건져진 것 같다.

"압니다."

그래도 마지막으로 들은 말이 이것이어서, 고개를 돌리고 걷기 전 흘끗 본 얼굴이 증오보다는 처절한 슬픔이 고조된 간절함으로 빋어져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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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들이 많았습니다. 라고 변명을 살짝 해보는 쌀쌀한 주말 오후.

더워지기 시작할 무렵 정신 없이 읽어내렸던 책들을 정리하기로 했다.



1. 중국을 뒤흔든 여인들 


문자가 생긴 이후로 전 세계는 모두 남성이 주도해왔기 때문에 역사의 기록에서 여성이 주인공인 경우는 매우 드물다. 그러니 세상에 자신의 기록을 선명하게 남긴 여성도 별로 없다. 극소수의 몇몇 여성만 뚜렷하게 자신의 흔적을 남겼으며, 나아가 천하를 거머쥐었다. 흔히 여성의 마음은 깊은 바다 속의 바늘과 같다고 말한다. 오랜 세월 여성은 남성과 다른 방식으로 문제를 처리해왔지만, 아직도 남성은 그 속에 담긴 여성의 세심한 생각을 이해하지 못한다. 하물며 1,100년 전 권모술수의 복잡한 상황 속에 놓였던 여성의 생각을 어떻게 헤아릴 수 있겠는가. 결론적으로 많은 문학 작품에 영향을 미친 황태후들은 남성들의 눈에 '화근'으로 비추어졌다. 하지만 그녀들을 남성의 시각으로 가늠하는 것은 공평하지 않을뿐더러 재미도 없고 답답한 일이다.

그녀들에 관한 기록 역시 떠들썩하게 웃고 즐긴 정도에 불과하다.

마침 지앙성난의 노력이 있어 나는 여성의 역사를 담은 진정한 글을 만나게 되었다.

무협소설을 즐겨 쓴 지앙성난의 글은 간결하고 산뜻하며 애매모호하지 않은데, 이는 여성들의 특징이기도 하다. 이러한 그녀의 문체는 역사를 쓰기에 알맞다.


그녀들의 힘을 밎가할만한 첫 번째 근거로는 호칭을 들 수 있다. 당시 많은 황족이 자신의 어머니 성씨에 따라 불렸는데, 이는 이후 조나라에서도 볼 수 없었던 한나라만의 독특한 관습이다. 예를 들면 한무제의 부인이었던 관도 공주는 자신의 어머니가 두태후였기 때문에 두태주로, 한경제의 장자 유영은 어머니 율희의 이름을 따라 율태자로 불렸다. (생략) 두번째 근거로는 작위를 들 수 있다. 한대의 많은 여성은 제후로 봉해지면서 그에 걸맞은 작위와 봉읍을 가졌다. 예를 들면 한고조 유방은 형의 부인에게 음안후라는 작위를 내렸고, 뒤이어 권력을 잡은 여후는 소하의 부인을 찬후에, 번쾌의 아내인 여수를 임광후에 봉했다. (생략) 세 번째 근거로는 건출물을 꼽을 수 있다. 몇 년 전, 고고학자들은 장락궁에서 출토된 벽하 속의 방이 모두 붉은색 바닥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기록에 따르면 고대 중국에서는 보통 규모가 큰 집의 바닥을 붉은색으로 칠했다고 한다. 


한산이라고 불리는 승려가 습득이라는 승려에게 물었다. "어떤 이가 저를 모욕하고 비웃고 멸시하며 헐뜯는 데다, 미워하며 상처주고 괴롭히는데 어찌해야 합니까?" 그러자 습득은 "참으시게나. 용서해주면서 오히려 그를 공경하며 견디게. 그가 자네를 욕한다 해도 개의치 말고 그냥 모른 척 내버려두고 관심을 두지 마시게. 그리고 그 결과가 어찌되나 지켜만 보면 될 것이야."라고 말했다. 






2. 여기가 아니면 어디라도


진정한 자아는 어디 있는가? 성지에? 템플스테이에? 인도에? 내 자아는 내 집, 내 방에 있지 않을까? 전혀 익숙하지 않은 공간에서 비일상의 경험을 하며 자아를 찾는 일이 가능하다면, 그런 생활을 지속해야 할 일이다. 결국 집으로 돌아오는 왕복 여정을 떠난다면, 내 자아가 가장 오래 머무는 곳의 상황을 주시할 일이다.


나는 사회생활을 하고 돈을 벌게 되면서 명절 때면 언제나 여행을 갔다. 거의 예외 없이.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자, 어머니는 나의 여행을 견딜 수 없어 했다. 내가 착한 딸이어서 어머니의 바람대로 집에 있었다고 쓰고 싶다. 그렇지 않았다. 어머니가 싫어한 건 여행이 아니라, 예측 불가능한 상황에 놓이는 일, 무책임하게 낭만을 좇는 가족들 뒤치다꺼리, 그 모든 일 때문에 편히 쉴 수 없는 밤, 혹은 여행을 떠난 사람들 뒤에 남겨지는 일이었다. 지금도 생각이 여기에 미치면 자다가 벌떡 일어난다. 그리고 다시 잠들기 어렵다. 


이 책에는 이런 말이 있다. "불행이 때로는 행복의 가면을 쓰고서 유혹적으로 다가오듯이, 행복의 짓궂은 점은 이따금 감쪽같이 불행으로 변장하고 나타나는 것이다. (중략) 오스카 와일드는 이것을 아주 적절하게 아름다운 문장으로 표현했다. '신은 인간들을 벌하려는 경우에, 그들의 기도를 들어준다.'" 정말 그렇더라. 불가능해 보였던 간절한 소망이 이루어졌다가 결국은 파국으로 끝나는 일은 드물지 않다.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 계속 불행한 인생도, 계속 행복한 인생도 없다. 


이것이 워즈워드식으로 말해 '시간의 점'이 되어주었던 수많은 아름다운 여행의 순간들 사이사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던 나의 뉴질랜드 여행의 진실이다. 나는 정말 배가 고팠고 외로웠다. 어쩌면 그런 이유로 자연의 아름다움에 더 요란하게 감동했는지도 모르겠다. 자연 속에서는 내가 혼자라거나 배고프다는 사실이 그렇게 비참하게 느껴지지 않았으니까.


"시스티나 성당에서 사진 촬영이 안 된다고 해도 굳이 찍으려고 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지 않으시면 좋겠습니다. 플래시를 터뜨릴 경우 보안요원에게 제지당하는 건 물론이고, 무엇보다도 그림이 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다시 미켈란젤로의 그림이 상하면 지금처럼 재복원하기는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플래시를 터뜨리지 않더라도 사진을 찍으시기보다, 눈으로 그림을 더 보시면 좋겠습니다. 어차피 사진을 찍어도 원하는 것처럼 나오지 않습니다. 천장화 전체 그림은 기념품 가게에서 사실 수 있습니다. 그 편이 훨씬 낫습니다. 시스티나 성당에 들어가시거든, 그냥 목을 젖히고 그림을 보세요. 그 자세로 얼마나 오래 볼 수 있는지, 한번 목을 젖힌 채 버텨보세요. 5분을 넘기기 힘듭니다. 그런데 미켈란젤로는 몇 년간을 쉬지도 않고 매일매일 그 상태로 그림을 그렸습니다. 작업을 위한 지지대가 있기 때문에 매번 그림을 전체적으로 조망하는 일도 불가능했을 겁니다. 한쪽 눈은 거의 실명 상태가 되고, 어깨는 쓸 수 없을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 상태에서 그림을 그려갑니다. 그림을 보시면 깜짝 놀라실 수도 있습니다. 생각보다 색깔이 굉장히 화려하고 선명합니다. 더불어, 아리에서 천장을 보면 조각처럼 보이는 부분들도 있습니다. 처음에 천장화가 공개되었을 때, 참관을 온 성직자들을 포함한 사람들이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천장에 조각을 매달아놓은 줄 알고 떨어질까 봐 무서워 바닥에 엎드렸다는 것이지요. 그런 느낌을, 충분히 느껴보십시오. 안에 계시는 시간 동안 어떻게 하면 들키지 않고 사진을 찍을까 궁리하지 마시고, 그 넓은 텅 빈 천장을 처음 마주했을 인간 미켈란젤로의 두려움을 느껴보세요. 보는 것만으로도 버거운 그 작품을, 인간을 넘어선 인간의 힘으로 완성하는 미켈란젤로를 상상해보십시오. 그리고 나중에 바티칸 기념품숍에서 천장화 그림을 하나 사가세요. 앗, 참고로 거기서 그림을 사신다고 제게 돈이 떨어지거나 하는 건 전혀 아니거든요. 사고 싶으면 사시고 아니면 안 사셔도 아무 상관없어요. 하지만 나중에 살아가는 일이 힘에 부친다는 느낌이 들면, 천장화를 꺼내 보시고 오늘 이곳에서 본 천장화를 떠올려보십시오. 그 그림을 몇 년에 걸쳐, 완성할지 기약도 없는 채로 그려갔던 미켈란젤로를 떠올려보십시오. 그러면 아주 조금은, 더 노력해보자는 힘이 나지 않을까요."


그냥 실컷 해보고 나면 이걸 정말 좋아하는지, 아니면 그저 결핍된 것이라 원한다고 착각하는지 알 수 있다.







3. 섬에 있는 서점


마야의 '세례식은 아닌 파티'는 핼러윈 한 주 전에 열렸다. 참석한 아이들 중 몇 명이 핼러윈 복장을 하고 온 것만 빼면, 진짜 세례명명식과도 저자 사인회와도 별다를 게 없는 파티였다. 에이제이는 분홍색 파티용 드레스를 입은 마야를 보고 어딘지 익숙하면서도 뭔가 참을 수 없는 기운 속에서 간지럽게 부글거리는 느낌이었다. 큰소리로 웃음을 터뜨리거나 벽이라도 쾅 치고 싶었다. 술에 취한 기분, 아니면 적어도 탄산이 들어간 기분이었다. 미치겠군, 처음엔 이런 게 행복인가 보다 했다가, 이내 이건 사랑이라고 진단을 내렸다. 빌어먹을 사랑, 그는 생각했다.


"사랑받지 못하리라는 은밀한 두려움이 우리를 고립시킨다. 하지만 고립이야말로 사랑받지 못하리라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유일한 이유다. 언젠가, 언제일지 모르는 어느 날, 당신은 차를 몰고 길을 가리라. 그리고 언젠가, 언제일지 모르는 어느 날, 그가 혹은 그녀가 거기에 있으리라. 당신은 사랑 받을 것이다. 생애 처음으로, 결코 혼자가 아니기에, 혼자가 아니기를 선택했기에."


'아주 심플한 거야,' 그는 생각한다. '마야,' 그는 말하고 싶다. '이젠 다 알아.' 

하지만 그의 두뇌가 말을 듣지 않는다.

'마땅한 말을 못 찾으면 빌려 쓰는 거지. 우리는 혼자가 아니라는 걸 알기 위해 책을 읽는다. 우리는 혼자라서 책을 읽는다. 책을 읽으면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 내 인생은 이 책들 안에 있어,' 그는 마야에게 말하고 싶다. '이 책들을 읽으면 내 마음을 알 거야.'

'우리는 딱 장편소설은 아니야.'

그가 찾고 있는 비유에 거의 다가간 것 같다.

'우리는 딱 단편소설은 아니야.' 그러고 보니 그의 인생이 그 말과 가장 가까운 것 같았다.

'결국, 우리는 단편집이야.'




4. 제주, 그곳에서 빛나다


나에게 맞지 않는 것을 무대뽀로 그냥 하는 게 일탈이 아니었다. 무언가를 해보자고 결심하면 근육이 경직되고 긴장감에 사로잡혀 마음처럼 되는 것이 없다. 스쿠터도 힘을 빼고 배운 대로 즐겼다면 몸과 마음이 이렇게 지치고 힘들지는 않았을 거다. 스포츠나 음악에서도 힘을 빼는 게 초보자들에게 가장 어려운 일이라고 한다. 세상 모든 일이 힘을 빼라고 말하는데 나는 말과 행동, 표정 어느 것 하나 힘을 빼고 자연스러운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껏 힘내느라 지쳤으니 이제 힘 좀 빼도 되지 않을까.

모든 운동의 비결이 힘 빼고 긴장 풀기인 것처럼, 인생의 비결도 힘 빼기다. 몸 구석구석 있는 대로 힘을 빼고 강함보다는 부드러움으로, 있는 힘껏 보다는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며 살고 싶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어차피 이 세상에 완벽함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무언가에 푹 빠져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행복한 것이 있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창의적인 사람이 되려면 자신만의 생각이 있어야 한다.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에 몰두할 수 있는지를 고민하는 여유가 있어야 창의성을 키울 수 있다. 자신을 잘 정의하고 있어야 자신의 한계도 알게 되고 자존감도 생기며 휘둘리지 않게 된다. 그런 면에서 보통 사람들보다 덕후가 더 창의적이고 자존감이 높은 것 같다. 자신이 좋아하는지 몰라서 방황하는 사람들은 의욕이 없고 틀에 박힌 생활을 하게 된다.


점점 대화가 편해지면서 과묵해 보이던 남편분의 표정도 부드러워지더니 한 말씀 하셨다. 그 말을 여전히 잊을 수가 없다.

"살아보니까 별거 없어요. 그냥 내 옆에 내 사람만 있으면 어떻게든 살게 돼요. 그게 저의 인생의 전부예요."

그날 밤, 다시 부부의 집으로 돌아와 나는 잠들지 못하고 이리저리 뒤척이다 일어났다. 달빛이 비치는 고요한 밤, 창가에 앉아 생각에 잠겼다. 살아가는 데 우리에게 필요한 게 이렇게 간단할 거라고는. 나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5. 고의는 아니지만


아이는 얼마 지나지 않아 여자의 머리카락을 잡아당기거나 여자를 밀어내고 자기가 화면 앞자리를 차지하고 앉기 시작했으며 그와 함께 금이 간 지 오래였던 여자의 정신적 토대에 맹렬한 단층 작용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 토대는 말하자면 일, 여자가 믿고 있던 마지막 하나로, 자기의 삶이 그래도 아주 형편없지는 않다고 믿게 해주는 보루 같은 거였다. 


때떄로 현금으로 환산되는 걸 확인하는 일은 절망을 잠깐이나마 잊게 해주었다. 자신이 철저히 비경제적이고 비실용적인, 인간 이하의 인구, 즉 하나의 입에 지나지 않는다는 자각을.


반해서가 아니라 순수한 마음으로 상대에게 성의를 다했다는 티를 내고 싶은 마음이니까, 한 번쯤 분에 넘치게 출혈해도 괜찮지 않느냐고 생각하면서. 

그러나 한 번은 그 한 번으로만 끝나지 않았다. 그녀는 비로드 상자를 열어 거기 꽂혀 있는 팔찌를 보며 입을 가린 채 중얼거렸다.

"이런 과분한 보답, 그냥은 받을 수 없어요. 다음번에 나한테도 쏠 기회를 줄래요?"

뭉클, 순간 청년의 가슴속에 비누 거품처럼 부글거리다 사그라드는 무언가가 있었다. 이상하고 낯선 감각. 그러나 왠지 친근하리만큼 오래된 먼지 냄새가 나기도 하면서 그리움을 닮은.




6. 토지 (1)


"어디서 배웠노."

"절에서 맨날 그맀소."

"절에?"

"연곡사 혜관스님이."

구천이의 눈빛은 더 얘기할 것을 바라는 것 같았다.

"장차 지도 금어가 될 기라 하심서 맨날 초화를 그리게 했심다."

"글공부를 했느냐?"

말씨가 달라져 있었다.

"예, 조금."

저도 모르게 길상이 역시 '야'에서 '예'로 말이 달라져 있었다.

"안 하면 잊어버린다."

"노스님께서도 그렇게 말씸하싰습니다."

구천이 눈이 순간 흔들렸다.

"세상이 달라질 거라 하시믄서."


동방청제장군이 푸른 탈을 쓰고 나타났다. 서방백제장군이 흰 탈을 쓰고 나타났다. 북방흑제장군이 검은 탈을 쓰고 나타났다. 남방적재장군이 붉은 탈을 쓰고 나타났다. 중앙황제장군이 노랑 탈을 쓰고 나타났다. 이들은 각자 제 탈바가지 빛깔에 따라 철릭을 입었는데 위괴한 모습은 눈부시었다. 굿거리로 넘어간 음악에 따라 오신장이 춤을 춘다. 신 나게 춤을 춘다. 청포 황포를 입은 악공은 북, 장고, 해금, 피리, 필률을 치고 불었다. 다섯 신장은 서로 자리를 엇바꾸어가며 본령산에서 타령조로 가락이 빨라짐에 따라 춤은 더욱 화려해져갔다. 길상은 넋을 잃고 바라보고 있었으나 봉순의 눈은 초롱초롱 빛이 났다. 구경꾼들은 여전히 시끄럽게 떠들고 있었다. 


"인생 칠십이 잠깐이다. 지난 일이 엊그제 같은데, 아씨를 따라서 백련암에 간 일이 엊그제만 같은데...... 아씨도 늙으시고......"

대면했을 때는 마님이라 했지만 간난할멈에게 윤씨부인은 언제나 아씨였다. 마음 속에는 꽃같이 젊고 고운 아씨인 것이다.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던 간난할멈은 지팡이를 짚고 일어서서 자기 걸음을 가늠해본다. 몇 발짝 걸어보고는 멈추고 다시 걸어보고, 그렇게 되풀이하면서 행랑 문밖으로 나간다. 내리막길을 기다시피 반쯤 내려온 할멈은 지팡이를 놓고 땅바닥에 퍼질러 앉는다.


아무것도 더 원하지 않고 아무것도 더 잃지 않으려는 농부들은 또한 아무것도 더 원하지 않고 아무것도 더 잃지 않으려는 자연과 더불어 이 한때는 평화스런 것이다.


"지금 시국에 그런 것은 소소한 마찰이구,"

치수는 들은 척하지 않고 제 말만 이어 나간다.

"굶주린 이리떼를 잡아 가둘 생각은 않고 막아놓은 울타리 터주는 격이지. 갈 데 없어요, 이제 양반들 내장까지 파먹으려 들 테이니. 배고프고 헐벗었기 때문에 민란이 난 줄 아시오? 벼슬아치들 수탈이 심해 민란이 난 줄 아시오? 언제는 상놈들이 호의호식했었소? 울타리만 높고 튼튼했더라면 뱃가죽이 등에 붙어 죽는 한이 있어도 팔자거니 생각했을 게요. 허한 구석이 있어야, 빠져볼 구멍이 있어야 소리를 질러보고 연장도 휘둘러보고 그러다 막는 힘이 약할 것 같으면 밀고 나오는 게요, 아우성을 치면서. 천대받는 놈치고 약지 않은 놈 보았소?"

치수의 눈이 준구를 뚫어져라 본다. 어쩌면 준구를 향해 퍼붓는 욕설이었는지 모를 일이다.

"무릎을 꿇고 기어야 할 판이면 그네들은 그렇게 할 게요. 쇠죽을 먹더라도 목숨이 더 귀하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 이 밥 먹으려고 둘도 없는 목숨 내어놓겠소? 어리석은 자들, 사탕으로 꼬임을 당할 놈들인가? 어리석은 자들, 한 치를 내어주면 모조리 내어주게 되는 걸, 어리석은 자들."

"자네 말같이 일이 그리 단순한가."

준구는 간신히 반박했다.

"동학란의 경우만 하더라도 반드시 몽매한 상민들이 제 밥그릇 작다고 들고 일어났다, 그럴 수만은 없지. 사교임에는 틀림없으나 종교의 힘이란 것을 얕볼 순 없거든. 서학의 경우를 보게나. 제 목숨 바치기를 원하는 데서야 뉘 이길 재간 있겠나? 밥이 적다고 투정하는 놈은 더 굶겼다가주면 아무 말 없이 처먹겠지만 죽어 저승에 가서 편히 산다는 생각이 박혀버리면 사정이 달라지지. 나라의 경우도 그렇지. 벌통을 쑤셔놓은 판국인데 이러나저러나 고비는 넘겨야겠으니 다스리는 방법에 융통은 있어야잖겠나, 달랠 수도 있고 맡길 수도 있고."


'보고 싶은 정이야 못 참으까. 우리는 남남이 아니니께.'

계집아이의 뒷모습을 숨어 보며 어디든가서 잘 살라고 빌던 마음이나 장날에 가며 오며 얼굴을 바라보던 마음이나 그것은 모두 헛것이었다. 여자에게 가던 그때의 정은 참말 헛것이었다. 육신이 합쳐져서 처음으로 사는 뜻을 깨달으며 설움과 즐거움이 그의 것이 되고 말았던지. 게으르고 무기력했던 용이는 부지런해졌으며 강청댁이 어떤 수라장을 꾸미든 눈을 가린 나귀가 연자매를 돌리듯 사랑이 회생을 낳고 헌신을 낳고 고통을 낳고 다시 사랑을 낳는, 그같이 둥근 제 생활의 터전을 묵묵히 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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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은 그래도 열심히 읽었다. 읽다 보니 읽기 싫은 책도 억지로 읽게 됐다. 근데 그것들은 다 읽고나니 시간이 아깝다. 그러다 책 중독자들이었나, 하여간 그 비슷한 제목의 다음 웹툰을 봤다. 그걸 읽으니 읽기 싫은 책에 억지로 시간을 투자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생동안 읽을 수 있는 책이 한정적인데, 읽기 싫은 책에 시간을 뺏기면 너무 시간이 아까우니까. 시간은 생각보다 관대하지 않다. 회사를 다니면서 남은 짜투리 시간으로 살아가다보니 깨닫게 되었다.




1.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 김영하


수학여행을 온 듯한 어린아이들이 북적거렸고 캠코더를 든 관광객들이 한쪽 눈을 찡그린 채 여기저기를 훑고 있었다. 일제 카메라를 들고 누비던 관광객들은 이제 거의 사라져가고 캠코더의 물결이다. 그러나 비디오카메라는 블랙홀처럼 궁전을 삼키고 궁전 앞 연못을 빨아들인다. 그들 기억 속의 벨베데르는 흐릿하고 푸른 기 감도는 사각의 영상으로 수렴한다. 그들은 기억의 불멸을 꾀하느라 생생한 현재를 희생한다. 처량하지만 인간의 숙명이다.


결코 이 거리를 좁히지 못하리라. 세계와 자신, 오브제와 렌즈, 그가 만나왔던 여자들과 자신, 그들 사이에 놓인 강을 결코 좁히지 못할 것이라는 비감한 절망이 몰려 들었다. 그는 북극으로 걸어간 유디트를 생각했다. 나이 서른이 되면 사랑도 재능인 것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2.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 김영하


잔인한가. 그렇지 않다 개인적인 삶이란 없다. 우리의 모든 은밀한 욕망들은 늘 공적인 영역으로 튀어나올 준비가 되어 있다. 호리병에 갇힌 요괴처럼, 마개만 따주면 모든 것을 해줄 것처럼 속삭여대지만 일단 세상 밖으로 나오면 거대한 괴물이 되어 우리를 덮치는 것이다. 그들이 묻는다. 이봐, 누가 나를 이 호리병에 넣었지? 그건 바로 인간이야. 나를 꺼내준 너도 인간. 그러니까 나는 너를 잡아먹어야겠어.



당신도 알고 있다. 그날 당신의 대응은 적절하지 못했다. 사람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그렇게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좀더 더듬거리며, 가지 말라고, 네가 필요하다고, 네가 가버리면 죽어버리겠노라고 말했어야 했다. 그러나 당신은 그러지 않았다. 그녀와 통화하는 내내 당신 머리속엔 그릇들이 덜컥거리며 무너져내리고 있었다. 당신의 체념엔 이유가 있었다. 그건 모두 아침 나절의 그 덜컥임 때문이라고, 당신은 믿어 의심치 않았다.


누구라도 유적들을 휘감고 탐욕스럽게 커버린 십층 건물 높이의 판야나무를 본다면 이곳을 떠도는 마성을 감지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인간이 만든 모든 것을 무화시키는 작디작은 씨앗의 위력, 그것에 떨게 되고 자연스레 살아온 날들을 반추하게 될 것이다. 당신이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당신 역시 당신의 삶에 날아들어온 작은 씨앗에 대해 생각한다. 아마도 당신 머리 어딘가에 떨어졌을, 그리하여 거대한 나무가 되어 당신의 뇌를 바수어버리며 자라난, 이제는 제거 불능인 존재에 대하여


세상 어디는 그렇지 않은가. 모든 사물의 틈새에는 그것을 부술 씨앗들이 자라고 있다네. 지금은 이런 모습이 이곳 타 프롬 사원에만 남아 있지만 불과 몇십 년 전까지만 해도 밀림에서 뻗어나온 나무들이 앙코르의 모든 사원을 뒤덮고 있었지. 바람이 휭 하니 불어와 승려의 장삼을 펄럭였고 당신의 땀을 증발시켰다. 승려의 말은 계속 이어진다. 그때까지 나무는 두 가지 일을 했다네. 하나는 뿌리로 불상과 사원을 부수는 일이요, 또하나는 그 뿌리로 사원과 불상이 완전ㄴ히 무너지지는 않도록 버텨주는 일이라네. 그렇게 나무와 부처가 서로 얽혀 구백 년을 견뎠다네. 여기 돌은 부서지기 쉬운 사암이어서 이 나무들이 아니었다면 벌써 흙이 되어버렸을지도 모르는 일. 사람살이가 다 그렇지 않은가. 



꿈꾸는 일을 위해 석 달을 하루같이 뭔가를 할 수 있는 그가 경이로웠다. 나였다면 단 일주일도 힘들었을 터이다. 세상은 그런 사람들 때문에 굴러간다.

지금까지 나는 그런 세상에서 슬쩍 비켜서 있었다. 달려오는 사람을 피하듯이 몸을 약간 비틀었을 뿐이다. 그런 자세로 세상을 보면 세상은 평화롭기만 했다. 그 평화로운 세상으로 그녀가 달려와 슬쩍 비켜설 틈도 없이 내게 충돌해버렸다. 뒤로 나동그라지면서 아주 많은 생각을 했다. 다 쓰잘데없는.



ㅡ김영하 소설가의 장편은 왜 이런 종류를 골랐을까. 궁금증이 든다. 그리고 또 반대로는 이런 주제는 김영하 소설가 밖에는 쓸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예전에 인터뷰에서 일부러 사람들이 불편해하는 종류의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쓴다고 말한 걸 본 적이 있다. 답다. 그래서 김영하 소설가의 장편은 가끔은 거부감이 들어서 읽다가 포기를 참 많이 했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는 읽기가 고되었다. 섹스가 아니면 글을 쓸 수 없나? 하고 불만을 가지기도 했다. 하지만 김영하 소설가의 단편은, 읽을수록 생각이 많아지고 이런 단어들로 내 감정을 정의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단편집이 훨씬 읽기가 편하다. 읽기 싫은 단편은 쓱쓱 넘어가버리고 마음에 쏙쏙 들어오는 단편만 읽어 넣는다. 근데 또 마음에 쏙 들어오는 건 그렇게 마음에 와닿을 수가 없다. 그게 매력인 거 같다.




3. 브릿마리 여기 있다 -프레드릭 배크만



브릿마리에게 처음부터 아무 기대도 없었던 게 아니다. 어느 날 아침에 눈을 떠보니 기대의 유통기한이 지났을 뿐이다.


물론 켄트가 옆에 있다면 아이들이 꼭 계집애처럼 공을 찬다고 했을 것이다. 켄트는 마음에 안 드는 게 있으면 꼭 앞이나 뒤에 '계집애 같다'는 단어를 보태서 말하는데, 브릿마리는 사실 아이러니를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계집애처럼 뛰지 않는 유일한 선수가 계집애라는 데서 일말의 아이러니를 느낀다.


아이들은 하프타임 때 문을 열고 브릿마리와 파이어릿을 다시 안으로 들인다. 브릿마리는 후반전 내내 화장실 거울 앞을 지킨다. 처음엔 밖으로 나가면 아이들과 말을 섞게 될까봐 싫어서 그런 거였는데 그 팀이 다시 골을 넣자 아이들이 경기가 끝날 때까지 나오지 못하게 한다. 그래서 브릿마리는 그 안에서 머리를 말리고 아이들에게 행운을 가져다주며 인생의 위기를 경험한다. 이 세가지는 얼마든지 동시 진행이 가능하다. 


"네 머리가 예뻐 보인다고 하지 않으면 걔는 널 만날 자격이 없는 거야!"

파이어릿은 몸을 돌리더니 달려와서 그녀를 다시 끌어안는다. 선을 넘으면 안 되기에 그녀는 다정하지만 단호하게 아이를 떼어낸다. 아이는 휴대전화 좀 빌려달라고 한다. 그녀는 망설이는 표정을 지으며 너무 많이 쓰면 안 된다고 경고한다. 아이는 휴대전화를 받아서 자기 번호를 누르고 벨이 한 번 울리자 끊는다. 


브릿마리는 그 옆에 서서 거품처럼 온몸으로 번지는 행복감을 느끼며 "훈련 자체도 그렇고 그걸 만든 사람들한테도 그렇고 잘 어울리는 이름이네."라고 아주, 아주 조용히 중얼거린다. 몇 번이고 중얼거린다.

작정하고 우스갯소리를 하다니 그녀가 기억하기로 난생처음 있는 일이다.


"사이코는 위험한 또라이가 됐고 새미도 그걸 알지만, 새미는 예전에 자기 동생을 업고 도망쳐줬던 친구를 배신할 수 있는 그런 애가 아니거든요. 어쩌면 보르그는 단짝 친구를 선택하는 호사를 누릴 수 있는 곳이 아닐지도 모르죠."


경찰차가 저 멀리 사라지자 베가, 오마르, 새미가 주차장 저편에서 그녀를 부른다. 새미는 함박웃음을 짓고 있다. 베가가 찬 공이 자갈과 진흙 위를 데굴데굴 굴러와 그녀의 1미터 앞에서 멈춘다. 브릿마리는 리스트를 핸드백에 넣고, 무언가 시작되길 평생 기다려온 사람들이 그러듯 손마디가 하얘질 정도로 핸드백을 세게 움켜쥔다.

그런 다음 조그맣게 몇 걸음 걸어가서 있는 힘껏 공을 찬다. 

이제는 공을 차지 않을 도리가 없기 때문이다.


"토트넘은 나쁜 팀 중에서도 제일 나쁜 팀이에요. 왜냐하면 거의 잘하는 팀에 가깝거든요. 토트넘은 늘 환상적인 경기를 보여주겠다고 약속해요. 그런 식으로 희망을 심어줘요. 그래서 계속 사랑할 수밖에 없는데, 점점 더 기발한 방법으로 팬들을 실망시키죠."

브릿마리는 말이 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인다. 뱅크는 일어나서 얘기한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딸은 그가 좋아했던 팀과 늘 똑같았죠."


그녀가 경기장 안으로 들어가려는 걸 보고 진행 요원 두어 명이 저지하려고 하지만 실패한다. 그들이 총을 들고 있었다 해도 그녀를 막진 못했을 것이다. 벤은 아무도 이 기쁨을 앗아갈 수 없다는 듯이 엄마와 함께 춤을 춘다.

보르그는 14 대 1로 패한다. 결국 달라진 건 없다. 그래도 그들은 이로써 세상의 모든 것이 달라지기라도 하는 것처럼 경기를 한다.

그리고 정말 세상의 모든 것이 달라진다.



ㅡ사랑스러운 브릿마리, 읽는 내내 나는 너무 울었고, 너무 행복해졌다. 브릿마리를 먼저 읽은 건 아쉽지만 엘사보다 브릿마리를 먼저 만나는 걸 안타까워하지는 않을 것이다. 브릿마리를 통해서 나는 많은 용기를 얻었다.




4. 할머니가 미안하다고 전해달래요. -프래드릭 배크만



엘사는 자기가 예오리를 좋아하게 되었는데 반쪽이가 태어나고 예오리가 자기를 잊어버리는 실망할 수 밖에 없다는 걸 안다.

좋아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상처받을 일이 없다. '특이하다'는 소리를 자주 듣는, 조금 있으면 여덟 살이 되는 아이는 그 사실을 금세 터득한다.



"할머니가 스파이더맨으로 변장했어요?"

"아니."

"그럼 그게 무슨 소리예요?"

"의사로 변장했다는 소리다."

"사람들이 할머니더러 의사 하면 안 된다고 했어요? 여자라서?"

알프는 공구 상자에서 뭔가를 꺼내더니 산타 옷 안에 쑤셔 넣는다.

"여러 가지 다양한 이유에서 우라지게 많은 것들을 하면 안 된다고 했겠지. 그래도 너희 할머니는 하고 싶은대로 했다. 너희 할머니가 태어나고 몇 년 뒤에도 사람들은 여자들이 무슨 빌어먹을 투표냐고 했지만 지금은 투표를 하잖냐. 너더러 이건 된다, 저건 안 된다 하는 개자식이 있으면 그런 식으로 맞서 싸우는 거야. 그러거나 말거니 오지게 밀어붙이는 거야.



ㅡ배크만이 좋은 이유가 이 소설 안에 가득 차있다. 하나하나 허투로 버리는 이야기가 없고, 조금 횡설수설하다 싶은 이야기들은 그 이야기 끝에 모두 하나가 되어 있다. 난 배크만의 소설이 너무 좋다. 신작인 베어타운은 읽기가 아까워서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 읽어버리면 처음 읽는 그 순간이 너무 아쉬울까봐.




5. 아트인문학 :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법 -김태진



변화는 두렵다. 어쩌면 욕먹을 각오도 단단히 해야 한다. 여기 뭉크의 그 유명한 그림을 보자. 당시에 이 그림을 보았다면 욕이 나왔겠는가 안 나왔겠는가. 당연히 욕이 나왔을 것이다. 그런데 뭉크는 당연히 욕먹을 것을 각오하고 변해야 할 때 변했고 그리하여 현대미술을 빛낸 위대한 화가가 되었다.


ㅡ읽는 내내 즐거웠다. 새로운 그림들과 새로운 뒷이야기들을 많이 배웠다. 물론 다 기억하지 못하지만, 그래서 이런 책을 읽을 때마다 고민된다. 책을 읽으면서 다 기록을 해두어야 할까. 물론 그래야 기억에 남기는 하겠지만, 중간중간 흐름이 끊기는 게 싫다. 한 번 더 읽기엔 읽고 싶은 책들이 너무 많다. 우선은 기억이 안 나면 기억이 안 나는대로 두고 있다. 좋은 방법이 있을까?




6. 진작할 걸 그랬어 -김소영



김승복 대표는 말끝마다 '진작 할 걸 그랬다'는 표현을 썼다. 이미 책 다루는 일을 10년 이상 해온 사람의 입에서 나온 그 말이 신기했다.


ㅡ김소영 아나운서가 책방을 차렸다는 건 sns 를 통해서 알고 있다. 근데 서점의 종류가 이렇게 다양한 건 또 처음 알았다. 역시 내가 모르는 카테고리들이 아직도 너무 많이 존재한다.




7. 인간 실격 -다자이 오사무



거짓말로 가슴 한구석에 숨기고 있는 나의 정체야, 겉으로는 밝게 웃으며 사람들을 즐겁게 하지만 실은 이렇게 음울한 마음을 가지고 있어, 어쩔 수 없어, 하고 조용히 수긍했지만, 그 그림은 다케이치 말고는 누구에게도 보여 줄 수 없었습니다. 저의 우스갯짓 이면에 자리한 어둡고 비참한 성정이 밝혀져 갑자기 초라해지는 것도 싫었고, 이런 저의 정체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오히려 새로운 우스갯짓으로 보고 큰 웃음거리가 될까 봐 염려가 앞섰습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괴로운 일이었기에 그 그림은 곧 벽장 깊숙한 곳에 묻히게 되었습니다.



ㅡ인간 실격은 읽기 전에 너무 많이 기대를 해서 읽는 내내 실망을 했다. 나만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내 감정들에 대해서 새로운 단어로 소설가들이 적어 나갔을 때, 그리고 그걸 내가 읽으면서 너무나도 깊은 공감을 할 때 나는 그 소설이 너무 좋다. 하지만 인간 실격은 오히려 내가 생각했던 단어들이 이미 적혀 있는 류에 속했다. 중고등학교 시절에 읽었으면 내 최애 소설이 되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자아 고민을 10여년간 더 한 결과로....




8. 너무 한낮의 연애 -김금희



필용이 양희를 볼 수는 있어도 양희가 필용을 봐서는 안 되었다. 시선은 일방이어야 하지 교환되면 안 되었다. 교환되면 무언가가 남으니까 남은 자리에는 뭔가 생기니까, 자라니까, 있는 것은 있는 것대로 무게감을 지니고 실제가 되니까.



엄마도 주기의 중요성을 알았다면 지금보다는 덜 불행했을 텐데. 수입은 일정한 주기로 들어와야 한다. 부모는 일정 시간 집에 머물러야 한다. 삶에는 파도가 있어야 한다. 무엇이든 일정한 간격으로 밀려왔다 밀려나가야 한다


.

그렇게 몽상하다 멈추고 몽상하고 몽상하다보면 그런 인들이 다 맨숭맨숭해지면서 그냥 그런 보통의 일이 된다. 샐러리맨도 보통이고 마귀도 보통이다. 인간 말종도 원수도 가엾은 단독자도 다 보통의 것, 그냥 심상한 것, 아무렇지 않은 것, 잊으면 그만인 것, 거기서 거기인 것들이다.







많이 읽은 것 같았는데, 그리 많이 읽지도 않았다는 걸 깨달으면 참 민망하다. 6월은 이걸로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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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엔 넷플릭스에 묻혀 사느라 책을 읽지 못 했다. 반성... 드라마 두 개 정주행을 다 하고 넷플릭스를 끊고 싶은데 (당분간만이라도) 어렵다. 일단 정주행부터가 약간 불가능한 상태이다. 일하고 운동하고 글 쓰고 책 읽고 영화 보는 게 이렇게 시간이 부족한 일인줄 몰랐다. 그래도 내가 사랑하는 계절이 시작되었으니 다시 책을 열심히 읽어야지.







1. 마션




여기까지라니 아직도 믿어지지 않는다. 정말 떠난다니. 이 춥디추운 황무지는 1년 반 동안 나의 집이었다. 나는 한시적으로나마 생족하는 법을 알아냈고, 이곳의 섭리에 익숙해졌다. 살아남기 위한 필사의 투쟁이 어느새 일상으로 자리 잡았다. 아침에 일어나 식사를 하고, 농작물을 돌보고, 고장 난 물건을 고치고, 점심을 먹고, 이메일에 답장하고, TV를 보고, 저녁을 먹고, 잠을 자고, 어떤 면에서는 현대 농부의 삶과 다르지 않았다.


그 다음에는 트럭 운전사가 되어 장기간 세상을 횡단했다. 그러다 마지막으로 건설 노동자가 되어 이전까지 아무도 고려하지 않은 방식으로 우주선을 개조했다. 이곳에서 나는 온갖 것들을 조금씩 해보았다. 할 수 있는 사람이 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이제 다 끝났다. 더 할 일도 없고 자연과 맞설 필요도 없다. 나는 마지막으로 나의 화성 감자를 먹었다. 마지막으로 로버에서 잠을 잤다. 먼지가 날리는 붉은 모래에 마지막으로 나의 발자국을 남겼다. 나는 오늘 화성을 떠난다. 어떤 식으로든.


빌어먹을, 얼마나 기다리던 일인가.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겨우 나 한 사람을 살리기 위해 힘을 모았다고 생각하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나의 동료들은 자신의 인생에서 무려 1년이라는 시간을 희생해가며 나를 데리러 돌아왔다. 나사에서도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밤낮으로 일하며 로버와 MAV 개조 방법을 연구했다. 제트추진연구소 사람들은 혼신의 노력을 다해 보급선을 만들었다. 그 보급선은 결국 발사 도중에 파괴되었다. 그런데도 그들은 포기하지 않고 헤르메스에 보급하기 위해 또 하나의 무인선을 만들었다. 중국 항천국은 수년 동안 매달린 프로젝트를 포기하고 추진 로켓을 내주었다.


나를 살리기 위해 들어간 비용은 수십억 달러에 달할 것이다. 괴상한 식물학자 한 명을 구하기 위해 그렇게 많은 것을 쏟아 붓다니, 대체 왜 그랬을까?


그렇다. 나는 그 답을 알고 있다. 어느 정도는 내가 진보와 과학, 그리고 우리가 수 세기 동안 꿈꾼 행성 간 교류의 미래를 표상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진짜 이유는 모든 모든 인간이 기본적으로 타인을 도우려는 본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가끔은 그렇지 않은 듯 보이기도 하지만, 사실 그렇다.


등산객이 사넹서 길을 일흥면 사람들이 협력하여 수색 작업을 펼친다. 열차 사고가 나면 사람들은 줄을 서서 헌혈을 한다. 한 도시가 지진으로 무너지면 세계 각지의 사람들이 구호품을 보낸다. 이것은 어떤 문화권에서든 예외 없이 찾아볼 수 있는 인간의 기본적인 특성이다. 물론 그러거나 말거나 신경 쓰지 않는 나쁜 놈들도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훨씬 더 많다. 그리고 그렇기 떄문에 수십억 명의 사람들이 내 편이 되어주었다.


멋지지 않은가?






ㅡ나는 솔직히 마지막 문단 때문에 이 소설이 읽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화성이라는 낯선 행성에서 살아남는 모습을 과학적 지식을 동반하여, 흥미 본위의 소설을 쓴 것 역시 대단하다. 하지만 소설이 전반적으로 말하는 건 가치관, 인간이 기본적으로 타인을 도우려는 본능을 가지고 있다는 것. 즉 성선설을 이런 식으로 소설로 풀어낼 수 있다는 게 맘에 들었다. 소설 속에 소설가의 철학이 하나도 담기지 않았을 때 그 책은 재미만을 남긴다. 그리고 마션은 재미'만' 남기는 소설은 아니었다. 소설 중간 중간에서 느껴지는 남성작가의 어쩔 수 없는 한계만 아니었다면 더 재밌게 읽을 수 있었을 것이다.






2. 잃어버린 것들의 책

ㅡ책갈피가 없다. 잠이 안 와서 읽었는데 순식간에 다 읽어버렸지만, 책갈피로 남겨둬야지 하는 내용은 없었다. 기이하다.



3. 사랑의 기술




물질적인 영역에서 준다는 것은 부유함을 의미한다. 많이 '갖고' 있는 자가 부자가 아니라 많이 '주는' 자가 곧 부자다. 하나라도 잃어버릴까 마음 졸이는 자는 심리학적으로 말해 아무리 많이 갖고 있더라도 가난한 사람, 가난해진 사람이다. 자기 자신을 줄 수 있는 사람은 그 누구라도 부자이다. 


그러한 사람은 타인에게 자기 자신을 베풀 수 있는, 자신을 경험한다. 다만 생존에 필요한 필수품을 제외하고 모든 걸 박탈 당한 사람만은 주는 행위를 즐기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일상적인 경험을 통해 보면, 무엇을 최소한도의 필수품으로 생각하느냐는 그 사람이 사실상 얼마나 갖고 있느냐에 달려 있다기보다 오히려 그 사람의 성격에 달려 있다.



자신의 생명을 줌으로써 그는 타인을 풍요롭게 만들고, 자기 자신의 생동감을 고양함으로써 타인의 생동감도 고양시킨다. 받기 위해 주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 자체가 절묘한 기쁨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은 줌으로써 다른 사람의 생명에 무엇인가 야기시키지 않을 수 없고, 이와 같이 다른 사람의 생명에 야기된 것은 그 사람에게 되돌아 온다. 진실로 줄 때, 그 사람에겐 꼭 댓가가 돌아오기 마련이다. 준다는 것은 다른 사람을 주는 자로 만들고, 두 사람 다 생명을 탄생시키는 기쁨에 참여하는 걸 뜻한다. 주는 행위 속에서는 무엇인가가 태어나며, 여기에 관련된 두 사람은 그들 두 사람을 위해 태어난 그 생명에 감사한다. 특히 사랑에 관해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사랑은 사랑을 일으키는 힘이고, 무능력은 사랑을 일으킬 능력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 사상은 마르크스에 의해 휼륭하게 표현되었다.


<'인간을 인간으로'생각하고, 인간과 세계의 관계를 인간적 관계로 생각하라. 그러면 당신은 사랑에는 사랑으로써만 신뢰에는 신뢰로써만 주고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예술을 감상하려고 한다면 당신은 예술적 훈련을 받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다른 사람에 대해 영향력을 갖고 싶다면, 당신은 실제로 다른 사람을 격려하고 발전시키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인간과 자연에 대한 당신의 모든 관계가 당신의 의지의 대상에 대응하는 '당신의 현실적이고 개별적인' 생명의 분명한 표현이 되어야 한다. 당신이 만일 사랑을 일깨워 주지 못하는 사랑을 한다면, 곧 당신의 사랑이 사랑을 일으키지 못한다면, 살아하는 사람으로서 생명의 표현에 의해서 당신 자신을 사랑 받는 자로 만들지 못한다면, 당신의 사랑은 무능한 사랑이며, 불행할 것이다.>



어떤 사람을 존경한다는 것은 그를 잘 알지 못하고는 불가능한 일이다. 보호와 책임은 지식에 의해 인도되지 않는다면 맹목일 것이다. 지식은 관심에 의해 동기가 주어지지 않는다면 공허할 것이다. 지식에는 여러 층이 있다. 사랑의 한 양상으로서의 지식은 나 자신에 대한 관심을 초월해서 다른 사람을 그의 입장에서 볼 수 있을 때만 가능하다. 예컨대 나는 어떤 사람이 화가 나 있다는 것을 그가 분명히 말하지 않을 때에도 알 수 있다. 그러나 나는 그가 화내는 것 이상으로 더 깊이 그를 알 수도 있다. 그러면 나는 그가 불안해 하고 근심에 잠겨 있으며 외로움을 느끼며, 죄의식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나는 그의 노여움이 보다 깊은 어떤 것의 나타남에 지나지 않음을 알게 되고, 그를 근심하고 당황하는 사람으로서 다시 말하면 화낸 사람이라기보다는 괴로워하는 사람으로서 보게 된다. 



ㅡ번역이 개떡 같아서 읽기가 힘들다. 읽었다고 표시를 해야 옳은가? 활자를 읽긴 했다...... 






4. 아몬드 




계절은 어느덧 5월의 초입에 들어서고 있었다. 5월 정도면 많은 게익숙해진다. 신학기의 낯섦도 사라진다. 사람들은 계절의 여왕이 5월이라고 말하지만 내 생각은 좀 다르다. 어려운 건 겨울이 봄으로 바뀌는 거다. 언 땅이 녹고 움이 트고 죽어 있는 가지마다 총천연색 꽃이 피어나는 것. 힘겨운 건 그런 거다. 여름은 그저 봄의 동력을 받아 몇 걸음 옮기기만 하면 온다. 



"몰랐던 감정들을 이해하게 되는 게 꼭 좋기만 한 일은 아니란다. 감정이란 참 얄궂은 거거든. 세상이 네가 알던 것과 완전히 달라 보일 거다. 너를 둘러싼 아주 작은 것들까지도 모두 날카로운 무기로 느껴질 수 있고, 별거 아닌 표정이나 말이 가시처럼 아프게 다가오기도 하지. 길가의 돌멩이를 보렴.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대신 상처 받을 일도 없잖니. 사람들이 자신을 차고 있다는 것도 모르니까. 하지만 자신이 하루에도 수십 번 차이고 밝히고 굴러다니고 깨진다는 걸 '알게 되면', 돌멩이의 '기분'은 어떨까."



"그러니까 네가 알고 싶은 게 정확히 뭐지? 곤이가 네 앞에서 그런 짓을 한 이유? 아니면 그때 곤이가 느꼈을 감정?"

"글쎄요. 둘 다라고 해두죠."

박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곤이는 너랑 친구가 되고 싶어하는 것 같구나."

"친구."

내가 의미 없이 되뇌었다.

"친구가 되고 싶을 때 눈앞에서 나비를 찢어 죽이기도 하나요?"

심 박사는 두 손을 깍지 꼈다.

"그건 아니지. 아무튼 네 앞에서 나비를 죽이고 나서 그 애는 자존심이 많이 상한 것 같다."

"나비를 죽여 놓고 자존심은 왜 상했을까요."

박사가 길게 한숨을 쉬었다. 내가 재빨리 덧붙였다.

"저를 이해시키는 게 쉽진 않으실 거에요."

"아니다. 어떻게 하면 더 단순하고 쉽게 얘기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었다. 자, 핵심만 말하마. 그 앤 너한테 관심이 많다. 널 알고 싶어하고 또 너와 같은 느낌을 느끼고 싶어 해. 그런데 얘기를 들어보니 늘 그 애 쪽에서 네게 다가간 거 같다. 한 번쯤 네가 먼저 다가가 보는 건 어떨까?"

"어떻게요?"

"한 가지 질문에도 백 가지 다른 답이 있는 게 이 세상이란다. 그러니 내가 정확한 답을 주기는 어렵지. 특히 네 나이가 땐 세상이 더 수수께끼 같을 거다. 스스로 답을 찾아야 되는 때거든. 그래도 굳이 조언을 원한다면, 질문으로 대신하마. 그 애가 너한테 제일 많이 한 행동이 뭐지?"

"때린 거요."

심박사가 어깨를 으쓱했다.

"깜빡했구나. 그건 패스하자. 그 다음으론?"

"음."

잠깐 생각했다.

"찾아온 거요."

박사가 테이블을 가볍게 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할 수 있는 방법 하나는 찾은 것 같구나."




어딘가를 걸을 때 엄마가 내 손을 꽉 잡았던 걸 기억한다. 엄마는 절대로 내 손을 놓지 않았다. 가끔은 아파서 내가 슬며시 힘을 뺄 때면 엄마는 눈을 흘기며 얼른 꽉 잡으라고 했다. 우린 가족이니까 손을 잡고 걸어야 한다고 말하면서, 반대쪽 손은 할멈에게 쥐여 있었다. 나는 누구에게도 버려진 적이 없다. 내 머리는 형편 없었지만 내 영혼마저 타락하지 않은 건 양쪽에서 내 손을 맞잡은 두 손의 온기 덕이었다. 



거기 무언가 다른 게 실려 있었다. 갑자기 마음속에 탁, 하고 작은 불씨가 켜졌다. 행간을 알고 싶었다. 작가들이 써놓은 글의 의미를 정말 알 수 있는 사람이고 싶었다. 더 많은 사람을 알고 깊은 얘기를 나누고 인간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나 언젠가 글을 쓸 수 있을까. 나에 대해서."

도라의 눈망울이 뺨을 간질였다.

"나도 이해 못 하는 나를, 남들에게 이해시킬 수 있을까."

"이해."

도라가 작게 말하며 몸을 틀었다. 갑자기 그 애는 내 턱 밑에 있었다.



그런 식으로 따지면 역시 곤이가 태어나지 않는 편이 맞는 것 같다. 왜냐하면, 무엇보다도 그 애가 아무런 고통도 상실도 느낄 필요가 없었을 테니까.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모든 것은 의미를 잃는다. 목적만 남는다. 앙상하게.



ㅡ나는 성장 소설을 좋아한다. 마지막의 성냥불이 촥하고 인화점에 다달을 때처럼 어느 순간 변해 있는 주인공을 보는 게 좋다.






5. 빛의 제국



이 세계에 있을 시간이 하루밖에 없다고 생각하자 그의 눈앞에서 펼쳐지는 모든 장면들, 하나의 상투성에 불과했던 이미지들이 살아서 꿈틀대기 시작했다. 그는 바싹 마른 재생지가 되어 세상이라는 만년필이 자신에게 휘갈기는 모든 것을 탐욕스럽게 빨아들였다. 창작열에 불타는 얼치기 시인처럼, 엉겹결에 첫 키스를 하게 된 소년처럼, 그를 둘러싼 모든 것이 시적인 것으로 몸을 바꿨다. 사물들은 대구를 이루거나 (바트 심슨과 체 게바라) 갑자기 비유로 변신하여 시침을 뗐다. (청바지 광고 모델과 깃발을 든 추레한 노동자들.) 그들은 현실이 아니라 마치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그의 감수성을 일꺠우기 위해 갑자기 등장한 연극배우들 같았다. 



어쩌면 기영은 시네마테크를 기웃거리는 영화광들이 드러내는 권태에 주눅들었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이제 그런 건 너무 지겹지 않냐?"라고 그들이 심드렁하게 내뱉는 그 모든 것들이 그에겐 미지의 것이거나 적어도 참신한 것이었다. 도대체 '그런 것'의 어떤 면이 진부한 것인지 알기 위해 그는 많은 시간과 노력을 소비해야 했다. 진부함을 이해하기 위해 치열하게 사는 삶, 그것이 바로 '옮겨다 심은 사람'의 삶이라 할 수 있었다.



"음.. 중고등학교 때 여자애들이 지들끼리 모여서 까르르 까르르 웃고 자지러질 떄가 있어요. 남자애들은 그럴 때면 상당히 당혹스러워져요. 여자애들이 꼭 자기를 비웃고 있는 것만 같거든요. 그애들은 분명히 남자애들을 의식하면서 웃고 있다구요. 봐라, 우리는 너희들이 필요하지 않아. 너희들은 웃기는 자식들이야. 언제나 우리를 곁눈질하지. 이런 표정이라구요. (후략) "



난생처음으로 그녀는, 정신과 육체 사이에, 생물시간에 배운 자율신경과는 별도의,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또다른 의미의 자율적 신경이 존재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신경은 이성의 통제도 받지 않았고 육체적 욕망과도 관계가 없었다. 그러나 그녀의 몸과 마음은 그 정체불명의 자율신경의 통제를 따르고 있었다. 마치 외계인이 들어와 정신을 장악하고선 사악한 짓을 시키고 있는 것 같았다. 환각상태도 아니고 그렇다고 최면상태도 아니었다. 냉철하게 자신이 하는 모든 행동을 마치 다른 사람처럼 내려다보고 있었다. 단지 자신의 행동을 막을 수 없을 뿐이었다.






6. 나의 페미니즘 공부



'본능'이야말로 아주 오래전 페미니즘이 탄생한 동기의 근간에 자리한 말이다. '본능' 아아, 이 얼마나 아름답게, 의심스럽게, 수상쩍게, 비열하게, 추악하게 들리는 말인가? 모든 여성의 항의가 이 한 단어 밑에 깔리고 이용당했다. 미시적으로는 가정에서부터 거시적으로 국가에 이르기까지. 이 말이 여성 스스로도 믿을 만큼 위험한 개념이라는 사실을 깨닫기까지 얼마나 많은 세월이 필요했나!



침착하게 꼼꼼히 읽는다. 그런 뒤 눈에 띄는 부분을 표시하면서 다시 읽는다. 남들이 한 번 읽을 시간에 나는 세 번 읽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따라갈 수 없다. 

그런데 그날은 달랐다.

'이게 뭐지?'하고 불안이 엄습했다. 대강의 뜻도 모르겠다. 초조해하지 않으려고 다시 읽었다. 그런데도 발제문의 개요조차 파악되지 않는다. '왜 이해가 안 될까?'하고 생각하며 심호흡을한 뒤 다시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난 진짜 바보야. 아무리 읽어도 모르겠어. 역시 못 따라가겠어.'

그때 한 학생이 질문했다.

"이 발제문은 무슨 얘기를 하려는 건가요?"

이 차이를 낳는 것이 열등감이다. 이해할 수 없을 때 자신에게 책임을 돌리며 주눅이 들것인가. '이게 무슨 소리'냐고 물을 것인가? 이 차이는 크다. 이 차이가 있는 한, 의심은 늘 상대방이 아닌 자기 자신에게 돌아간다. 



우에노 지즈코는 이렇게도 이야기한다.

'교양'이나 '독착성'에 신비적인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다. '이미 알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 그리고 자신의 생각이 어떻게 다른지 분절하는 능력을 갖추는 것. '이견'은 이를 통해 만들어진다.



남자에게 사랑받기 위해서는 '전력'이 되지 않는 '여자다움'으로만 만족해야 하고, 남자들만큼 능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남자 못지 않은 여자'로서 남자에게 사랑받기를 단념해야 한다.



그녀는 고통스럽다. 상대방에게 분명히 요괴 취급을 받고 있는데도 계속 말해야 한다는 슬픔. 

나는 이 관계성이 싫다. 이 구도에서 탈출하고 싶어서 페미니즘 이론에 기대를 걸고 있지만, 이 구도에는 전혀 변화가 없다. 순종적이지 않은 여자는 요괴다. 그리고 약속이나 한 듯이 다른 여자들은 귀여운 여자라는 파벌을 만든다. 나는 그런 행동을 책망하지 않는다. 그 또한 삶의 지혜니까.



기술 없는 이론이 무력하다면 왜 이론이 필요할까? 실생활에서는 넘쳐나는 이론보다 거친 기술이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우에노 지즈코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직관이란 분절되기 전 논리의 다른 이름이다. 직관에서 논리까지 거리가 멀어보이지만 그 사이에는 연속성이 존재한다. 그렇지만 직관만 존재하는 차원에서는 자신 외의 사람들을 설득할 수가 없다.



그 좋은 예가 우에노 지즈코의 <전후 책임과 대중 기억>이라는 논문에 나온다.

어느 기업의 최고위직에 가까운 사람을 만났을 때, "...여자는 역시 일에 소극적인 것 같습니다."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나는 '그 말대로다. 그래서 그게 뭐가 나쁘다는 거냐?'하고 생각했습니다. 왜 그럴까요? 대강 푼돈이나 쥐여주고 공헌한 만큼 보상은 하지 않는 기업에 자기 인생의 100퍼센트, 심지어 120퍼센트를 팔아 넘기는 데 무슨 이익이 있겠습니까? (중략) 자기 사생활, 가정생활과 균형을 고려해서 애초부터 일에 소극적인 겁니다. 이를 '정상'이라고 합니다.



젠더가 사회적 구축물이라는 사실을 이해한다고 해서 그것으로부터 쉽게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ㅡ<차이의 정치학>



교수 모리나가 다쿠로의 <악녀와 신사의 경제학>에 따르면 섹스의 가격은 회당 4만 엔 정도라고 한다. 더 말해 뭐하겠는가? 당연히 남학생은 납득하지 못했다.

"네? 여자는 자기 가격을 의식하면서 섹스하는 거에요?"

정말로 상처 입은 듯한 순진한 말에 웃음이 터지려는 걸 필사적으로 참았다. 성 산업이 번창하는 가운데 여자에게 값이 매겨지고 남자는 이를 소비하면서도 성에 순수함을 바란다. 이것이야말로 성에 대한 이중기준이다.

성 노동에 아주 높은 값이 매겨지고, 다른 노동에는 부당할만큼 임금격차가 있고, 하물며 그런 가격이 매겨지는 것이 자신의 의사와 상관 없는 일이라면 자신의 가격을 의식하지 않으려야 않을 수가 없다. 섹스의 가격을 의식하는 여자에게 화를 내고 비난하기 전에 섹스에 가격이 있는 배경을 비난해야 한다.



만년에 이를수록 극단적이 되는 언동이 그때까지 살아온 인생을 짐작하게 만들 때가 있다. 세월이 인생의 고뇌를 풀어 주기는커녕 오히려 더 굳어지게 만들고 눈에 띄게 한다. 그렇게 상식을 벗어난 말과 행동에 인생의 가혹함이 압축되어 있다. 우리는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인생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마련이다. 거리에서 제멋대로 고집불통인 노인을 볼 때마다 생각한다. 무엇이 저 사람을 저렇게 만들었을까?



나는 여성적이기를 임의로 선택했다. 내가 '지켜 주겠다'는 말에 약한 건 기호다. 내가 몸에 꼭 맞는 슬립 드레스를 입는 건 전술이다. 내가 상냥한 미소를 띠며 이야기하는 건 지혜다. 단, 이것들은 직장에 있는 시간대에만 적용되며 시간 축에 따라 균형이 변한다. 강한 내 성격을 수치로 나타낼 수 있다면 남자다움 8이고, 배려는 여자다움 10이라는 식으로 말이다. 그리고 이런 것들을 살필 때 남자다움과 여자다움이라는 기존 분류항이 나침반이 된다는 사실은 아주 분명하다. 나는 이런 항목들을 살피면서 젠더의 '중간'을 규정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맞아요. 내가 공부하는 게 바로 그거였죠. 하나 더 물어도 돼요? 이렇게 많은 문헌을 읽으면 뭐가 어떻게 되죠? 이 문헌들이 다 뭐예요? 왜 이렇게 많은 책을 읽어요? 이것들을 읽으면 어떻게 되는 거예요? 이것들은 다 뭐예요?"

학생들은 내가 혼란에 빠졌다는 사실을 그제야 이해했다. 그리고 한 학생이 명쾌하게 답했다.

"독창성은 정보의 전공지대에서는 발생하지 않아요!"

이것은 우에노 교수의 말이다. 학생의 유머 감각에 긴장이 좀 풀렸다.

"하루카 씨, 독창성은 혼자서 존재할 수 없어요. 조금이라도 더 많은 정보를 알고, 그것들과 차별화하면서 자기만의 것이 탄생해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자기다움을 얻을 수 없어요. 그러니까 그렇게 많이 읽는 거죠."



"이런 걸 타고났다면 곤란하죠!"

그리고 교수는 내가 능력이라고 말한 것들에 관해 설명했다. 우에노 교수는 그간 상상하기 힘들 만큼 격한 토론을 거듭하면서 살았다. 그런 토론은 비열하고, 음침하고, 용의주도하고, 교활했다. 기만과 오만과 왜곡과 편견이 가득했다. 그런 시간들을 거치면서 단련한 끝에 지금 우에노 교수가 있는 것이다.

"경험을 많이 쌓으라는 말씀인가요?"

우에노 교수가 계속 설명했다. 학문은 훈련이다. 사회학은 틀을 의심하는 훈련을 한다. 법한은 법이라는 틀 안에서 훈련한다. 각 학문에서 전문적 훈련이 있다. '의심한다'는 훈련을 거듭하면서 틀을 뛰어넘는 발상이 태어날 수 있다.

"그리고.."

교수가 말을 이었다. 훈련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게 있다고.

그것은 직관이다. 뭔가 애매하고 현상을 확실하게 파악할 수 없는 환경에서, 그 애매함에 있는 것을 간파하고 그 너머에 있는 본성이나 정체 같은 핵심을 발견하는 힘. 이것이 직관이다. 직관이 있으면 애매한 콘텍스트(환경)를 가시화하고 언어화하면 된다. 그러기 위한 공부고, 그러기 위한 교양이라는 것이다.



내가 신인 때 대선배에게 이렇게 말했다. 

"생방송 중에 상대방의 말이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 어디가 이상한지 말할 수 없어서 분할 때가 있어요. 그럴 때는 어떻게 하면 될까요?"

그때 선배가 시원스럽게 말했다.

"뭔가 이상한데 어디가 이상한지 말할 수 없어서 분하다고 말해."

아, 그러면 되겠구나 싶었다.

모르니까 쓰지 못하는 게 아니다. 쓰지 않으니까 모르는 채로 있게 된다. 말로 할 수 없는 생각이 있는 게 아니라 그 생각이 말을 하게 만든다. 그래도 말을 할 수 없다면 말을 할 수 없다고 말하면 된다. 말은 적극적으로 사용하려고 할 때만 가능성의 싹을 틔운다.










묵혀뒀던 이 글은 비겁하게도 6월 마지막 주에 올려지고 만다.

일주일만 지나면 6월에 읽은 책을 올려야 하잖아. 내 게으름은 역시 내 예언에 재를 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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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산을 너무 오랜만에 해서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나 고민이 된다.

책에 대해서 코멘트를 남기려다가 관두기로 했다. 오늘은 별로 생각이라는 것을 많이 하고 싶지가 않다.



1. 인간 - 베르나르 베르베르


"인간의 남녀 한 쌍이 우주에 살아 있는 한, 인류의 불씨는 살아 있는 거에요. 어떤 감옥 벽도 그 불씨가 불꽃으로 활활 일어나는 것을 막지는 못할 거에요"

"글쎄요...."

"우리는 우리 자식들을 믿어야 해요. 그들은 우리보다 이 곤경을 더 잘 헤쳐 나갈 거에요."

"과연 그럴까요?"

사만타는 그의 귀에 대고 속삭인다.

"의심을 의심하라. 그러면 믿게 되리라..."



2. 촌년들의 성공기 -조선희, 서수민


성장환경이 한 사람의 전부는 아니지만 일종의 울타리처럼 작용하는 것 같아. 그 울타리를 뛰어넘으려면 어떤 계기가 있거나 스스로 굉장히 노력해야 해. 이제 나름 성공해서 서울 한복판에 집도 짓고, 전 세계 좋은 곳이라면 거의 다 가보고, 와인과 파스타도 즐겨 먹게 되었지만, 그래도 나는 여전히 시끄럽고 제멋대로인 조선희 그대로야. 그래서 하나밖에 없는 내 아들은 한두 해 전까지만 해도 엄마가 학교에 오는 걸 그리 반기지는 않았어. 너무 튄다고.


나는 내가 가여운 게 싫어. 나는 가엽고 싶지 않아.


뭘 선택하든 그 선택에 책임을 지고 성실히 걸어간다면 그걸로 된 거야. 정말 후회할 일은 비겁했다는 것보다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는 것 아닐까?



3. 구의 증명


4. 골드문트와 나르치스


5. 자유로울 것 -임경선


전화를 끊고 나서도 한참을 침울한 심경으로 침대에 맥없이 누워 있었다. 하지만 알고는 있었다. 포기하지 않으려면 스스로를 다시 일으켜 세울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다는 것을.

원고 수정을 거듭할 때마다 나는 굳이 돈을 써가며 제본, 출력업체인 킨코스 홍대점에서 원고를 출력하고 제본해서 종이책 형태로 만든 후에 수정 작업을 했다. 불필요한 허세처럼 보이겠지만 그렇게라도 힘들었던 각 단계의 수정 과정을 구체적인 형태로 남기고 싶었다.

컴퓨터상에서 글을 수정하게 되면 한번 삭제한 글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데 서툴게나마 애써온 과정의 증거라도 남겨놓지 안흥면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언젠가는 반드시 이렇게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종이책으로 출간될 거라는 얄량한 확신을 얻고도 싶었다. 그 네 권의 미흡한 킨코스 제본 책들은 마치 손들고 당분간 반성하고 있으라는 듯이, 서재 책상 맨 위칸 구석에 끼워놓고 한동안 꺼내보지도 않았지만. 


6. 음식에 담아낸 인문학


7. 무서운 공주들


수없이 생각해보고 결론내릴 수 있는 것은, 누가 뭐래도 하트셉수트는 비범한 여성이었다는 것, 최고의 집권 능력을 가졌던 걸출한 인물이었다는 것, 그리고 원하는 게 있을 땐 죄책감 따위는 키우지 않고 거리낌 없이 해치웠다는 것 정도이다.


사람들이 실제로 존재했다고 믿고 싶어하는 인물, 즉 화제작의 주인공으로 삼고 싶은 여인은, 숨막히게 섹시하고, 죄책감없이 근친상간을 하고, 거침없이 남자를 갈아치우고, 필요하면 살인까지도 서슴치 않는 공주일 것이다. 하지만 실제의 루크레치아 보르자는 사람들이 그녀에게 기대하는 모습이었던, 독살스럽고 사악하고 문란한 희대의 탕녀가 아니었다. 그녀는 르네상스 이탈리아라는 뱀 소굴, 그중에서도 보르자 가문이라는 지독한 뱀 소굴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으려고 했고 결국은 살아남은 여인이었다. 사실 정말 흥미로운 건 이런 여인의 이야기가 아닌가?


무엇보다 말린체의 신화가 이렇게 오랫동안 이어지는 이유는,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그녀에게 진짜 목소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자신의 생에에서뿐만 아니라 오늘날까지도 역사가, 소설가, 페미니스트가 원하는 목소리로 사용되고 있다. 

역사는 수많은 잔인한 결말과, 불가해한 동기들, 해독 불가능한 결정들과, 절대 이해하지 못할 선택들로 가득하다. 그래서 사실 관계가 미약할 때, 이 여인처럼 동기는 물론 실명조차 알 수 없는 경우에는 남들이 얼마든지 이야기를 쉽게 꾸매닐 수 있는 것이다. 어쩌면 말린체의 진짜 이야기는 그것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한때 공주였던 소프카는 1994년 2월, 86세의 나이로 파란만장한 삶을 마감했다. 그녀의 손녀는 소프카가 가장 좋아했던 말 중 하나라면서 할머니를 추억했다. "빵 두 덩이를 살 돈이 있으면, 빵은 한 덩이만 사고 남은 돈으로는 꽃을 사렴."


8. 밤의 피크닉


9.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박준


떠난 이를 기억하는 일은, 아직 오지 않는 사람을 기다리는 일과 꼭 닮아 있음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화전의 그 집이 없어지기 전에 사랑채방에 들어가 낮잠을 자고 싶다. 당신을 만나는 꿈을 만들어 꾸고 싶다. 한 상 잘 차린 음식을 앞에 두고 함께 밥을 먹고, 그간 못한 이야기도 하고, 시간이 된다면 새로 적은 시 몇 편을 읽어주고 싶다.

문밖까지 당신을 배웅하고 다시 방으로 돌아와 당신이 떨어뜨린 머리카락을 하나하나 주우며 청소도 하려 한다. 그 긴 꿈에서 깨어나면 멍한 얼굴로 앉아 있다가 문득 커다란 허기를 느낄 수도 있겠다.


예를 들어 당뇨나 고혈압은 정해진 수치에 이르러야 병으로 진단 받게 되는데 아직 정상 범위 내에 있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수치가 점점 오르는 중이라면 그는 병의 전 단계에 있는 것이다. 한의학에서는 이것을 미병이라 부른다. 

이 미병의 시기는 치료가 수월한 반면 스스로 잘 알아차리지는 못한다. 나는 이것이 꼭 우리가 맺고 있는 타인과의 관계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한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깨어지는 것은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난 사건보다는 사소한 마음의 결이 어긋난 데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더 많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는 이것을 별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넘기고 만다.


몇 해 전 좋아하는 선배 시인과 차를 마시면서 이런 나의 괴팍한 습관을 고백한 적이 있었다. 그 선배는 자신도 나와 비슷한 버릇이 있다고 반가워했다. 그리고 이런 말을 덧붙였다.

"고독과 외로움은 다른 감정 같아. 외로움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생기는 것일 텐데. 예를 들면 타인이 나를 알아주지 않을 때 드는 그 감정이 외로움일 거야. 반면에 고독은 자신과의 관계에서 생겨나는 것 같아. 내가 나 자신을 알아주지 않을 때 우리는 고독해지지. 누구를 만나게 되면 외롭지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고독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야. 고독은 내가 나를 만나야 겨우 사라지는 것이겠지. 그러다 다시 금새 고독해지기도 하면서."


내가 좋아지는 시간

스스로를 마음에 들이지 않은 채 삶의 많은 시간을 보낸다. 나는 왜 나밖에 되지 못할까 하는 자조 섞인 물음도 자주 갖게 된다.

물론 아주 가끔, 내가 좋아지는 시간도 있다. 안타까운 것은 이 시간이 그리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는 것이고 또 어떤 방법으로 이 시간을 불러들여야 할지 내가 잘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다만 나 자신을 좋아하려야 좋아할 수 없는 순간만은 잘 알고 있다. 가까운 이의 마음을 아프게 했을 때, 스스로에게 당당하지 않을 때 좋음은 오지 않는다. 내가 남을 속였을 때도 좋음은 오지 않지만 내가 나를 기만했을 때 이것은 더욱 멀어진다.

상대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는 자책과 후회로 스스로의 마음을 더 괴롭게 할 때, 속은 내가 속인 나를 용서할 때, 가난이나 모자란 같은 것을 꾸미지 않고 드러내되 부끄러워하지 않을 때. 그제야 나는 나를 마음에 들어 할 채비를 하고있는 것이라 믿는다. 



울음


사람을 좋아하는 일이 

꼭 울음처럼 여겨질 때가 많았다.


일부러 시작할 수도 없고 

그치려 해도 잘 그쳐지지 않는


흐르고 흘러가다

툭툭 떨어지기도 하며



답서


내일 아침빛이 들면

나에게 있어 가장 연한 것들을

당신에게 내어보일 것입니다


한참 보고 나서

잘 접어두었다가도


자꾸만 다시 펴보게 되는

마음이 여럿이었으면 합니다.



누군가를 사랑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우리는 평소 자신에게조차 내색하지 않던 스스로의 속마음과 마주치게 되는데, 그것은 대게 오랜 상처나 열등감 같은 것이라는 사실이 우리의 사랑을 외롭게 한다.

하지만 나와 당신이 다르지 않다면 사랑은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는다. 당신의 외모와 성격과 목소리와 자라온 환경과 어떤 것에 대해 품고 있는 마음이 나와 다르자는 점에서 사랑이 탄생한다. 자신과 비슷한 수준, 환경, 생각을 가진 사람만을 찾아 사랑이나 결혼을 해야 한다고 믿는 사람을 나는 긍정하지 않는다.


어느 모임의 저녁 자리에서 연세가 지긋한 한 분을 만났을 때의 일이다. 시작은 역시 같은 질문이었다. 하지만 돌아오는 그분의 말은 달랐다. "제가 잘은 모르지만 한창 힘들 때겠어요. 적어도 저는 그랬거든요. 사랑이든 진로든 경제적 문제든 어느 한 가지쯤은 마음처럼 되지 않았지요. 아니면 모든 것이 마음처럼 되지 않거나, 그런데 나이를 한참 먹다가 생각한 것인데 원래 삶은 마음처럼 되는 것이 아니겠더라고요. 다만 점점 내 마음에 들어가는 것이겠지요. 나이 먹는 일 생각보다 괜찮아요. 준이씨도 걱정하지 말고 어서 나이 드세요."


새로운 시대란 오래된 달력을 넘길 때 오는 것이 아니라 내가 당신을 보는 혹은 당신이 나를 바라보는 서로의 눈동자에서 태어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10. 라틴어 수업 -한동일


이런 식으로 학생들의 머리속에 '책장'을 마련하는 작업은 이 책장을 가지고 무엇을 할 것인가, 내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성찰로 나아갑니다. 사실 그것이 수업의 궁극적인 목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수업 시간에도 여기까지 설명을 하고 중간고사 과제부터 내줍니다. 데 메아 비타, 를 A4 한 장 분량으로 적어내는 것이 과제인데요. DE MEA VITA는 '나의 인생에 대하여'라는 뜻입니다.


"자기 자신을 표현하는 올바른 방법이 모든 표현의 기초가 되고, 그것이 참다운 지적 체계를 형성한다."


여러분의 메리툼은 무엇입니까? 데펙투스는요? 강을 건넜음에도 놔쥐 못하고 계속 지고 가는 메리툼 아닌 메리툼은 무엇인가요? 강을 건너서도 강가에 두고 오지 못한 배를 나는 왜 계속 지고 가는 걸까요? 삶이란 끊임없이 내 안의 메리툼과 데펙투스를 묻고 선택하는 과정이 아닐까 합니다. 저는 오늘 이 순간에도 묻고 답하는 중입니다.


사실 인생은 자신의 뜻이나 의지와 상관 없이 흘러갈 때가 많습니다. 주변에서 끊임없이 무슨 일이 일어나고 그중 많은 문제가 우리를 괴롭히죠.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아마도 계속 그럴 겁니다.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그러니 그것은 그것이고 나는 내가 할 일을 한다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전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하곤 합니다. 그냥 "쌩 까"라고요.


중요한 건 내가 해야 할 일을 그냥 해나가야 한다는 겁니다. 내가 어쩔 수 없는 일과 내가 할 일을 구분해야 해요. 그 둘 사이에서 허우적거리지 말고 빨리 빠져나와야 합니다. 또한 벗어났다고 해서 다시 빠지지 말라는 법은 없으니 늘 들여다보고 구분 짓고 빠져나오는 연습을 해야 해요. 사실 학생들이나 어른들이나 잘 못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처럼 '자신을 가엾게 여길 줄 모르는 가엾은 인간보다 더 가엾은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이렇게 나 자신과 소통하면서 나를 알게 되고 나를 다스리며 성숙해집니다. 자기 마음을 찬찬히 읽어 내는 노력을 계속하고 그 마음을 잘 다스리는 학생들이라면 충분히 누구나 마음먹은 일을 잘 해낼 수 있을 겁니다.


어쩌면 삶이란 자기 자신의 자아실현만을 위해 매진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을 위한 준비 속에서 좀 더 완성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 안에서 자아실현은 덤으로 따라오는 것이 아닐까요? '도 우트 데스.' 이 시간이 이 짧은 말 속에 담긴 많은 의미들을 생각해보는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SI VALES BENE EST, EGO VALEO'

시 발레스 베네 에스트 에고 발레오, 이 문장은 로마인들이 편지를 쓸 때 애용한 첫 인사말입니다. '당신이 잘 계신다면 잘되었네요. 저는 잘 있습니다.'라는 뜻입니다. 


'HODIE MIHI, CRAS TIBI' 오늘은 나에게, 내일은 너에게

로마의 공동묘지 입구에 새겨진 문장입니다. 오늘은 내가 관이 되어 들어왔고, 내일은 네가 관이 되어 들어올 것이니 타인의 죽음을 통해 자신의 죽음을 생각하라는 뜻의 문구입니다.


오늘의 불행이 내일의 행복을 보장할지 장담할 순 없지만 오늘을 행복하게 산 사람의 내일이 불행하지만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카르페디엠, 오늘 지금 여기에서 행복하기를 바랍니다.


적오도 사람 사이의 일에서 오해나 오판이 없으려면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들을 놓치지 않으려면 사랑으로 무장한 통찰이 있어야 합니다. 그건 누구와 비교해서 '남들도 그렇다는데'라며 적당히 합리화할 수 없는 부분이니까요.

TEMPUS FUGIT, AMOR MAENT 템푸스 푸지트, 아무르 마네트. 시간이 흘러도 사랑은 남는다.

오래도록 스툴두스 에스로 남지 않으려면 멍청한 누군가가 겉으로 내뱉는 말 뒤에 숨은, 가슴이 하는 말에 귀 길울여야 겠습니다.


중요한 건 아는 사람은 그만큼 잘 보겠지만, 거기서 더 나아가 성찰하는 사람은 알고, 보는 것을 넘어서 깨달을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토레 아르젠티나'에서 온 그 어떤 독재자가 알고 본 것에서 더 나아가 성찰하는 사람이었다면, 저 멀리 이국에서 온 저와는 아주 다른 인생의 전환점을 맞았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스피노자는 "예속적인 인간은 자신의 능력으로 활동하지 못하고 그저 운에 따라 이리저리 휩쓸리거나, 자신보다 강한 능력을 지닌 개체에 앞도되어 수동적으로 존재할 수 밖에 없다. 우리는 예속적일수록 무엇이나 자기에게 유리한 것인지를 판단할 능력을 잃으며, 이로 인해 자신의 능력을 증대시킬 적합한 관계를 형성할 수 없게 된다. 여기서 욕망은 그저 맹목적인 채로 남아있고, 자신의 능력이나 활동을 확대시키지 못한 채로 무수한 단절과 실패만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라고 말합니다.


'만족하다'라는 의미의 라틴어 SATISFACERE 는 충분한을 의미하는 SATIS (사티스) 라는 형용사와 만들다라는 의미의 FACERE (파체레) 의 합성어입니다. 사티스는 충분한 넉넉한이라는 뜻으로 인도 유럽어에서 왔는데, 인도 유럽어에서는 이 단어 자체가 '만족'을 의미합니다. '사티스파체레'란 동사는 충분히 무언가 하다, 라는 의미로 충분히 무언가를 하면 거기에 만족감이 따라온다는 뜻입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생각해봅니다. 어쩌면 문제는 욕망하는가 안니가에 있지 않고, 무엇을 욕망하는가에 있지 않은가 하고요. 무엇을 욕망하고 무엇을 위해 달릴 때 존재의 만족감을 느끼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본질적으로 나를 충만하게 하는 욕망이 필요한 때입니다.


제 마음을 한 겹 한 겹 벗겨보니 그가 제게 상처를 준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행동과 말을 통해서 제 안의 약함과 부족함을 확인했기 때문에 제가 아팟던 거에요. 다시 말해 저는 상처받은 게 아니라 제 안에 감추고 싶은 어떤 것이 타인에 의해 확인될 때마다 상처받았다고 여겼던 것이죠.


저에게 미루고 싶은 일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전 주저 없이 대답할 거에요. "절망하고 포기하고 싶은 마음을 내일로 미룰 겁니다"라고요.

뭔가 다들 김빠진 표정으로 뻔한 소리라고 생각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전 이런 생각을 해봐요. 오늘 할 공부와 할 일들은 "그래, 내일 하지 뭐!"라고 말하면서 포기하고 싶은 마음, 절망스러운 마음은 왜 내일로 미루지 못할까, 하고요. 분노와 같은 부정적인 감정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당장 해결되지 않는 문제임에도 사람들은 그것에 마음이 사로잡혀 힘들어하고 또 힘들어합니다.


11. 매일 아침 써봤니? -김민식


직업이 아닌 생업을 찾자. 혼자서도 시작할 수 있고, 돈 떄문에 내 시간과 건강을 해치지 않으며, 하면 할수록 머리와 몸이 단련되고 기술이 늘어나는 일, 이것이 바로 생업이다.


'EVERYTHING CHANGES'

모든 것은 변한다. 절대 변하지 않는 단 하나의 진리이지요. 모든 것은 변합니다. 이제 변화의 시대가 닥쳐옵니다. 세상이 바뀔 때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파도가 닥쳐올 때 두려움에 떨기보다는 설레는 마음으로 보드를 꺼내 드는 서퍼가 되고 싶어요. 기왕에 큰 파도가 온다면, 물에 빠져 허우적대기보다는 물에 빠진 김에 수영도 즐기고 싶어요. 수영만 즐기는 게 아니라 바닷속 조개를 뒤져 진주를 캐면 더 좋겠죠. 다가올 파도를 생각하며 서프보드 닦는 마음으로 오늘도 책을 읽고 글을 씁니다.


매일의 일상을 즐거움으로 채워야 합니다. 독서가 즐거워야 책 리뷰를 쓰고, 여행이 즐거워야 여행 이야기를 쓰고, 영화를 재미나게 봐야 설득력 있는 감상문이 나옵니다. 하루하루를 소소한 즐거움으로 채우고, 그 일상의 행복을 나누는 것이 블로그를 하는 자세입니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자신을 관찰하는 사람은 오로지 비판을 억누르기 위해 노력한다. 이것이 성공하면 평상시 파악할 수 없었던 수많은 생각들이 의식에 떠오른다.' 

글을 쓰면서 가장 괴로운 순간은 새로운 표현이 떠오르지 않을 때다. 이야기가 막히면 어떻게라도 풀어낼 수 있는데, 비유와 묘사가 막히면 도주미 방법이 없다. 그럴 때면 글쓰기를 잠깐 쉬고 산책을 다녀와야 한다. 


창조의 반대말은 모방이 아니다

국어사전에는 '창조'의 반대말이 '모방'과 '답습'이라고 나와 있다. 과연 그럴까. 우리들은 모두 모방과 답습을 거치며 창조에 이르는 게 아닐까. 모방과 답습 사이에서 길을 잃고 고민하고 자책하다가 자신만의 창조를 하게 되는 게 아닐까.

창조의 반대말은 모방이나 답습이 아니라 '안 창조' '못 창조' '창조하려고 시도조차 안 함'이다.


12. 파리에서 도시락을 파는 여자 켈리 최


13. 무엇이든 쓰게 된다. -김중혁


글을 쓰고 있을 때보다 글을 쓰고 있지 않을 때가 더 많은 글을 쓰고 있는 것 같다. 영화를 볼 때, 뮤직비디오를 볼 때, 음악을 들을 때, 책을 읽을 때, 만화를 볼 때, 나는 이미 글을 쓰고 있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을 뿐, 문자로 찍히지 않을 뿐, 형태가 없는 글을 나는 이미 쓰고 있다. 엄밀한 의미에서 글이라고 할 수는 없다. 글이 될 수 있는 덩어리를 채취하는 것이다. 사금을 걸러내는 방식과 비슷하다. 물과 모래를 얇은 접시에 담고 돌리다 보면 가벼운 모래와 흙은 휩쓸려가고, 묵직한 금만 접시에 남게 된다. 계속 돌려야 하는 거다. 계속 돌리면 거기에 글만 남게 된다. 


운동을 할 때는 메모를 할 수 없다. 아무리 좋은 생각이 떠오르더라도 멈춰서 적을 수 없다. 달리기를 할 때는 휴대전화 메모장에 적을 수 있겠지만, 수영장에서는 불가능하다.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생각을 하지 않거나, 메모가 가능해지는 순간까지 계속 생각해서 기억하거나.

어느 순간부터 메모를 조금만하게 됐다. 쉽게 잊어버린 이야기들은, 애당초 기억할만한 이야기가 아닐 것이고 정말 잊어버리면 안 되는 이야기들은 결국 살아남을 것이다. 메모에 집착하는 순간, 내 기억력은 메모를 믿게 된다. 메모를 믿게 되면 끝장이다. 나는 달리고 물속을 헤엄치면서 메모를 믿지 않으려 애쓴다.


아무 것도 하지 않을 때 나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인 것 같다. 소설가가 아니었을 때에는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다는 자괴감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이제는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을 때에도 뭔가 하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스스로의 발목을 잡으려 하지 않는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건 불가능하다. '무언가 한다는 것'과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의 차이는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결과만 조금 다를 뿐이다. 사람들은 결과만 바라보기 때문에 그런 차이가 생기는 거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는 걱정은 할 필요 없다.


소설의 중요한 장면을 쓸 때는 음악을 이용하기도 한다. 이건 오랫동안 이용하는 '나만의 팁'인데 소설에서 가장 감정적인 부분을 써야 할 때면 'ADAGIO'라는 이름이 붙은 플레이리스트를 재생한다. 플레이리스트를 만드는 방식은 간단하다. 아이튠스에 최대한 많은 클래식 음반들을 넣어둔 다음 제목에 'ADAGIO'가 들어가는 곡들만 따로 추려내는 것이다. 클래식 음악을 이런 식으로 듣는다는 게 좀 찜찜하긴 해도 아다지오의 템포가 감정적인 글을 쓰는 데 가장 잘 어울리는 것 같다. 그 음악들의 멜로디가 아니라 템포에 마음이 움직인다. 


사라질 생각은 어차피 사라질 운명일 것이다. 반드시 살아남아야 할 생각은 어떤 방식으로든 살아남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자 생각이 더 많이 날아들었다. 올가미가 없고, 함정이 없다는 걸 알게된 생각들이 무리를 지어 날아들었고, 생각의 수는 점점 많아졌다. 오는 생각 막지 않고, 가는 생각 막지 않았다.


인간은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 과거를 기억하고, 과거를 통해 미래에 닥칠 일을 예상하는 것이다. 미래를 예상하는 일은 '배외측 전전두피질'에서 진행되는데, 유쾌한 결과가 예상되면 신경핵과 시상하부에 있는 '쾌락중추'가 활성화되고, 실망스러운 결과가 예상되면 안와전두피질에서 위험신호를 방출한다고 한다. <마음의 미래>를 쓴 물리학자 미치오 가쿠에 따르면 '좋은 결과와 나쁜 결과가 모두 예상되면 두 뇌의 각기 다른 부위에서 상반된 신호를 방출하여 총체적인 혼란에 빠지게'되고 우리는 이런 상황을 '갈등'이라고 표현한다는 것이다. 내가 나인 것을 아는 이유는, '나의 과거를 통해 내가 등장하는 미래를 지속적으로 시뮬레이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글을 쓰기 위해서는 언제나 두 가지 마음을 동시에 품어야 한다. 끊임없이 자신을 분리시키고 싸우게 만들고 대화하게 만들고 중재해야 한다. 글쓰기의 시작은 두 개의 마음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인정하는 것에서 비롯된다. 문장이 한 사람의 목소리로 적어가는 것이라면, 문단은 두 개의 마음이 함께 써내려가는 것이다. 


처음으로 글을 쓰던 순간의 짜릿함을 기억할 것이다. 내 마음의 '추상'들을 구체적인 언어로 번역할 때, 마음은 옷을 입고 현실이 된다. 하얀 종이 위에, 혹은 하얀 모니터 위에 내가 쓴 글자들이 새겨질 때, 그 어떤 현실보다도 실물처럼 느껴진다. 내 마음을 언어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할 뿐이다. 더 솔직하게, 있었던 모든 일들을, 누구보다도 대답하게, 글로 남기고 싶어진다. 이때부터 글쓰기의 함정이 시작된다.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으려던 글쓰기는 점점 누군가를 의식하게 된다. 일기조차도 그렇다. 이 세상에 완벽한 혼자만의 글쓰기란 존재하지 않는다. (아마도 그럴 것이라 생각한다.) 글을 쓴다는 것은 자신을 분리시키는 일이고, '나'와 '나를 바라보는 나'가 대화하는 일이므로 '나를 바라보는 나'가 존재하는 순간, 누군가를 의식할 수밖에 없다. 글을 쓰는 게 익숙해지면, 글쓰기로 더 많은 것을 표현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된다. 명사와 동사뿐 아니라 형용사를 배우게 된다. 부사와 감탄사를 배우게 된다. 의성어와 의태어로 감각을 더 잘 묘사할 수 있게 되고, 간단한 트릭으로 문장에 긴장감을 더할 줄 알게 된다.


우리의 임무는 세상을 정리정돈 하는 게 아니다. 더 어지럽게, 더 헝클어뜨려서 더 많은 것들이 생겨나게 하는 것이다. 마음껏 어지르자.


나는 지금 무엇인가를 만들기로 작정한, 창작의 세계로 뛰어들기로 마음먹은 당신을 존중한다. 하찮다고 느껴지는 걸 만들었더라도, 생각과는 달리 어이없는 작품이 나왔더라도, 맞춤법이 몇 번 틀렸더라도, 그림 속 사물들의 비율이 엉망진창이더라도, 노래의 멜로디가 이상하더라도, 나는 그 결과물을 사랑할 준비가 되어 있다. 건투를 빈다.


14. 친밀한 이방인-정한아


우리가 질서를 연기하는 한, 진짜 삶은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다. 그렇다면 진짜 삶은 어디 있는가? 그것은 인생의 마지막에서야 밝혀질 대목이다. 모든 걸 다 잃어버린 후, 폐허가 된 길목에서.


언제부터였을까. 그의 반듯함이 나의 난잡함을 드러내고, 그의 여일함이 나의 광기를 불러내고, 그의 밝음이 나의 어둠을 일깨운 것은. 나는 그에게 포섭되는 대신 더 낮은 곳으로 추락했다. 외도는 그 과정의 일부였을 뿐이다.


15. 거울 앞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냈다.


외모 강박은 아프다. 외모 강박은 수 많은 여성에게 우울증과 분노를 유발한다. 뿐만 아니라 여성의 시간과 돈, 에너지를 앗아간다. 그리고 꿈과 삶에서 점점 더 멀어지게 한다.


알테미스는 페이스북에서 날씬한 여자들을 '스토킹'한다. 그녀들의 사진을 모두 훑어보며 '나도 이렇게 됐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한다. 알테미스는 이런 짓을 하는 자신이 서글프기도 하지만 보통은 무아지경으로 계속 사진들을 들여다보게 된다고 말했다.


어린 딸이 당신에게

자신이 예쁘냐고 묻는다면

마치 마룻바닥으로 추락하는 와인잔 같이

당신의 마음은 산산조각 나겠지.

당신은 마음 한편으로는 이렇게 말하고 싶을 거야

당연히 예쁘지 우리 딸. 물어볼 필요도 없지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발톱을 치켜세운 한편으로는

그래 당신은

딸아이의 양어깨를 붙들고서는

심연과도 같은 딸아이의 눈 속을 들여다보고는

메아리가 되돌아올 때까지 들여다보고는

그러고는 말하겠지

예쁠 필요 없단다. 예뻐지고 싶지 않다면 말이야.


알테미스는 처음에 바이얼랏이라는 가명을 골랐다. 그리고 며칠 후 바이얼릿을 '알테미스'로 바꾸고 싶다고 했다. 알테미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사냥의 여신 아르테미스에서 비롯된 이름이었다. 이런 변화와 함께 그녀가 더 강해지기 위해 노력하리라 믿고 싶지만 알 수 없는 일이다. 나는 알테미스가 강하고 용가한 여성으로 자라기 바란다. 그리고 자신과 같은 고통을 겪는 다른 여성을 보호하기 위해 두 팔을 내밀 수 있기 바란다.


수치심은 복잡한 감정이다. 결핍의 느낌, 그리고 평가할 준비가 끝난 사람들 앞에 자신의 결함을 드러내는 느낌이다. 이는 문화적 규범과 사회적 기대와 엮여 있다. 그리고 자신을 의식하게 하며 다른 사람의 시선에 과하게 초점을 맞추게 한다.


내가 베스의 이야기를 들으며 가장 좋았던 점은 그녀가 이야기의 중심을 외모에서 다른 일로 재빨리 옮겨갔다는 것이다. 외모 강박과 싸울 때는 이런 자세가 필요하다. 도브의 광고는 모든 여성이 스스로 아름답다고 느껴야 한다는 가정에 기댄다. 그러나 베스는 다른 프레임으로 접근한다. 굳이 외모를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노력하기보다는 덜 생각하라는 것이다.


컴퓨터에 비유해보자. 당신의 뇌는 아름다움의 모듈이 장착된 채로 배달됐다. 그 프로그램을 삭제할 수는 없겠지만 대신 다른 프로그램을 더 많이 돌린다면 이 모듈에 할당되는 처리 능력은 줄일 수 있을 것이다. 


16. 아직 불행하지 않습니다. -김보통


이해를 포기함으로써 평안을 얻는 것은 이 사회에서 살아오며 체득한 확실한 해결책이었으니까.


예를 들면 지금이 그렇다. 몇 시간 전까지 눈보라가 몰아치는 곳에 있던 내가 추적추적 비 내리는 곳에 도착하게 될 줄 '아무리 생각해봐도' 알 리가 없다. 물론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도착 전에 스마트폰을 통해 도착지의 날씨나 기타 정보를 간단히 체크해보겠지만, 어떤 사람들에게는 그런 것을 생각해내고 호강니하는 일이 불가능에 가깝다. 바로 내가 그렇다.

우리는 -나 같은 사람들은- 아무 근거 없이 원하는 무언가를 머리속으로 상상하는 것을 즐길 뿐, 현실을 굳이 미리, 애써 마주해 즐거운 기분을 망치길 원치 않는다. 대신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눈앞에 닥쳤을 때는 즉각 인정할 뿐이다.


지난 보름간은 시답잖은 농담 같았다. 아무 의미 없었다. 어느 누구도 만나지 못했고, 특별한 사건도 없었으며, 아무 것도 깨닫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내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도 알아낼 수 없었다. 어디선가 사회자가 하하하 웃으며 나타나 나에게 지금까지 몰래카메라였습니다 라고 말해주면 좋겠지만, 당연히 몰레카메라도 아니었다. 지켜봐주는 관객이 없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나는 몰래카메라에 나올 만한 인간도 아니었다. 그게 문제였다. 내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 지난 여행을 통해 얻은 게 있다면 그 사실을 확인한 것뿐이었다.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어렴풋이 짐작은 해왔다. 어쩌면 나는 주인공이 아닐 것이라고. 세상이 거대한 무대라고 한다면, 나 같은 시시껍절한 사람이 주인공이라는 상상은 도저히 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렇다면 나는 무엇인가. 내가 서 있는 무대는 어디인가. 아마도 높은 확률로, 어릴 적 보았던 약장수를 따라다니는 서커스 단원 비슷한 것이 아닐까. 거기서도 차력이나 칼던지기를 하는 메인 캐릭터는 아니고, 그저 본무대 시작 전 흥을 돋우기 위해 바보 흉내를 내는 바람잡이 같은 것이 아닐까 하고 진지하게 생각했다.

십수 년이 흐른 뒤 서른세 살이 된 나는, 열여덟의 내가 예상했던 것과 한 치도 다름없는 시답잖은 사람이 되어버렸다. 그때의 예감은 정확했다. 역시 나는 주인공이 아니였다. 모험은 주인공의 것이다. 보물도 주인공의 것이다. 깨달음도, 즐거움도, 행복한 결말도 주인공의 것이다. 나는 '혹시나'하는 마음에 모험을 떠나봤으나, 주인공 뒷배경을 스치는 관광객 73이었다는 것만을 알게 된 셈이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당시 러시아군은 공산주의를 찬양하는 글을 잘 쓴 포로들에게 담배를 한 개비씩 주었다. 포로들은 처음에는 러시아 군인들을 비웃으며 담배를 얻기 위해 거짓말로 찬양글을 썼다. 그러나 글을 쓰기만 하면 모두에게 담배를 주는 것이 아니다보니 '잘' 써야만 했고, 매번 같은 말을 쓸 순 없어 나름 고민을 하고 러시아군의 좋은 점도 찾아보게 되었다. 그렇게 6개월이 지나자 스스로 계몽되어 극렬 공산주의자가 된 포로가 나타났다. 그것이 분명히 거짓말이라 생각하며 쓰더라도, 긴 시간에 걸쳐 몇 번이고 반복해 쓰다보니 스스로 납득하게 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이후 추가 훈련을 받은 그 포로들은 어머니 러시아를 위한 인미느이 전사로서 자신의 조국에 스파이로 넘어가기도 했다.


17. 바깥은 여름 - 김애란


-말해줘, 생일 선물로.

... 말해달라니, 막막해서 도리어 웃음이 난다. 이걸 어찌 설명하나. 말한다고 네가 알까.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재이야, 어른들은 잘 헤어지지 않아. 서로 포개질 수 없는 간극을 확인하는 게 반드시 이별을 의미하지도 않고, 그건 타협이기 전에 타인을 대하는 예의랄까. 겸손의 한 방식이니까. 그래도 어떤 인간들은 결국 헤어지지. 누가 꼭 잘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각자 최선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일이 일어나기도 해. 서로 고유한 존재 방식과 중력 때문에. 안 만나는 게 아니라 만날 수 없는 거야. 맹렬한 속도로 지구를 비껴가는 행성처럼. 수학적 원리에 의해 어마어마한 잠재적 사건 두 개가 스치는 거지. 웅장하고 고유하게 휙, 어느 땐 그런 일이 일어났다는 걸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강렬하고 빠른 속도로 휙, 그렇지만 각자 내부에 무언가가 타서 없어졌다는 건 알아. 스쳤지만 탄 거야. 스치느라고. 부딪쳤으면 부서졌을 텐데, 지나치면서 연소된 거지. 어른이란 몸에 그런 그을름이 많은 사람인지도 모르겠구나. 그 검댕이 자기 내부에 자신만이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암호를 남긴. 상대가 한 말이 아닌, 하지 않은 말에 대해 의문과 경외를 동시에 갖는. 


에든버러에서 시간은 더 이상 쌀뜨물처럼 흐르지 않았다. 화살처럼 지나가지도 않았다. 그것은 창처럼 세로로 박혀 내 몸을 뚫고 지나갔다. 나는 어던 시간이 내 안에 통째로 들어온 걸 알았다. 그리고 그걸 매일매일 구체적으로 고통스럽게 감각해야 한다는 것도. 피부 위 허물이 새살처럼 계속 돋아날 수 있다는 데 놀랐다. 그건 마치 '죽음' 위에서, 다른 건 몰라도 '죽음'만은 계속 피어날 수 있다는 말처럼 들렸다.


18. 아르테미스 -앤디 위어


19. 오베라는 남자-프레드릭 배크만


오베가 자기 방에 왔을 때 그녀는 방 침대 위에 앉아 있었다. 오베는 문간에 부루퉁한 얼굴로 섰다.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채였다. 그녀가 그를 보더니 웃었다.

"우리 지금 연애하는 거에요?" 그녀가 물었다.

"어, 네." 그가 더듬더듬 대답했다. "그렇게 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그리고 그렇게 되었다.


누군가 묻는다면, 그는 그녀를 만나기 전까지 자기는 결코 살아 있던 게 아니었다고 말했을 것이다. 그녀가 죽은 뒤에도.


그녀는 그의 팔에 난 화상 자국에 대해 딱 한 번 물어본 적이 있었다.

그녀는 그가 부모님의 집을 잃게 된 정확한 상황을, 오베가 마지못해 밝히는 정황을 통해 제공받은 간단명료한 조각들을 한데 모아 파악해야 했다. 마침내 그녀는 그가 어쩌다 화상을 입었는지 알게 됐다. 그녀의 여자 친구 중 하나가 왜 그를 사랑하느냐고 물었을 때, 소냐는 대부분의 남자는 지옥 같은 불길에서 달아난다고, 하지만 오베 같은 남자는 그 안으로 뛰어든다고 대답했다.


할 말이 아무것도 없으면 물어볼 거리를 찾아봐야 한다는 것.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를 싫어한다는 걸 깜빡하도록 하는 게 하나라도 있다면, 그때 바로 자신에 대해 이야기할 기회가 찾아온다는 것.


세상 사람 모두가 그녀가 무엇을 위해 싸우는지 알아야 한다. 그게 사람들이 했던 얘기였다. 그녀는 선을 위해 싸웠다. 결코 가져본 적 없는 아이들을 위해 싸웠다. 그리고 오베는 그녀를 위해 싸웠다.

왜냐하면 그녀를 위해 싸우는 것이야말로 그가 이 세상에서 제대로 아는 유일한 것이었으니까.


오베와 루네 같은 남자들에게 품위란, 다 큰 사람은 스스로 자기 일을 처리해야 한다는 사실을 뜻했다. 따라서 품위라는 건 어른이 되어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지 않게 되는 권리라고 할 수 있었다. 스스로를 통제한다는 자부심. 올바르게 산다는 자부심. 어떤 길을 택하고 버려야 하는지 아는 것. 나사를 어떻게 돌리고 돌리지 말아야 하는지를 안다는 자부심. 오베와 루네 같은 남자들은 인간이 말로 떠드는 게 아니라 행동하는 존재였던 세대에서 온 사람들이었다. 


때로 어떤 남자들이 갑자기 어떤 일을 했을 때 그 이유를 설명하기란 어렵다. 물론 그들 자신이 언젠가 그 일을 하게 되리라는 걸 알기 때문에 그냥 지금 하는 게 나아서일 수도 있다. 때로는 정반대의 이유이기도 했다. 즉 자기들이 진작 그 일을 했어야 했다는 걸 깨닫는 것이다. 


자기가 틀렸다는 사실을 인정하기란 어렵다. 특히나 무척 오랫동안 틀린 채로 살아왔을 때는 더.


오베는 차 가격을 거의 8천 크로나 깎고 그 가격에 겨울용 타이어까지 받도록 하는 데 성공했다. 그나마 이런 조건으로 도요타 정도면 받아들일 수 있었다.

오베가 대리점에 갔을 때 그 빌어먹을 꼬마는 현대차를 보던 중이었으니까. 하마터면 더 나빠질 수도 있었다. 



20.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1편 


성공적인 인생을 살아올 수 있었던 주된 이유가 사실 자신이 하는 일이 어떤 중요성을 가지고 있는지를 제대로 모르고 있다는 데 있지 않았을까 자문해보았다.


21. 졸업- 윤이형


그리고 난 말하기 힘든 것일수록 누구에게든 말을 하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믿는 편이야. 말하지 못하면 그것에 대해 생각하지 않게 되고, 생각하지 않다 보면 잊어버리게 되니까, 난.. 무서워. 분명 뭐가 마음 속을 떠다니고 있었는데, 내가 외면할수록 그게 점점 깊은 곳으로 가라앉아서, 결국 사라져버리고. 대체 뭐였는지 영원히 모르게 되는 게.







어떤 것들은 시시하게 읽었으면서 기억하고 싶은 문장이 많았고, 어떤 것들은 빨리 읽어내리느라 다시 읽기를 기약하고 문장을 적어두지 않았다.

그 어떤 책이 어떤 책인가는 나만이 기억할 수 있지만, 내가 다시 읽고 문장을 올린다면 그 책이 그 책이었구나 하고 기억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열심히 읽었다. 부족하고 모자라지만 많이 기억해두려고 애썼다. 더 애를 쓸 것이다. 4월이 되고 5월이 되면 좀 더 노력할 것이다.

읽고 쓰고 생각하면 언젠가 직업란에 작가라고 쓸 수 있는 시간들이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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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독한 하루-남궁인


응급의학과 의사인 저자의 응급실 이야기라고 말하면 너무 가볍게 읽히는데, 실제로 그렇게 무겁지만은 않다

소설적인 뉘앙스가 아주 없는 건 아니지만 어차피 글이라는 것이 실화를 기반으로 해도 실화를 백 퍼센트 옮길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첫번째 에세이도 읽어보고 싶은데, 지독한 하루보다 좀 더 소설적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어서 조금 고민 중이다.



2.

게으름에 대한 찬양-버트런드 러셀


김영하 소설가의 팟캐스트를 즐겨 듣는데, 제일 좋아하는 팟캐스트 중 하나라 결국 책까지 사서 읽게 됐다.

어떻게 1999년도에 이런 생각을 했지 싶다가도, 아닌 듯 하지만 서양인들의 선민사상이 적잖이 묻어 나서 조금 불편했다.

하지만 20년 가까이 되어 가는 책이니 한 편으론 그러려니 하며 읽어 나갔다.

흔들거리는 지하철에서 읽기는 문장이 좀 생각할 필요가 있어서 조용한 데서 하나하나 읽어야 한다.



3.

바다가 보이는 이발소-오기와라 히로시


사사로운 이야기들의 모음인데 일본 소설다운 소설이다. 읽으면서 김연수 소설가님의 단편집 생각이 많이 났다.

비슷한 느낌은 아닌데 왜 계속 떠올랐는지 모르겠다.

개인적으로 읽으면서 나라면 어땠을까를 떠올리게 하는 소설은 좋은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때문에 좋은 단편집이었다.

근데 아무래도 일본이 배경이기 때문에 여자 입장에선 불편한 내용이 있다.



4.

산남수북-한사오궁


난 동북아 소설가들이 쓴 책을 좋아하는 편이다. 

중국 소설도 곧잘 읽는데, 읽을 때마다 이렇게 세 나라가 가까운데 어떻게 이렇게 세 나라마다 특징이 확연하게 묻어나는지 참 재미있다.

산남수북은 한사오궁이 귀농하면서 생긴 일들을 엮은 에세이인데 쉽게 읽기가 좋았고 여유롭고 시트콤 같은 일상에 슬며시 웃음이 나기도 했다.

물론 웃긴 이야기들만 있는 건 아니다. 사는 게 다 그렇듯이.



5.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이도우


이도우 작가님이 쓴 소설 잠옷을 입으렴을 굉장히 좋게 읽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이도우 작가님하면 떠올리는 책인 이걸 이제야 보게 된 게 유감이다.

재밌게 읽었고 또 읽을 수 있을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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